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추수감사주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15–17
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제 기도제목중에 하나는 우리 아이들이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라는 것은 자주 감사를 느끼고 표현하는 정도가 아니라, 감사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영어성경은 대부분 “be thanklful로 번역했고요, 새번역성경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감사의 행위(doing)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존재(being)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과나무이기에 사과 열매를 맺히듯, 감사하는 자가 될 때 감사의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존재 자체가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범사에 감사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항상 감사가 넘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너무 감사해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분과 잠시만 교제해도 행복해집니다.
행복의 비결은 감사에 있거든요. 감사하는 만큼 행복합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자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감사하는 자는 평생 감사하며 살고요 불평하는 자는 평생 불평하며 삽니다.
이것은 물질의 많고 적음, 재력의 정도, 건강의 상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늘 감사가 넘쳐요. 불평하는 자는 늘 불평 꺼리를 찾아요.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았어요. 왜 그럴까? 타고난 성향인가? 누군가는 특별히 감사의 DNA(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이를 키워 보니까 긍정적인 아이가 있고 부정적인 아이가 있는 거예요. 긍정적인 것을 흡수하고 좋은 길을 선택하는 아이가 있고요, 부정적인 것을 쉽게 흡수하고 아이가 있어요. 짜증이 많아요.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계속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주면 또 다른 것을 요구해요. 만족함이 없어요. 이것을 타고난 성향이라고 해야 할지 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 기도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해 주세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감사하는 자인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길 원합니다
골로새서 3장은 특별히 감사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에 “감사하는 자라 되라”고 하시고요,
골로새서 3:15
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절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 3:16
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절에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3:17
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장 전체가 감사로 결론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감사하는 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골로새서 3:2
2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바울은 이 편지를 로마 감옥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 사형에 처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 그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울이 감사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원래 감사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냉정했고, 비판적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13
13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런 그가 감사한 자가 되었고 골로새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이 감사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의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의미하고 땅의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면 마땅히 위의 것, 즉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3:1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러면 위의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또 땅의 것은 무엇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3–4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늘에 간직한 것은 공간적인 하늘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위의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입니다. 3절에서 이것을 산소망 living hope라고 말합니다.
반면 땅의 것은 무엇입니까? 죽은 소망입니다. 그것은 썩고 더럽고 쇠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위의 것”은 베드로에게 “하늘에 간직한 유업”으로 표현되고 있고 그것은 “산 소망”이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것이 항상 있다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는 썩지 않습니다. 우리가 간직한 믿음은 어떤가요?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망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세상을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그 날을 기다리는 소망, 여러분이 간직한 소망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어떤가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은 영원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가치는 영원합니다. 썩지 않습니다. 더럽지 않습니다. 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날로 새롭고 풍성해집니다.
반면 땅의 것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죽은 소망입니다. 세월의 흐름과 상황에 따라 쇠하고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젊음도 한때입니다. 돈은 어떤가요? 돈처럼 허망한 것이 없죠. 권력의 자리나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땅의 것은 썩고, 더럽고, 쇠합니다. 죽은 소망입니다.
그래서 땅의 것을 추구하는 자들은 감사하는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감사하는 자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땅의 것이 주어질 때만 감사합니다. 일시적입니다. 조건적입니다.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반면, 위의 것을 추구하는 자들, 산 소망을 추구하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범사에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유한 하나님 나라의 자원은 세월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어도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거든요.
영원한 것을 소유한 사람은 일시적인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만일 백화점 주인이 물건 중에 아무거나 하나 가지라고 하면 여러분은 뭐를 고르시겠어요.
1층 보석상에 있는 다이아몬드일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소유한 사람은 그 어떤 명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다이아몬드가 값비싼 이유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산 소망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참된 만족함이 있어요. 결핍이 없습니다. 부러운 것이 없어요. 예수님과 친밀한 사람들.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동행하는 사람들이 부럽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따라서 감사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입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구주로 모신 자들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여전히 땅의 것들, 죽은 소망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있어요. 예수님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것과 같아요.
따라서 감사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단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만 알아도 땅의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이며 그러한 나를 구원하신 그 큰 사랑을 알게 되면, 이 땅의 소망이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깨닫습니다.
바울은 그가 자랑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는 오늘날로 하면 금수저로 태어나 최고의 학위를 얻었고 유대사회의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러한 것을 버린다고 말하거든요. 왜 그런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빌립보서 3:8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는 이미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를 얻고 싶다는 것은 더욱 주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기에 주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버린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기도에 관한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마태복음 7:7–11
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 주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에서는 동일한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1:13
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임재하십니다.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좋은 집을 구하지만 하늘 아버지는 성령님을 주십니다.
우리는 건강을 구하지만 하늘 아버지는 성령님을 주십니다.
우리는 명문대학을 구하지만 하늘 아버지는 성령님을 주십니다.
우리는 사업의 성공과 대박을 구하지만 하늘 아버지는 성령님을 주십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성령님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성령님을 소유하게 되면 다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2.용서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감사하는 자들은 이웃들과 평강의 관계를 맺습니다.
바울은 감사하는 자라 되라는 권면에 앞서 길게 용서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자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용서와 사랑으로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용서하고 용서를 받고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자들이 감사하는 자들입니다.
골로새서 3:13–14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대부분은 관계를 통해 옵니다. 우리가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곁의 사람들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믿고 신뢰했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나 또한 의도치 않게 상처와 실망을 안겨주시고 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피하고 멀리하면 될까요? 실망한 공동체를 떠나면 해결될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골로새서 3:13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불만이 있다면 항의하고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납은 그 사람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나에게 끼친 재산상의 손해나 신체의 상해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납과 용서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용납까지는 그래도 할 수 있는데 용서까지 하려면 보통의 신앙과 인격으로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인격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하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와 같은 죄인을 어떻게 용서하셨는가를 알게 되면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용서라는 큰 주제를 다룰 시간은 없습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 가깝게는 가족, 그리고 교회 성도들과 이웃들. 그들과 화평한 관계를 이룰 수 있을 때 감사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허물을 엎어주고 연약함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어.” 하며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남의 눈에 티끌만 보면 안됩니다. 내 눈의 들보를 볼 때 용서할 수 있어요.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허물과 죄에 대해 관대합니까? 이러한 나를 하나님이 용납하시고 용서하셨음을 안다면, 이웃들의 허물과 죄에 대해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용납과 용서를 통해 이웃들과 화평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불만이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용납과 용서에서 멈추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골로새서 3:14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나는 그를 용납했어.” “용서했어니 됐어”의 차원을 넘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라는 것은 그와 나의 관계가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하나되기 위해서 우리 죄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죄인인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너희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사람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를 통해 그와의 관계에 있어 온전함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평강의 관계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골로새서 3:15
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를 주관하게 함으로 이웃들과 평강을 이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굳이 이웃들과 평강을 이뤄야 하냐고 물으면 성경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너희가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큰애와 둘째가 자주 싸웁니다. 아이들에게 “화해해.” 말합니다.
큰애가 말합니다. “왜 꼭 의성이와 화해해야 해?”
“그래. 아빠가 너희 둘이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라고 가족으로 부른거야.”
사실이 그렇거든요. 험악한 세상, 둘이 의지하고 살라고 가족으로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가족으로 부르셨어요. 그래서 상대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 용서하고 용납하며 더 나아가 사랑해야 합니다. 평강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공동체가 그랬으면 합니다. 그럴 때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3.예수님을 힘입을 때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힘입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17
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여러분, 추수감사주일에 우리의 기도제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해주옵소서.
그러기 위해 위의 것을 찾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으로 인해 참된 만족과 풍성함을 누리게 하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불만이 있었던 사람을 연약함 그대로 부족함 그대로 용납할 수 있게 하시고, 그가 내게 끼진 잘못을 용서하며 마침내 그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이웃들과 평강의 관계를 유지하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위의 것으로 만족하고 이웃들과 평강할 때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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