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감사 –2017년 추수감사절
시편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0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인생은 감사하는 만큼 행복합니다. 아무리 행복의 조건이 우리 삶에 풍족하여도 감사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감사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여기 청년들이 저에게 결혼상대자로 어떤 사람이 좋은가라고 물어보면, 저는 작은 일에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할 것입니다. 데이트 하면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만원이 넘는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피곤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떨 때 감사하십니까?
감사는 우리의 가치관과 직결됩니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거나 그러한 환경이 되면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러한 가치관이라는 것은 우리가 삶을 인식하는 하나의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입니다. 가치관이라는 인식의 구조 또는 시스템이 일단 구성이 되면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러한 인식의 틀 속에서 해석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하며, 기뻐하기도 하고 염려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는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에서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다”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See와 Look이 있습니다. see는 그냥 보여지는 것이고 Look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입니다. 한자로는 見(견) 視(시) 觀(관)이 있습니다. ‘견’은 see에 해당하고 look은 ‘시’입니다. ‘관’은 우리의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차이는 결국 ‘관’의 차이에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물컵에 물이 반만 있어도 반이나 있다고 하는 사람과 반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 ‘관’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식의 구조, 생각의 구조, 틀 – 결국 ‘관’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결혼상대자를 볼 때 그 사람의 ‘관’이 어떠한 가를 보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관’이 달라서 고생하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관’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무엇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를 보면 그들의 ‘관’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가치관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투자하기 때문에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인식의 구조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여도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살피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참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비교해보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성경의 가치관을 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방법으로 성경에서 어떠할 때 또는 무엇을 감사하는 가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관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관성이 결국 가치관이며 인생관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인물은 바울입니다. 그는 대단히 비판적이고 독선적인 젊은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됩니다. 그는 감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향하여 편지를 쓸 때마다 항상 감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입니다.
1. <로마서 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 때문이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있었고 또한 그것이 세상에 전파될 만큼 신실했기 때문입니다.
2. <고전1:4-7>
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향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4절에 그들의 언변과 모든 지식, 즉 그들의 말과 생각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중에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풍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7절,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성령님의 은사들이 고린도교회 가운데 나타나 교회를 세워 나갈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으로 인하여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4. <엡1:15-16>
15.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바울이 에베소 성도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5. <빌1:3-5>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로 인하여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골1:3-5>
3.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향하여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절에, 너희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5절에는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 사랑, 소망은 곧 복음의 진리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7. <데살로니가 전서 1:2-3>
2.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때문입니다.
8. <딤전1:12-14>
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이 디모데에서 자신이 하나님앞에 감사하는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지만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밝힙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이 생겼고 또한 사랑이 있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빌레몬 1:4-6>
4,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바울이 빌레몬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네 사랑과 믿음 때문이며, 네 믿음의 교제로 인하여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바울의 감사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식의 틀, 생각의 틀 속에 무엇이 중요한지 굳건하게 자리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통하여 생성된 그 가치관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성도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립된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라는 원어는 “유카리스테오”입니다.
“카리스”, 많이 들어보지 않았습니까?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유카리스테오는 은혜에 대한 반응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들에 대한 반응이 유카리스테오, 즉 감사입니다. 이러한 은혜의 가장 확실한 흔적이 무엇인가 할 때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이 우리 안에서 생성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사랑하게 되며,
우리의 소망은 믿음과 사랑에 대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분을 만나게 될 날을 소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이러한 것에 대한 가치에 눈을 뜨게 시작합니다. 그동안 세상 속에서 가치 있게 여기던 것들이 어느 순간 쓰레기처럼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빌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우리가 이전에 추구했던 것들이 무엇이었습니까?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말들이 있지요. 황금만능주의, 외모 지상주의, 학벌 지상주의...
참으로 씁쓸하지만 우리도 이 속에 함몰되어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또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최근 SNS가 발전하면서 우리의 삶의 모습이 노출시키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으로 자신들의 행복한 삶을 찍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즐깁니다. 그러한 우리의 마음 속에는 내가 이렇게 좋은 곳에 왔어요, 이런 비싼 음식을 먹어요, 내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하는 자기 만족을 넘어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것들로 인해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비교 속에서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보다 잘 살아가는 주변인들로 인해 행복하지 못합니다.
비교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죠.
그 속에서 우리 또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가느라 늘 피고하고 지쳐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이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살다가 복음이 우리를 변화시키기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님께서 그러한 것들이 쓰레기와 같은 것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전13:13절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영원하기에 가치 있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가 가치 있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하물며 영원한 것이기에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최근에 무엇 때문에 감사하셨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사업이 잘 안되고, 건강도 변변치 않고, 자녀가 속 썩이고, 취업도 되지 않고, 세상 보기에 무엇하나 감사할 것이 없다 하여도,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러한 세상 속에서 체험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으로 인해, 그 최고의 기쁨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기다려진다면 그것으로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는 눈물골짜기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 눈에 눈물을 닥아 주시며 안아주실 날을 기대하시는 마음이 있다면 감사하셔야 합니다.
저는 어제 새벽에 죽음을 앞둔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이 강당 같은 곳에 모여 있고 이제 한 분씩 죽음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한 분 한분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렇게 마음이 힘들고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셨고, 어떤 분은 평소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극도의 공포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마음이 눌리고 안 좋았습니다.
자는 두 아이 얼굴을 살피고 잠들지 못하여 자리에 앉아 기도할 때,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활이었습니다. “그래,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부활하는 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눌리고 힘들었지?” 하는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정직하게 바라봅시다.
죽음은 우리의 가장 확실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말미암는 삶의 악과 고난은 끊이니 않습니다. 세상은 마치 현실이 전부인 냥, 그래서 먹고, 놀고 즐기자고 말하지만, 그것은 환상입니다.
현실은 죽음이며 악과 고난의 삶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영원한 것은 복음 밖에는 없습니다.
기쁜 소식 복음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믿기에 감사하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감사하며, 그 구원을 이루신 주님을 소망하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복음 앞으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도 감사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석에서 주님은 떡을 떼어 주시고 포도주를 나누실 때 하나님께 감사하시며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우리 주님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 놓여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눈물 골짜기와 같은 인생길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까?
우리 앞에 놓여있는 부활의 영광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믿음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주님이 재림하실 그날 영광 스러운 모습으로 보화에 않으신 하나님과 우리 어린양께 세세 무궁토록 찬양과 경배를 돌립시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