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기타

20-11-17 10:39

2020 추수감사주일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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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주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15 

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조용하고 차분한 감사절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부활절도 그러했고……. 

이러한 추세라면 성탄절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보낼 것 같습니다. 

 

저희교회의 자랑 중에 하나가 성도의 교제였습니다. 주일이면 잔칫집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있고 어르신들의 푸근한 웃음 속에서 주일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멈추어 많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발견하고 감사해야 하는 주의 백성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주제는 감사하는 자라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제가 주목하는 것은 “감사하라”가 아니라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라”는 것은 명령이지만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은 우리 존재의 어떠함을 의미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감사하는 분들이 있고요 그렇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반면 감사하지 않는 분들은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소가 풀을 먹으면 우유를 생산하죠. 그러나 뱀이 풀을 먹으면 독을 생산합니다. 같은 음식일 지라도 그것을 먹은 존재가 누구인가에 따라 생산되는 것이 다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고통을 먹고도 감사를 생산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모두가 원망하는 상황에서도 감사합니다. 

 

이것은 감사가 상황이나 조건에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자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울입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서신서들을 보면 한결같이 항상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20 

20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데살로니가전서 1:2 

2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빌립보서 1:3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로새서 1:3 

3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1:2 

2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빌레몬서 4 

4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바울은 항상 감사했고 기도할 때 마다 감사했고 성도들을 생각할 때 마다 감사했습니다.  

이 중에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감사할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데 감사합니다. 

 

성공회대 석좌교수였던 신영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옥중생활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시대의 지식인이었던 신영복도 감옥에서의 생활은 증오의 감정과 자기혐오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떠합니까? 그는 항상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감사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상황과 조건이 만족하면 감사하고 그렇지 못하면 원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옥중생활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바울의 영적인 성숙함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제 자신만 해도 작은 일에 쉽게 낙심하고 우울해 합니다. 걱정도 많이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감사하는 자입니까? 

 

구원받았다는 것은 신분의 변화를 말합니다. 

사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죠. 세상과 짝하며 살던 자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미움과 증오 가운데 살던 자가 용서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하던 자가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떤 선한행위를 하는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으로 성장시키시고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은 순결한 자들로 성숙시키십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자가 될수록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언제 철들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감사하는 자가 되었는가를 보면 압니다. 당연시 여기던 것을 어느 순간 감사해 하죠. 어떤 자녀들은 부모가 먹을 것 입을 것 아껴 가며 모은 돈으로 집한 채 해주어도 별 감사가 없습니다. 아직 철부지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시는 부모님께 “낳아주신 것, 길러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요” 하는 자녀들도 있죠. 성숙한 것입니다. 

 

영적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아직 영적인 철부지입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하는 성도들은 성숙한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감사하는 성숙한 성도입니까? 아니면 철부지 성도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사하는 자로 빚어 가십니다. 여러분이 처음 예수를 믿고 구원의 감격 가운데 있을 때는 모든 것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원의 감격이 서서히 사라지고 감사도 줄어들게 되죠. 

이것은 정상적입니다. 

 

우리의 열정과 감격은 식게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기 시작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았던 우리를 성숙한자들로 빚어 가십니다. 사람이 성장함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 고난입니다. 특히 내 지혜와 경험과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고난 앞에 서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사업에 실패하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질병으로 인해 건강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자녀들로 인해 절망하기도 합니다. 신실한 성도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닫혔던 눈과 마음이 서서히 열리게 됩니다. 

 

그동안 탐욕에 눈이 멀고 세상 욕심에 마음이 닫혔던 우리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게 되면서 눈과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 순간 그동안 내가 당연시 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평범한 일상의 삶이 그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당연하게 누렸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건강의 소중함을 질병에 걸리고서야 깨닫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코로나로 인해 잃고 나서야 깨닫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삶의 과정을 통과하며 우리는 작은 일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죠. 그러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는 것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가야 감사하는 줄 알았는데,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주어도 감사하죠. 아파트 평수가 넓어지고 통장에 잔고가 쌓여야 감사하는 줄 알았는데, 비 가릴 집이 있는 것과 밥 세끼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의 풀무 불을 통과시키면서 감사하는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고난을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발견한 것입니다. 내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건지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감사하는 자들로 세워 가십니다.

 

시편107편을 보시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신과 인자하심을 감사합니다. 그가 이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을 겪었는지를 말합니다. 

4절, 광야와 사막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했습니다. 

10절,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23절,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다가 큰 광풍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사업에 큰 어려움을 당한 것이죠. 

 

시인은 이때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러면서 고백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허용하시고(조장하심이 아니라), 우리를 연단하셔서 감사하는 자로 빚으시는 것입니다. 

 

시편의 감사의 고백이 거의 이렇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며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희 외할머니께서는 6남매를 두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큰 딸입니다. 10년 전 암으로 둘째 딸을 하늘로 보내셨습니다. 얼마 후 큰 사위인 저희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둘째 아들인 삼촌을 하늘로 보냈습니다.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은 자녀를 먼저 보내는 것입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사위까지 세 명의 자녀를 하늘로 보낸 것입니다. 우울증에 걸릴 만도 하죠. 한숨과 낙심으로 살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감사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외할머니는 감사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6.25때 남한으로 피난 와서 삶의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을 겪으시면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살아가시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이 그리스도인으로 가장 파워풀한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예수 믿고 내가 소망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에 감사하는 것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더 강력하고 파워풀한 감사는 절망적인 순간, 낙심된 순간에 오히려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황과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설령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하여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나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심 나를 사랑하심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감사하는 자로 만들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자들로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감사의 조건들이 많이 채워지길 바랍니다. 사업도 잘되고 건강하고, 자녀들도 형통하고, 그러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감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노력들이 있습니다. 

건강하려면 건강 체질로 태어나야 하지만 또한 우리가 운동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한 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과 병행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작은 것에 감사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훈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큰일에도 감사합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지 못하면 큰일에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감사하는 자들의 특징은 작은 것에 감사합니다. 이들은 작은 것을 결코 작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당연히 주어진 거라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을 얻기 위한 과정을 과소평가 하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소중한 것인지를 압니다. 

그래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밥을 남기지 않습니다. 어릴 적 밥을 남기면 할아버지께서는 “지형아 농부가 이 쌀 한 톨 얻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노력했는데 이것을 남기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이 평생 쌀 한 톨을 아끼게 하였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밥을 남기면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을 그대로 합니다. 

 

아이들을 망치는 것 중에 하나가 필요한 것들을 풍족하게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에 대하여 당연하게 여깁니다. 모든 주어진 것들이 그 뒤에 어떤 노력과 수고가 있었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옷 한 벌을 사주어도 부모가 그 돈을 벌기 위해 애쓰고 수고한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교만해 집니다. 우리 애가 그렇더라고요. 이걸 깨닫고 이젠 가르칩니다.  

 

두 번째는 감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감사를 반드시 표현해야 합니다. 말로 표현하던 선물로 표현하던 표현해야 합니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항상 감사의 표현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1:4–7 (NKRV)

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빌립보서 1:3–6 (NKRV)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골로새서 1:3–5 (NKRV)

3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데살로니가전서 1:2–3 (NKRV)

2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만 말하지 않고 왜 감사한지 무엇이 감사한지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이렇듯 감사는 마음을 담아 무엇 때문에 감사한지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냥 감사합니다로 끝내지 말고 내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언급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예전에 적은 물질이지만 3년 동안 물질로 꾸준히 섬겼던 분이 계십니다. 

그분으로부터 한 번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액수가 너무 적어서 그러나? 아니면 실례가 되었나?

얼마 전 저희 교회에서 어려운 교회를 선정하여 3개월 동안 물질로 섬긴 적이 있습니다. 

아산에 계신 목사님께서 감사한 마음에 저희 교회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냥 전화로 해도 될 텐데 멀리서부터 오신 것입니다.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분들에게는 더 돕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성경에서도 은혜위에 은혜라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감사하는 자들에게는 감사할 일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들에게는 계속해서 감사할 일들이 생깁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감사할일이 점점 줄어듭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면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고 싶지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의 예물을 드리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고 싶습니다. 

 

지난 월요일 화요일 시찰목사님들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1박2일 동안 방역수칙을 지키며 진행되었습니다. 

수련회가 끝나자 카톡에 문자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감사의 내용입니다. 한분 한분 목사님의 이름을 거명하며 감사한 것들을 글로 남기셨습니다. 그냥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로 끝내지 않고 무엇이 좋았고 감사했는지 세밀하게 적었습니다. 

 

부족한 부분도 있고 아쉬운 것들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먼저는 감사의 표현이 풍성해야 합니다. 감사의 표현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인생은 감사하는 만큼 행복해 집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함께 하는 분들에 대한 감사가 풍성해 질 때 우리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감사절을 맞아 우리 안에 감사가 회복되고 풍성해 지길 바랍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어서 어떠한 삶의 여건에서도 감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인생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