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신년감사예배 “여호와를 소망합니다”
시편 37:5–11
5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새해를 맞아 각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내 자녀가 좋은 사람 만나 가정을 이루길 소망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내 집 마련의 소망을 가진 분도 있을 것입니다. 고3을 둔 부모님께서는 좋은 대학을 진학하길 소망할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소망은 코로나가 속히 종식되어 일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이보다 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1.여호와를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9절에 보면,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호와를 소망하는 무엇일까요?
소망이라는 것은 내가 무엇을 이루고 싶다거나, 또는 어떤 것을 가지고 싶다거나, 어떠한 일이 일어나거 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주로 무엇에 대한 것이지 누구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새해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무엇을 소망한다고 하지, 누구를 소망한다고 하지는 않거든요. 내 집 마련이나 취업 다이어트를 소망한다고 하지, 저는 아빠를 소망해요. 저는 엄마를 소망해요 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를 소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여호와를 소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소망한다고 할 때는 그동안 소망했던 모든 것들이 헛되고 부질없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폐에 이상소견이 나왔습니다. 암일 수 있으니 정밀검진을 받아보라고 합니다. 검진 후 암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암의 전이상태와 위치로 보아서 저희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CT, MRI를 판독한 의사는 말합니다. 저희 병원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병원의 모의사가 폐암치료에 탁월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모니터를 신중하게 판독하던 의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 수술이기는 하지만 치료가 가능합니다.
이 때 환자가 의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선생님이 저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소망한다는 것은 이 땅에 내가 소망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진 상태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무엇도 우리에게 소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암진단을 받으면 그때부터 암환자가 됩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3주후에는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떠나게 돼 있었습니다. 몇 개월 후면 박사과정을 마치고 그토록 꿈꾸던 S기업에 취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 달 후에는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합니다. 꿈꾸던 것도 기대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모든 것들이 무너집니다. 꿈꾸던 것도 기대했던 모든 것들도 사라집니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소망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든 모두 죽음에 걸려 있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확실한 미래일 뿐만 아니라 현실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그리고 그 언제를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먼 미래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 일 수도 있습니다.
40대 삼성연구원 남편을 둔 아내가 쓴 “내 것이 아닙니다”라는 글입니다.
블로그에 쓴 글을 전에 보았는데 영상에 담겨있어서 퍼왔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Umk5Np2nik
새해 첫 주일부터 우울한 영상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정확하게 인정해야 참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죽음에 걸려 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일찍 죽는 것도 아니고, 어리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의 현실은 늘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무엇을 소망하시겠습니까?
여전히 여러분들이 붙들고 있는 그 소망 끝까지 붙잡고 가시겠습니까?
죽음의 현실 앞에 산산이 부서지는 그 헛된 소망을 여전히 붙드시겠습니까?
기독교는 그러한 소망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부자가 되는 것 아닙니다. 예수 믿는 다고 암에 걸리지 않는 것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고 사업에 성공하는 것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고 소원 성취하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이러한 소망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러한 소망 붙들고 계시다면,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참된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절망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소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몬트리올 예수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워낙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만은 기억합니다.
주인공이 죽어가면서 자신의 장기를 기증합니다. 영화의 장면은 장기들이 하나씩 적출되어 죽어가는 생명에게 이식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생명을 얻은 사람들 모습,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은 심장이 죽어가는 나를 위해 자신의 심장을 떼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볼 수 없는 나를 위해 두 눈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소망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시편 62:5–6
5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소망한다는 것은 이 땅의 모든 것들이 헛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오직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소망할 때 우리는 안전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2.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여호와 자신이 복의 근원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호와를 소망으로 삼는 자들에게 축복을 약속합니다.
1)땅을 차지함
시편 37:9
9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부동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입니다. 죽어서 가는 저 하늘의 어느 곳이 아니고, 지금 여기서 누리는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편 37:11
11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풍성한 화평입니다. 그냥 화평이 아니라 풍성한 화평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화평이 풍성하기에 그 풍성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시편 37:16–17
16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비록 적은 소유로 살지 모르지만 악인의 풍부함보다 풍성한 삶을 삽니다.
전에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스팸메일을 받고 속은 적이 있습니다. 편지로도 오고, e메일로도 왔으니 완전 속은 것입니다. 10억의 돈을 놓고 아내랑 어떻게 쓸지를 의논했습니다.
먼저는 한국에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집을 장만하자. 또 신학공부도 하고 싶고, 그리고 교회를 개척해서 하나님을 섬기자.
나중에 스팸인줄 알고 실망하긴 했지만, 지금 저희는 그때 소망했던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비록 10억 원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10억 이상의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비록 저희 집은 아니지만 문을 열면 국립공원인 곳에서 삽니다. 아내가 신학대학 이어서 신대원까지 졸업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했고 이렇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 명 아들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누구도 부럽지가 않아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비록 적은 소유지만 풍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2)베푸는 삶을 삶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의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편 37:21
21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들은 적은 소유 가운데서도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삽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소유가 적은데 베푸는 삶을 삽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베푸는 만큼 채우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3)자녀가 복을 받음
더 나가서 이 축복은 자녀들에게까지 미칩니다.
시편 37:25–26
25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들의 자녀들의 걸식함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자녀들에게 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적은 소유 중에도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었더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받는 축복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부모님이 뿌린 헌신의 열매를 우리가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한 가정은 자녀 때에 복을 받습니다. 그 열매를 자녀들이 누립니다.
우리가 자녀들 독립할 때 아파트 한 채 해주고, 수억 원의 돈이 든 통장을 쥐어주는 것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복 받는 자녀로 키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복은 우리가 줄 수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 비결은 내가 베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다면 이렇게 교회를 개척해서 섬기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하 교회를 전전하다 겨우 지상교회로 올라왔지만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척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요?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것은 아닌지 밤잠을 뒤척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노회가면 어르신 목사님들이 저를 대견해 하세요. 저희 아버지와 친구였던 분들입니다. 6년 전 저희 집에서 청년 두 명과 개척을 했는데 이제는 어려운 목회자를 섬기고 선교사님들을 돕고, 이웃을 구제하는 교회로 든든하게 서가고 있습니다.
제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저는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충성과 헌신의 열매를 먹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손으로 축복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 비결은 베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그 분이 주는 것을 만족하며 적은 중에도 베푸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4)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음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이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영원토록 받습니다.
시편 37:24
24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 37:28
28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시편 37:39–40
39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40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붙들어 주십니다. 영원히 보호하십니다. 환난 때에 요새가 되어 주십니다. 어려운 순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보호하신다는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또 그 의미를 막역하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시편 121:1–2
1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도우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전쟁에서 도우시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시작하셨다는 것은 반드시 승리하고 완성될 것을 의미합니다.
부목사로 섬길 때입니다. 교회를 1년 넘도록 쉬셨던 성도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운영하시는 식당으로 찾아갔습니다. 교회근처 상가 2층에서 칼국수 집을 하셨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얼마 전 손님의 아기가 창문이 열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밀려 열리는 창문이었습니다. 아이가 턱에 앉아 있다가 창문이 열리면서 떨어진 것입니다. 난리가 났었겠죠. 그런데 떨어지면서 1층 과일가계가 쳐놓은 캐노피에 안착한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안전하게 말입니다.
아기를 품에 안은 부모는 먹던 칼국수 다 먹고 밥까지 비벼먹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저희를 도와 주셨어요. 그래서 감사해서 목사님 오시라고 한 거예요”
그 순간 하나님이 떠오른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를 위험에서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 자녀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낮에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지키십니다.
100여전 절망 속에 있는 조선 땅에 복음이 들어와 불과100년 만에 이 땅이 이렇게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의 소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올해 우리가 교회가 세상에 소망이 되는 교회가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절망가운데 소망을 주는 성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교회가 소망이 될 수 없고, 내가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기에 소망되신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절망가운데 있는 자들이 주님을 만나면 소망을 갖게 되고 일어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2022년 한해 하나님을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가정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