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송구영신 예배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신다
창세기 50:15–21
15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우리는 2023년 마지막 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또 새로운 한해를 하나님께 의탁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올 한해 여러분들을 어떠셨나요? 좋은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웃는 일도 많았을 것이고 애달픈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건강할 때도 있었지만 질병으로 힘들었던 시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들었던 분들과 헤어지는 아쉬움도 있었고, 새로운 만남으로 인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삶을 돌이켜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삶을 조망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평가는 항상 나의 경험과 지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지나온 삶을 온전하고 냉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을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가장 정확하게 평가되고 또 이해됩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요셉의 이야기의 결론에 해당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요셉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처음에는 축복을 많이 받았지만 나중에는 불행하게 끝나는 사람도 많지만, 요셉은 처음부터 끝까지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고 구김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그의 영혼 같지 않았습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의 생애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자신은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형들의 시기심으로 미움을 받았고 결국은 노예로 팔리게 됩니다. 한순간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 가슴에는 못이 박혔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떨어진 요셉의 가슴에도 못이 박혔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애굽 땅까지 끌려가 비참한 노예의 신분이 되었고 보디발의 집에서 서럽고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보려 했지만, 모함을 받아 죄수가 되었고 실로 긴 시간을 죄도 없이 형벌을 받으며 고달픈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형들을 만나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형들은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는 아버지 때문에 요셉이 헤치지 않았지만, 돌아가신 후에는 일개 노예 신세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상처와 분노로 가득차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없는 말을 보태어 보복받지 않기 위해 간곡하게 그의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가 당신의 종입니다.” 그들은 비굴한 모습으로 생명을 구걸하게 됩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깊은 상처를 주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요셉이 형들에게 말합니다.
“형님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뿐만 아니라 당신들의 자녀들까지도 돌보겠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떠나 어릴 적부터 고난의 쓴물을 마셨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의 배신, 부모를 생이별해야 하는 슬픔, 모함을 받아 감옥생활을 했던 그 억울했던 일들, 그 지난 세월을 회상하면 할수록 상처가 되고 그것이 분노가 되어 차올라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 정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가 놀라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어찌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다. 요셉은 두려워 떨고 있는 형들을 오히려 측은하고 불쌍하게 여깁니다. 오히려 그렇게 비굴하게 서 있는 형들을 보면서 미안함과 속상함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 제가 형님들에게 용서와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나는 형들을 용서합니다.”
이러한 요셉의 고백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고 기대한 사람들에게 상처받습니다. 사랑한 만큼 기대한 만큼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우리의 마음에 절망감을 주고 분노하게 하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미래를 소망하지 않고 어둡게 바라봅니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보다는 또다시 상처받을 것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됨으로 고립 감속에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한 해 어떠셨나요?
정부에 대한 실망, 교회에 대한 실망, 가족들에 대한 원망, 나에 대한 절망….
혹시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묶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낙심하게 만들고 우리의 시야를 어둡게 하며 우리의 생활을 위축시키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는 요셉을 통해 놀라운 신앙인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절망과 나의 상처와 나의 분노를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도구로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볼 줄 알았습니다. 삶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요셉은 이러한 믿음을 같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두 가지로 그의 아름다운 신앙을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섭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목적하신 것을 위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간섭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오전에 배운 ‘하나님의 작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섭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들이 하나하나 실행하시는 것을 섭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우연히 또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그분이 목적하신 대로 계획에 맞게 실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난 것은 내 의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나의 남편 또는 아내를 만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만난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일어났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어떠한 성격 또는 모습을 띠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함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함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삶을 섭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는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때로는 이유 없이 폭풍 가운데를 지나게 하시기도 하고, 우리 힘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도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엎디려 기도하기도 하고 밥을 굶어가며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계속되고 깊은 영적인 어둠의 시기를 경험하면서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나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는가? 사람과 환경에 대한 원망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옮겨질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신을 안위하고 있음을 체험하고 묵묵하고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원망과 분노 속에 자신을 한참 동안 묶어놓아 버림으로 주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 가운데 증거하는 것은, 결국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 선함은 내가 기대하는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이루고 싶어 하시는 그 분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의 뜻은 목적한 곳까지 우리를 끌고 가시겠다는 그분의 의지 표현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를 실패하게 하시고 절망하게 하시며 때로는 원치 않는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목적지까지 끌고 가시려는 그 분의 선하신 계획이며 그분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그 실패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그 질병에도 죽지 않고 살아있지 않습니까?
그 고통스러운 상처를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내가 잘해서입니까? 내가 노력해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현실이 있습니다. 가족 가운데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계십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앞날에 대한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무언가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보지만 이뤄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 미래를 소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내 생각과 판 단속에 갇혀 있으면 절망적이겠으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서 평안함이요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1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이 뜻은 선함이며 기쁨이며 온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2:2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올해와 마찬가지고 새해에도 하나님의 손길은 그분의 선함을 우리 가운데 이루시기 위해 분주히 달려갈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형들을 용서하고 자기 삶에 있었던 모든 상처와 분노를 깨끗하게 씻어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니 형들을 긍휼히 여기게 된 것입니다. 일체의 옹졸함이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함께 형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솟아났습니다. 그것은 억눌린 과거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시편105편에는 요셉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시편 105:17–19
17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다라고 했는데, 원래 몸이라고 번역된 “네페스”는 영혼을 말합니다. 영혼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표현이 어색하여 몸이 쇠사슬에 매인 것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원뜻은 영혼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에 대한 적당한 사자성어가 있다고 말씀드렸죠. 혼비백산魂飛魄散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보낸 13년 시간이 혼비백산한 시간이었습니다. 도무지 자기 삶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 내가 이 타국땅에서 노예 신세가 되어 살아야 하는가? 형들에게 팔리고,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써 옥살이하고, 자신이 잘못해서 받는 고난이라면 그나마 견디겠지만, 누구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그에게 닥친 억울한 현실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깨닫게 된 순간이 언제일까요?
그것은 그의 형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자신 앞에 나와 절을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요셉은 오래전 꾸었던 꿈을 기억해 냅니다. 그 꿈은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꿈은 내가 꾸는 것이 아닙니다. 꿈은 꾸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릴 적 그가 꾸었던 그 꿈을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삶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서 이끌려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은 그분의 선함을 이루고야 마셨습니다.
요셉은 상처를 생각했다면 형들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 난 발걸음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은혜가 덮으면서 인도해 왔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 선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그는 체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해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한 일들도 많았지만 후회스러운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잘한 일도 있지만 잘못한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섭리는 우리를 하나님의 선함으로 이끌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로 인해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만 소망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질병으로 인해 건강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내게 허락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랑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상처로 인해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따듯한 손길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도 없고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하게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우리를 지금도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새롭게 시작하는 2024년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기대는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구름을 잡는 듯한 기대도 아닙니다. 이 기대는 너무나 확실하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함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기대와 소망으로 한해를 출발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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