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리는 지금 성탄의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심이 성탄입니다.
성탄은 하나님께는 큰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그 기쁨의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까요?
그것은 너무나 분명하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구원만이 성탄의 목적은 아닙니다
. 성탄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인격적인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함께 거할 존재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여러 가지 논쟁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보다 탁월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진화된 존재라면 우리는 개나 원숭이와 특별히 다를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위치할 자리가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엄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존엄한 인간을 창조하고 그들을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강제하거나 강압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존엄하게 대우하셨고 인격적으로 대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판단과 결정을 막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만 하면 자동으로 순종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프로그래밍한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빅데이타를 분석하여 가장 선한 길을 선택하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최근 바둑대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지만, 그렇다고 인간보다 탁월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탁월한 존재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선을 선택할 수도 또는 악을 선택할 수 있도 있는 존재, 즉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자유의지로 선하신 하나님을 자발적 그리고 인격적으로 순종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결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악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인간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함께 거하시길 원하지만 죄인과는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창조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했고 자신들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사단의 유혹을 받기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사단은 태초의 인간들에게 찾아와 선악과를 먹으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이전까지 인간들에는 선과 악의 판단결정이 하나님께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이라고 선이고 악이라고 하시면 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의 판단 자가 된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주체 자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무척이나 유혹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하지 순종하지 않고 스스로 선과 악을 규정하면서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네가 우중의 중심에 서는 것이라고 말하자 인간의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금단의 열매 하나를 따 먹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내 인생의 주체 자가 되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판단과 결정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인격적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를 충분히 예방하거나 막을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데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막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만든 가장 존엄한 인간들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스스로의 죄를 자각하게 되었고 더 이상 하나님과 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순결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들은 분해되거나 산산조각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에서 추방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즉각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한 그 자리에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창세기 3:15>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을 통해 사단을 완전히 진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할 수 없게끔 그리하여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목적하셨던 자신과 함께 거하게 될 그의 백성을 세우겠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그 일을 진행해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통해 후손을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을 지속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들을 통해 태어난 자녀들도 부모가 가진 악을 선택하는 DNA를 타고 났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에 태어난 모든 자들은 더 이상의 자유의지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들은 악의 본성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자유의지는 왜곡되었고 악을 탐하고 악을 즐기는 존재로 태어나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을 통해 그의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나가십니다. 비록 계속해서 태어나는 인간들이 악할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택정하신 자들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태어난 가인과 아벨, 그중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인간 죄성을 선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셋을 낳게 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번성하여 결국 바벨탑을 짖고 하나님의 대적하려 할 때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인류를 흩어놓으시고 홍수를 통해 온 인류를 심판하셨습니다.
그중 노아와 그의 가족을 남려 두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후손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시고 그를 통해 여인의 후손을 예비할 백성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백성은 이름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가나안에서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한 민족 이스라엘을 구성하시고 그들을 번성케 하시고 강하게 하사 가나안의 우상숭배하는 족속을 진멸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예배하고 섬기는 그의 백성을 심으셨습니다. 이들은 이제 창세기 3장에서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을 예배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기 이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기 보다 가나안의 문화에 동화되어져 갔고 마침내 가나안화 되어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고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됩니다. 그 결과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잔혹하고 추악한 악행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그의 신실한 백성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약속은 계속해서 흘러가게 됩니다.
이렇게 역사 가운데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너무나 악하였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타락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나의 약속은 신실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이사야 6:13)
하시며, 그루터기와 같은 거룩한 씨를 남겨두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사야 7: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하시면서 여인의 후손의 탄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바로 처녀임을 밝히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으로부터 약2천 년 전 한 처녀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게 됩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았으니 이것부터가 신비한 일입니다. 이 일을 증거삼기 위해 하나님은 동방의 박사 세 사람을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사 음성을 들려주심으로 이제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 약속하셨던 여인의 후손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초라한 마굿간의 물구유에서 말입니다. 누가 보아도 아기였고 누울 곳 없는 불쌍한 아기였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천군과 천사들을 이렇게 찬송하였습니다.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그리고 주의 천사들을 목자들에게 말합니다.
<눅2:10-11>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말구유에서 초라하게 태어난 그 아기는 바로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여인의 후손,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는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심으로 유전적인 원죄의 DNA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처녀로 태어나 죄가 없으신 분은 유일하게 예수 한 분이십니다
아기로 태어나신 구원자 예수는, 성장하시면서 인간의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아픔과 수고와 상처를 다 당하셨습니다. 금수저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속에서 자라지 않으셨습니다. 그랬다면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머리 둘곳 조자 없으실 정도로 가난 하셨고 늘 피곤하셨고 때로는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십자가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하고도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 그를 극진히 사랑했던 자들이 다 떠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예수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의 살아나심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가 진정 하나님이시며 자신들의 구원자임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는 곧장 그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시며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의 죗값을 감당하신 것이고 그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되었다고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로마정부에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들을 구원자를 전파하는 것이 몹시 흥분되는 일이었고 기쁨이었으며 죽음도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중에 요한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날 만찬을 하실 때 예수님을 기대고 누울 정도로 친밀하게 대했던 제자입니다.
그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 붙잡혀 밧보섬에 유배됩니다. 그곳에서 그가 성령에 이끌이어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됩니다.
그 계시의 클라이맥스는 이것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1-4>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장 소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눈물을 닦아 주시는 손은 누구의 손입니까?
바로 못자국난 예수 그리스도의 손인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픔과 상처을 이해하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손길이 우리의 모든 것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조금 있으면 우리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분은 2천 년 전 아기로 태어나 33년을 사시다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인간이 되셨을 까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그토록 우리와 함께 거하고 싶으실까요?
사랑의 완성은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입니다.
그러기에 성탄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지금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부족하십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무엇이 걱정되시나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미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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