히브리서

25-04-29 21:59

22. 사랑, 환대, 연대(기독교윤리1)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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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 22. 사랑, 환대, 연대

 

히브리서 13:1–3 (NKRV)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서신서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먼저 교리를 말하고, 그 다음 윤리를 말합니다.먼저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말하고, 그 다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가르칩니다.

신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먼저 직설법(indicative), 즉 "이것은 이러한 것이다"를 말하고, 그 다음 명령법(imperative), 즉 "그러니 이렇게 살아라"를 말하는 구조입니다.

히브리서의 마지막 장인 13장은 바로 이 명령법, 즉 기독교 윤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이 화평함과 거룩함임을 살펴보았습니다.

히브리서 12:14 (NKRV)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화평함과 거룩함은 성도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특히 '모든 사람과 더불어'라고 말한 것은,성도가 혼자 신앙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이웃과 함께신앙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제 13장에서는, 이러한 화평함과 거룩함이실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기독교 윤리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윤리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의 윤리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윤리

 

오늘은 이 가운데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윤리를 먼저 살펴보고,이후 시간에 나머지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윤리

1. 형제 사랑을 계속하라/ 사랑

히브리서 13:1 (NKRV)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여기서 "형제"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성경은 성도들을 "형제"와 "자매"라고 부릅니다.즉, 지금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 형제요 자매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부를 때 항상 “형제들아”라고 했습니다.그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이렇게 부릅니다.

 

로마서 1:13 (NKRV)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야고보 사도도 소아시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부릅니다.

야고보서 1:2 (NKRV)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요한 사도 역시 에베소를 중심으로 모인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요한1서 3:13 (NKRV)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불렀습니다.사회적 지위나 신분과 상관없이,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가족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영적 가족입니다.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교회는 단순한 조직이나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에베소서 2:19 (NKRV)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여기서 '권속'(household)은 가족을 의미합니다.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0 (NKRV)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지니라

 

교회가 믿음의 가족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2:11 (NKRV)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다 하나에서 났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났다는 의미입니다.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형제라 부르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집에서 한창 말씀을 전하실 때였습니다.그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예수님, 밖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가복음 3:33–35 (NKRV)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가족 공동체입니다.내 곁에 있는 분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먼저 명확히 해야 합니다.성도를 가족처럼 대하고 사랑해야 합니다.부모님을 사랑하듯, 형제를 사랑하듯, 자녀를 사랑하듯,우리는 교회 성도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본문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교회 안에 사랑이 존재함을 전제합니다.그러나 그 사랑을 멈추지 말고 지속하라고 권면합니다.

왜 이런 명령이 필요한 것일까요?그것은 사랑을 멈추고 싶은 상황들이 많기 때문입니다.성도 간에 실망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실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간혹 교회에 대해 비판하는 성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목회자와 성도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합니다.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입니다.성도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만일 누군가 여러분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난한다면,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함께 비난하겠습니까?그렇지 않습니다.마음이 아프고, 부끄럽고, 슬플 것입니다.

가족은 서로를 비판하지 않습니다.연약함과 허물이 드러날 때,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는 것이 가족입니다.

 

요한1서 5:16 (새번역)16 누구든지 어떤 교우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가 아니면,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은, 죽을 죄는 짓지 않은 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성도는 교우의 죄를 볼 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여러분이 성도의 허물과 죄를 보았을 때,그것을 지적하고 싶다면 먼저 그를 위해 충분히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기도할 것인가?그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그렇게 기도한 후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면,그를 죄에서 돌이키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없는 권면은 상처만 남기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하고 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우리는 불완전합니다.

서로에게 실망할 때가 많고,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저분이 나의 어머니라면? 아버지라면? 형제라면? 자녀라면 어떻게 할까?"

이렇게 생각하면,많은 부분이 이해되고 용납될 것입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어?"가 아니라,"저분의 연약함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겠다."이렇게 마음이 바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1–2 (새번역)1 나이가 많은 이를 나무라지 말고, 아버지를 대하듯이 권면하십시오. 젊은 남자는 형제를 대하듯이 권면하십시오.2 나이가 많은 여자는 어머니를 대하듯이 권면하고, 젊은 여자는 자매를 대하듯이, 오로지 순결한 마음으로 권면하십시오.

 

성도를 권면할 때는,아버지를 대하듯, 어머니를 대하듯, 형제와 자매를 대하듯,순결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환대

히브리서 13:2 (NKRV)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여기서 "손님 대접"이란,이방인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과 환대를 의미합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다는 말씀은,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세 명의 나그네를 환대했는데그들이 천사였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또 창세기 19장에서는 롯이 두 명의 나그네를 대접했는데,그들도 천사였습니다.

 

기독교 윤리에서 환대(hospitality)는 매우 중요합니다.이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윤리적 행위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이를 강조하셨습니다.

신명기 10:19 (NKRV)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한때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습니다.그 연약했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역시, 나그네를 사랑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명령이 주어집니다.

곁에 있는 성도님들은 비교적 환대하기 쉽습니다.이미 관계가 있고,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나그네로 살았습니다.이것은 이민 생활과 매우 비슷합니다.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지만,초기 한국 이민자들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철도 노동자, 가정집 하인, 식당 일, 청소, 세탁소등사회 중심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차별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신앙과 민족의 정체성을 지켰습니다.낯선 땅, 낯선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깊이 체험하면서 신앙이 순결해지고 단단해졌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그네로 지내면서,하나님의 세밀한 은혜의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특히, 출애굽사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날 때,은금과 패물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는데,이는 애굽 사람들이 준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2:35–36 (NKRV)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마치, 우리 주변에 외국인 노동자가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주변의 사람들이  돈을 모아 주는 것과 같습니다.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일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그들이 애굽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듯이,너희도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2015년 교회를 개척하기 전, 아내와 저는 뉴질랜드에서 3개월 동안 캠핑카를 타고 남북섬을 여행했습니다. 거의 모든 도시를 다녔고, 주일마다 새로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원래 계획은 텐트 여행이었습니다. 캠핑카는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한국에서 아는 지인의 집에 텐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저희의 예상과는 달리 뉴질랜드 12월은 비바람이 거셌습니다. 도착한 후 1주일 내내 비가 내렸고, 바람이 몰아쳐서 텐트에서 생활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사정을 딱하게 여긴 아는 자매가 저희를 자기 집에 묵게 했습니다. 그 자매는 전에 뉴질랜드에서 사역할 때 반주자를 했던 분으로, 현지인 청년과 결혼해 시댁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자매의 시댁 집 거실 소파 뒤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래도 편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믿음의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자매의 시할아버지 집에 갔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저희 여행 계획을 물으시더니, 캠핑카가 필요하면 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빌려줄까? 물으셨고, 저는 2개월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피터 할아버지는 웃으며 "편하게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에서 잊지 못할 캠핑카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피터 할아버지는 그날 처음 만난 분이었습니다.

 

여행 중 웰링턴 근처에 갔을 때,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집에 가려는데 한 할머니께서 저희를 붙잡았습니다. 자기 집에 가서 식사하자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만든 곡물 빵과 연어 샐러드가 있다며 함께 먹자고 하셨습니다. 그날 할머니 집에서 참 맛있고 편하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독일에서 오신 분으로, 독일의 크리스마스 문화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집을 떠날 때는 자신이 구운 아몬드 쿠키를 주셔서 여행 내내 아껴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제 생일이었고, 정말 잊지 못할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피터 할아버지를 통해 나를 축복하는구나 느꼈습니다.  

독일 할머니의 환대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 생일을 축하하시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그네를 환대할 때, 그들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시고, 그 사랑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삼아 이웃을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손님이라 할지라도 따뜻하게 환대할 때, 그들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여러분 곁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환대해야 합니다.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민자, 난민,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 우리의 손님입니다.처음 만나는 사람, 모르는 이웃, 교회를 처음 방문한 분들도 우리의 손님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손님을 환대할 때, 우리는 단순히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매 순간, 우리의 곁에 보내신 이들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과 존중으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3. 고난 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연대

히브리서 13:3 (NKRV)3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이 구절은 연대와 공감의 윤리를 말합니다.‘갇힌 자’는 복음 때문에 박해받아 억울하게 투옥된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범죄를 저질러 갇힌 것이 아니라, 믿음과 복음 증거 때문에 붙잡혀 갇힌 것입니다.초대교회 당시, 복음에 헌신하다 학대받고 갇힌 자들을 위해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그들을 생각하고 기억하라고 합니다. 마치 우리가 갇힌 것처럼, 우리가 학대받는 것처럼 말입니다.이 구절은 성도들이 서로 연대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책임감 있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연대와 공감의 윤리는 오늘날 많이 약해지고 느슨해졌습니다.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신앙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지고, 공동체적 책임감이 약해졌습니다.치열한 경쟁 사회속에서 감정적 피로가 쌓여 공감 능력이 마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우선시하며, 타인과 연대하는 것이 자신에게 위험을 초대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나 하나라도 지키자는 방어적 윤리가 팽배해졌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공동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웃과 연대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고통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곁에 있는 성도님이 알아주고 기도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손을 잡아 주고, 함께 울어 주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입니다.

로마서 12:15 (NKRV)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갈라디아서 6:2 (NKRV)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고린도전서 12:26 (NKRV)26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우리 교회는 이러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삶이 아무리 각박하고 어려워도, 부부가 한마음이 되면 함께 이겨낼 수 있듯이, 어려울 때 내 곁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성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올해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성도들이 보여준 모습에 대해 목사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첫 번째 장례식은 임집사님 어머님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때 성도는 아무도 없었고, 저 혼자 참석하여 위로 예배, 입관 예배, 발인 하관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후 효철 형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혼자서 장례 예배를 드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음 장례식부터는 저 혼자 참석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 후, 한 분 한 분, 우리 교회에 오셨고, 성도님들의 장례식 때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마음을 모아 주셨습니다. 그 모습이 큰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 약해지거나 느슨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고 연합된 지체들입니다. 한 분의 고통은 전체의 아픔이고, 한 분의 기쁨은 모든 성도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는 이유도 이러한 연대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험한 세상에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성도들과 연대되어 살아가며 기쁨도 함께, 슬픔도 함께 나누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결론입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랑, 환대, 그리고 연대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방식과 교회의 공동체 정신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첫째, 형제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대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고, 우리는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어렵고 실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지속되어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둘째, 손님 대접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는 단순한 친절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식이며, 우리가 나그네와 이방인을 환대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방인, 외국인, 혹은 단지 우리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환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친절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고난받는 자를 생각하고 연대하는 마음은 교회 공동체가 가지는 중요한 특성입니다. 우리가 갇히고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적 책임입니다. 이 시대에 개인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교회는 여전히 공동체적 연대감을 갖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며 그들을 돕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모든 윤리는 단지 이론적인 교훈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실천하는 방법이자,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시고, 축복과 은혜의 통로로 쓰임받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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