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무엇을 감사할 것인가?/2015.11.14.
데살로니가 후서 1:3-5
3.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5.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오늘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진리 시리즈를 잠시 중단하고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창조의 목적, 감사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을 질서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우주의 별들의 움직임들이 중력과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질서 있게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의 거리를 가장 완벽하게 설정하시고 그것들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질서 안에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 땅의 식물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낙엽이 떨어지는 순환의 질서를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이 땅에 태어나 봄처럼 솟아나는 어린 시절을 지나 꽃이 피는 청년기를 지나 푸름이 무성한 중년기 그리고 가을의 단풍처럼 찬란한 노년기를 지나 낙엽이 떨어지듯 죽임이라는 질서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피조물들의 모든 모습들과 움직임들이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창조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밤하늘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의 찬란함을 본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별은 2004년 1월 2일 뉴질랜드 최북단 케이프링아에서 보았던 별입니다. 저는 차에서 내려 하늘을 바라보는데 그때 처음으로 별이 하늘이 아니라 내 눈앞에서 쏟아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그 별을 보며 느꼈던 것은 하나님의 광대하심이었습니다. 그 셀 수도 없는 별들은 반짝이며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답게 핀 꽃들은 우연히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추수의 열매를 맛보며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모든 열매는 인간이 수확하여 먹기에 그렇게도 알맞게 생겼을까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수확의 열매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매들은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이제 가장 빛나는 때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열매들은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베풀어져 우리는 이것을 추수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기억하고 또한 열매를 수확할 때까지 비를 내리시고 햇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맛보면서 이렇게도 다양하고 맛난 것들을 주신 창조주의 세밀한 사랑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
감사의 히브리 어원은 “야다”입니다. 이것은 “찬양하다”의 어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피조물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50편 6절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감사와 가치관
그런데 이 감사는 우리의 가치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감사는 억지로 쥐어짜내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삶에서 범사에 감사하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 감사는 대부분 우리가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얻을 때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감사하는 것을 들으면 그의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가치관이란 가치의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것에 가치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는 감사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감사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도들은 영원한 것을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2-3
2.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골로새서 1:3-5
“3.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바울은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항상 주목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사랑이 있는가? 이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고 또한 형제를 향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있는가? 즉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13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이 세 가지 엇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가치를 알았기에 성도들의 모습 속에서 이것을 발견하면 너무나 감사했던 것입니다. 반면 이것이 없으면 너무나 안타까워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관이 성경적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초보적인 감사의 수준에서만 머무를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는 것에 대한 감사
오늘 본문을 보니까 바울은
첫 째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3절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믿음이 자라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들은 처음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점점 더 주님을 신뢰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어떠한 자기 신념이나, 지식에 대한 동의가 아닙니다. 성경의 내용을 지식적으로 다 안다고 하여서 믿음이 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믿음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을 알고 수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자신의 삶을 헌신할 때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이고 그 말씀을 하신 분의 신실함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는 삶의 여러상황에서 순종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가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선순환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조금씩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성도들의 믿음이 자란다고 했을 때는 결국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깊어졌을 뿐만 아니라 순종의 삶의 더욱 풍성해 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난 시간 아브라함의 시험의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 그의 믿음은 아주 초보적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존재만을 피상적으로 알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22장까지 오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을 세밀하게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확고한 믿음이 결국 즉각적인 순종의 삶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세밀하게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의 실수나 잘못 실패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십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로 세워가십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결국 성도들의 삶에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이 있었고 이것을 통해 저들의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는 올 한해를 지나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삶에 역사하셨음을 봅니다. 뜻하지 않는 만남과 생각지도 않은 시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려움도 있지만 지금껏 잘 감당하고 살아왔습니다. 이 과정 속에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에 먼저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오른손으로 붙드시고 이끌어 가고 계심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사랑의 풍성함에 대한 감사
둘째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본문 3절에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이 문맥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아니라, “다 각기 서로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커가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 서로에 대한 사랑이 풍성해 지고 있다면, 그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도 있고 못 배운 사람도 있습니다.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의 중간형태에 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시켜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뿐입니다.
교인들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안에 서로 사랑함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머물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임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감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또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모습속에 “다 각기” 사랑함이 풍성해 지는 것을 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 영적으로 뛰어난 몇몇 소수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다 각기 이러한 사랑에 사로 잡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우리가 적은 수이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풍성해 지는 것을 봅니다. 서로의 삶에 대한 관심과 하나님 앞에서 각자가 올바로 서는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박수를 쳐주며 격려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처음 모였을 때보다 지금이 더욱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더욱 풍성해 진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이 풍성해진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는 것에 대한 감사
셋째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인내한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이 자라났기 때문에, 그 당시에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인내 할 수 있을 만큼 영적으로 강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내는 정말로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 자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소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1:3절에서는 소망의 인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언가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인내하신 이유는 앞에 놓인 부활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고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앞에 주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 때문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될 그날을 기대할 때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7절을 보시면
“5.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바울이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어렵고 고난 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안식으로 갚아주실 것이기에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현재 평화롭게 잘 사는 것 같지만 결국 환난으로 갚아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결국 우리에게 안식으로 갚아주신다는 이 확고한 믿음이 결국 인내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들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더욱 잘되는 것, 물론 그러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있어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스릴 그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를 인내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실패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 소망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실패를 맛보고 이 땅에 소망이 없음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축복입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잘 되어 이 땅에 소망을 가지는 것이 성도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올 한해를 지나면서 얼마나 더욱 하나님 나라를 소망 하셨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 나라를 소망하고 계십니까? 진정으로 이 땅에 소망이 없음을 깨달아 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한 것입니다.
바울의 세 번째 감사가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 에너지를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에 투자합니다. 그러기에 기도할 때 조차도 대부분 우리의 가치관에 따라 기도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제 기도의 자리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들이 그들속에 있는지를 살피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과 사랑과 인내였습니다. 그리고 믿음, 사랑, 인내가 그들속에 있는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울이 가치있게 여겼던 것을 여러분도 가치있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썩어질 것에 우리의 가치를 두지 마시고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믿음과 사랑과 인내의 가치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갈 때는 손에 있는 물질이나 명예를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과 인내는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이 과연 우리의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종을 보실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한 모습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환란 가운데 인내한 것을 보시며 칭찬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시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18절-19절입니다.
“18.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주님께서 성도들을 보실 때 무엇을 보시는가 중요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사업, 이것은 믿음의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보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보다 많기에 칭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칭찬과 책망은 우리에게 주님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먼저 우리의 가치관이 변화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가치있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인내인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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