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실황 전체 영상
건강한 교회 세우기
본문: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건물을 소유하지 않는 교회
2015년 3월 22일 덕명동 작은 집에 네 명이 모여 예배드렸습니다. 효철이와 지금은 이 자리에 없는 명환이 그리고 아내와 저입니다. 얼마 후 임집사님과 창문형제가 합류하면서 여섯명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작은 모임이었지만 마음은 풍성했습니다.
생활비는 아내가 벌었습니다. 어린이집 체육교사와 가베교사를 병행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였습니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부터 목회와 일을 병행했던 터라 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충분한 시간 말씀공부에 전무할 수 있었고 아내고 일하는 것을 힘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교회헌금과 지인들의 후원으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물질로 후원해 주신 분들이 지금은 대부분 이 자리에 계십니다.
2015년 11월 한밭대 앞에 사무실을 임대하였습니다. 6명의 성도가 그동안 모은 헌금으로 보증금 1천5백에 월세 65만원에 계약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테라스가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고기도 구어 먹고 차도 마시고 할 생각에 마음이 설렜습니다. 테라스 화단에 꽃도 심고 상추, 고추, 토마토도 심어 먹었습니다.
빈공간에 창문선생님 학원의자 20개를 깔아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설교를 하면 소리가 울려서 꼭 동굴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돈이 조금 모이면 냉난방기를 설치하고 또 모이면 씽크대를 설치했습니다. 그렇게 교회기물들이 하나하나 채워졌습니다. 그곳에 예배의자 30개의 놓았습니다. 당시로서 서른개의 의자가 채워지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빈자리가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교회문을 열고 들어오신 분은 김진수집사님 가정이었습니다. 수요일 예배 장소를 찾다가 저희 교회에 오신 것입니다. 늘 수요일이면 혼자 찬양하고 기도하고 돌아갔었는데, 다섯 분의 성도가 자리를 채우니 신나고 힘이 났습니다. 수요일과 주일 그렇게 자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이후 한 가정 한 가정 저희교회를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송형숙전도사님, 효진이, 경원형제 그리고 최수정 권사님 가정, 매 주일 24평의 작은 공간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어느새 30개의 의자에 성도들이 채워지고 2017년 송구영신예배에 네 가정이 예배들 드리러 오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10개의 의자를 주문하여 움직일 공간도 없이 40개의 의자가 가득 채워졌습니다.
2018년 새해부터 새로운 공간을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보증금 삼천만원에 월세 백오십만 원 정도의 사무실을 찾다 다녔습니다.
백오십만원 이상은 보지도 않았습니다. 개척교회는 월세가 늘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한밭대 근처의 새로지은 건물들이 60평 기준에 월세 3백만 원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새**2교회가 건축으로 건물을 비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가 기도했던 가격이었습니다. 즉시 성도들의 동의를 얻어 계약을 진행하여 작년 10월 10일 이 자리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처음 80개의 의자를 놓았습니다. 이전하고 성도님들이 계속해서 저희 교회를 찾아주셨습니다. 올해 중반기를 지나면서 80개의 의자가 거의 채워졌고 의자를 더 구입하여 현재 100개의 의자가 놓여있습니다. 매주 아이들을 합쳐 90명의 성도들이 예배들 드립니다.
저는 이곳이 기쁜우리교회의 마지막 예배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교회이름으로 건물을 소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출산률로 다음세대의 아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부흥하고 안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아이들이 없습니다. 한해에도 문 닫는 학교가 많아지고 학급 수는 줄어들고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통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건물은 넘쳐나고 있고 또 계속 짖고 있습니다. 또 곳곳에 폐허가 된 기도원과 수련원은 얼마나 많습니다. 성도의 귀한 헌금이 낭비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건물을 지으려고 헌금하거나 노력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집 없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남의 건물 빌려 쓰다 보면 번거로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곳에 성도들이 차고 넘치면 그때 2,3부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것도 넘쳐나면 침신대 강당을 빌려 예배드릴 수도 있고, 교회를 분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공식적으로 드리는 이유는 이 말에 제 자신을 묵어버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말했으니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건축만 하지 않아도 선교나 구제 사역에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개척교회의 목사님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어려운 분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노동을 통해 느려진 귀한 헌금이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곳에 가치있게 사용되길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비록 작지만 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칭찬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2.가정이 행복한 교회입니다.
처음 교회를 시작하면서, 가정이 행복한 교회를 세우길 기도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녀들이 부모님이 들려주시는 말씀 안에서 자라나고, 주일에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한자리에서 예배드리며, 설교를 통해 주신 말씀들이 가정 안에서 나눠지고, 주중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삶을 다하다가, 주일에 모일 때 모두가 기쁘고 행복하길 기도했습니다.
가정에 충실 하는 것, 직장에 충실 하는 것, 그것이 영적예배라고(롬12:1) 믿었기에 주중에는 별다른 프로그램도 예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전 교회에서 열심으로 교회를 섬겼던 분들은 허전한 마음도 있었을 것으로 압니다.
가정의 행복은 저희교회가 지향하는 핵심가치입니다.
여러분들의 그동안 어떠했습니까?
남편과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셨습니까? 가정에 충실하고 직장에 충실하게 되셨습니까?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2-1 전세대 통합예배에 관하여 말씀드립니다.
주일에 자녀들과 함께 예배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시작하여 신약의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도 온가족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러다가 1940년대 말부터 산업화가 시작 되면서부터 부부가 함께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때 자녀들의 교육을 주일에 교회에 일임하는 형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일학교라는 이름으로 현재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서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주일학교의 형태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찬양과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신앙의 전통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또한 신앙 교육을 교회에 일임하는 무책임함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부모가 성찬에 참여하고 찬양하며 예배하는 모습을 통해 신앙을 배웁니다.
성도들은 자녀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용찬이 나애나 기강이가 청년 형들 누나들과 함께 볼링을 치기도 합니다.
4살짜리 희수가 여러분들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김기숙집사님, 최수정권사님, 창문이 형, 효철이 형, 다솔이 누나....아이가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세대 간의 간극이 없어지고 모두가 함께 예배하고 교제합니다.
3. 민주적 교회 운영입니다.
영국의 액튼 경이 설파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중된 권력의 폐해를 가장 잘 표현한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교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돈 문제와 함께 주로 대형 목회자들의 제왕적인 권력 집중 현상으로 부터 유래되고 있습니다.
민주적 교회운영에 대하여 반대하는 분들은 교회는 신본주의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목사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 독단적 판단과 결정을 해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을 정탐한 후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을 예로 듭니다. 그들은 다수결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기에 교회는 하나님 앞에 신실한 소수들이 교회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정탐 사건은 이미 주어진 하나님 뜻을 사람의 의지로 거역한 일입니다.
우리가 민주적 운영을 하려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다수결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 동성애, 십일조 등 이미 성경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토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형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주일 식사는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교회 헌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민주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결국 교회는 힘있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끌려다닐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목사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비록 구원받아 주의 일을 하지만 이 땅에서는 개인적 욕망과 야망에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신본주의를 이루어 가려고 할 때 가장 안전한 장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입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의견보다 다수의 의견이 낫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비록 절차가 까다롭고 일처리가 느릴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이룰 있는 안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 장로회는 모든 결정을 장로들의 모임인 당회에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로는 성도들의 투표로 세워진 성도 대표자들입니다. 전에 부역자 시절 인사권이 담임목사에게 있다고 은근히 위협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인사권도 당회에 있습니다. 모든 결정권은 당회에 있지 담임목사에게 있지 않습니다.
물론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이나 잘못된 민주주의 폐해 역시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제도입니다.
장로는 세례교인 25명 이상이 될 때 한분을 세울 수 있습니다.
현재 저희교회는 당회가 없기 때문에 이를 대신할 기구로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모든 결정은 여러분들이 뽑아주신 운영위원회가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성도들이 세운 대표자들에 의해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목사가 대표자를 세우게 되면 목사의 종이지 성도들을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며 하나님이 주인되신 교회가 아니라 목사가 교회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저희교회는 6년에 한번 공동의회를 통해 목사가 재신임을 받게 됩니다.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만 사역을 지속하게 됩니다.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저도 영적으로 안주하지 않을 것입니다.
4.평등의 공동체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합니다. 초대교회 때 교회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습니다. 주인과 종이 함께 예배드리고 남녀의 구별이 있으나 차별은 없었습니다. 부한 자와 가난한 자, 권력층과 빈곤층이 거리낌 없이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의형제요 자매라고 말씀하신 것에 근거합니다.
또한 바울서신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사회적으로 규정된 신분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형제요 자매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세교회는 교회의 직분자들을 구별하고 그들을 좀 더 높은 계급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들은 성직을 따로 구분하였고 성인으로 추대하기 까지 했습니다. 교회의 성직자들은 품격이 다른 자들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고해성사를 통해 죄사함의 권한까지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중세교회의 타락에 맞서 루터와 칼빈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성경적 교회로의 회복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적 교회를 회복하려는 운동중에 하나가 바로 평등의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적절하게 제도화한 것이 바로 장로교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장로교는 교회의 대표인 장로들에 의해 교회가 운영되는 것입니다.
장로교는 교회 운영과 말씀선포가 구별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장로를 목사라고 하였고 교회를 운영하는 대표들을 장로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목사의 주된 사역은 말씀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이며 장로의 주된 사역은 교회를 치리하고 성도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교회의 재정적인 일들을 집사를 세워 운영하였습니다. 장로가 교회 내부의 일을 주로 담당하였다면 집사는 교회 외적인 구제나 돌봄 섬김이 주된 사역이었습니다. 장로나 집사는 세움에 있어 중요한 기준은 은사였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일을 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점검하는 과정이 투표였습니다.
그런데 장로교가 한국 땅에 들어오면서 이상하게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의 카톨릭교회처럼 직분을 명예나 성직으로 여기는 현상이 생겨난 것입니다. 교회의 어떤 한 일을 위해 성도들이 추천하고 투표하여 세워지는 것이 직분자들인데, 직분이 명예가 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장로를 안수집사 가운데서 선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미 교회 안에 권력 계급을 만드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장수집사, 서리집사 순으로 권력층을 형성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을 명예장로, 원로장로, 명예권사 등 직분 자체가 그 의미와 본질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원래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운영위원회가 장로의 직분과 같습니다.
네델란드 장로교의 경우에는 장로의 임기가 있습니다. 3년 또는 4년입니다. 임기가 있는 것은 대부분의 장로들이 직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임기를 둔 것입니다. 그 임기가 지나면 장로에서 사면됩니다.
집사는 재정을 담당하는 일을 했으니까 우리교회로 치면 송전도사님입니다. 그래서 목사를 포함하여 장로와 집사를 교회의 직원이라고 하고 이들은 교회의 주보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진과 함께 올라갑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각 교회마다 직분의 종류도 많고 직분자도 많습니다.
권찰, 서리집사, 안수집사, 권사, 명예권사, 장로, 명예장로, 협동장로, 원로장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가 직분이 사역이 아니라 명예와 권력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평등의 공동체입니다. 직분은 단지 교회를 섬기고 세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부여받은 사역일 뿐입니다. 명예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목사로부터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평등합니다.
누가 더 낳지도 못하지도 않습니다.
한국의 부교역자 시절 뉴질랜드 사역자들에게 저를 소개하면서 나는 부목사라고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Vice pastor입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목사면 목사지 부목사라는 것이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목사가 계급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무슨 기업도 아니고 사장이 있고 부사장이 있는 것이 아니죠.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교회를 변질시키고 타락시키는 요소들인 것입니다.
외국이야 이름을 부르니까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국은 이름 뒤에 호칭이 들어가야 부르기 편합니다. 몇몇 개혁적인 교회들은 직분을 없애고 형제, 자매라고 호칭하기도 하고 또는 성도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은 제 개인적으로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과연 평등의 공동체를 이룸에 있어서 현재 한국교회의 보편성을 따라가야 하는지, 아니면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지는 여러분들도 함께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반석과 같은 신앙고백위에 세운 교회는 반석위에 세운 교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할 교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와 같은 반석위에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와 같은 정신을 이어가기 위하여 정관을 만들었습니다. 목사의 정년을 단축한 것도, 담임목사가 6년 마다 재신임 투표를 받게 한 것도, 원로 제도를 없이 한 것도 다 사람이 주인인 되회가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말씀 드린 내용을 우리의 반석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중요한 반석이 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네가 하나님이다. 네가 교회의 주인이다. 얼마든지 네가 교회의 주인노릇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유혹할 겁니다.
그런 시험에 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어 기도하는 교회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을 예수님 오실 때까지 이어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