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송구영신 예배)/2016.12.31
창세기 15:19-21
19.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우리는 2016년 한해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또 새로운 한해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이렇게 모인 것입니다. 올 한해 여러분들을 어떠셨나요? 좋은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웃는 일도 많았을 것이고 애달픈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건강할 때도 있었지만 병들어 아파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만남들로 인해 기대와 소망이 생기기도 했고 정들고 익숙했던 것들과의 이별로 인한 낯설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새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삶을 돌이켜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삶을 조망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평가는 항상 나의 경험과 지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지나온 삶을 온전하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을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가장 정확하게 평가되어지고 또 이해되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상황은 요셉의 이야기의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요셉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에 보면 처음에는 축복을 많이 받았지만 나중에는 불행하게 끝나는 사람도 많지만, 요셉은 처음부터 끝까지 축복가운데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고 구김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그의 영혼같지 않았습니다. 구약에 나온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가장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은 사람이 요셉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애는 그야말로 가시밭길 생애였습니다. 자신은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형들은 시기심으로 매우 미움을 받았고 결국은 노예로 팔리게 됩니다. 한 순간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 가슴에는 못이 박혔고, 또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떨어진 요셉의 가슴에도 못이 박혔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애굽땅까지 끌려가 비참한 노예의 신분이 되었고 보디발의 집에서 서럽고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보려 했지만, 모함을 받아 죄수가 되었고 실로 긴 시간을 죄도 없이 형벌을 받으며 고달픈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형들을 만나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버지를 만나게 되죠.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형들에게는 큰 두려움이 밀려오게 됩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는 아버지 때문에 요셉이 헤치지 않았지만, 돌아가신 후에는 일개 노예 같은 신세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상처와 분노로 가득차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없는 말을 보태어 보복 받지 않기 위해 간곡하게 그의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가 당신의 종입니다.” 그들은 비굴한 모습으로 생명을 구궐하게 된 것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깊은 상처를 주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요셉이 형들에게 말합니다.
“형님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 뿐만 아니라 당신들의 자녀들까지도 돌보겠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떠나 어릴 적부터 고난의 쓴물을 마셨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의 배신, 부모를 생이별해야 하는 슬픔, 모함을 받아 감옥생활을 했던 그 억울했던 일들, 그 지난 세월을 회상하면 할 수록 상처가 되고 그것이 분노가 되어 차올라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 정서의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가 놀라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어찌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다. 요셉은 두려워 떨고 있는 형들을 오히려 측은하고 불쌍하게 여깁니다. 오히려 그렇게 비굴하게 서 있는 형들을 보면서 미안함과 속상함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 제가 형님들에게 용서와 관용을 베풀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나는 형들을 용서합니다.”
이것이 요셉의 놀라운 고백인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고 기대한 만큼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우리의 마음에 절망감을 주고 분노하게 하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미래를 소망하지 않고 어둡게 바라봅니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보다는 또다시 상처받을 것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됨으로 고립감속에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한해 어떠셨나요?
국가에 대한 실망, 교회에 대한 상처, 가족들에게 대한 원망, 내 자신에 대한 절망... 혹시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묶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낙심하게 만들고 우리의 시야를 어둡게 하며 우리의 생활을 위축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을 통해 놀라운 신앙인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셨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절망과 나의 상처와 나의 분노를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도구로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볼 줄 알았습니다. 나의 삶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었음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요셉은 이러한 믿음을 같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두 가지로 그의 아름다운 신앙을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입니다.
섭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목적하신 것을 위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간섭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목적하신 것들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은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진행시키십니다. 건물을 하나 짓더라도 목적에 맞게 모든 것을 세밀하게 계획하여 실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계획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 속에서 우리의 삶을 끌고 가시는 것을 섭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우연히 또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그분이 목적하신 대로 계획에 맞게 실행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난 것은 내 의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내가 나의 남편 또는 아내를 만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도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만난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일어났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어떠한 성격 또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함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함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섭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는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때로는 이유 없이 폭풍가운데를 지나게 하시기도 하고, 우리 힘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도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엎디려 기도하기도 하고 밥을 굶어가며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매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계속되고 깊은 영적인 어둠의 시기를 경험하면서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나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는가? 사람과 환경에 대한 원망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옮겨질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신을 안위하고 있음을 체험하고 묵묵하고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원망과 분노 속에 자신을 한참동안 묶어놓아 버림으로 주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 가운데 증거하는 것은, 결국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 선함은 내가 생각할 때의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꼭 이루고 싶어 하시는 그 분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의 뜻은 목적한 곳까지 우리를 끌고 가시겠다는 그분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를 실패하게 하시고 절망하게 하시며 때로는 원치 않는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목적지까지 끌고 가시려는 그 분의 선하신 계획이며 그분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그 실패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질병에도 죽지 않고 살아있지 않습니까? 그 고통스러운 상처를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내가 잘해서 입니까? 내가 노력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고통스런 현실이 있습니다. 가족가운데 질병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계십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앞날에 대한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무언가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소망을 가지지는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이 이러한 상황들 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 미래를 소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내 생각과 판 단속에 갇혀 있으면 절망적이겠으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서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예29:1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이 뜻은 선함이며 기쁨이며 온전함이라고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손길은 그분의 선함을 우리 가운데 이루시기 위해 분주히 달려갈 것입니다. 내가 침 삼킬 동안에도 놓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형들을 용서하고 자신의 삶에 있었던 모든 상처와 분노를 깨끗하게 씻어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니 형들은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일체의 옹졸함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대한 깊은 사랑과 함께 형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솟아낫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억눌린 과거로부터 그를 자유케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쩨쩨해 질 때가 있습니다. 고통스러울 때 고통을 준 사람, 또 고통을 주는 환경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보면 아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기쁨도 감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견고함이라는 것은 영원하고 불변하고 그리고 완전한 것을 붙듦으로 말미암아 견고해 집니다.
흘러가고 불완전하고 그리고 늘 변하는 것들을 붙들어서는 항상 변하는 것들과 함께 출렁거리고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슬퍼하고 그리고 불완전한 것들 때문에 요동치는 것입니다.
요셉은 상처를 생각했다면 형들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 난 발걸음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은혜가 덮으면서 인도해왔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 선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그는 체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해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한 일들도 많았지만 후회스러운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잘한 일도 있지만 잘못한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섭리는 우리를 하나님의 선함으로 이끌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로 인해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만 소망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질병으로 인해 건강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게 허락된 생명과 사랑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상처로 인해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따듯한 손길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시간이 지나고 우리의 인격과 성품과 영성이 성숙해지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이 우리 삶에 가장 가치 있고 귀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것 알기 위해 내가 이토록 돌아왔구나, 힘들게 살았구나, 고통속에 있었구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가장 일이구나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많은 것을 읽었을 지라도 여러분 곁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여전히 삶이 버겹고 힘들지라도, 내 곁에 예수 그리스가 계시면 우리는 이 길의 끝에서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고통의 흔적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로 가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빌3:7-9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우리가 자랑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각자 홀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초라한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서야 영광중에 계신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못자국난 손으로 우리를 끌어 앉아 주시는 그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예수 그리스도를 얻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또 우리는 한해를 보냈습니다.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 이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2016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설교문을 썼는데 이 노래 가사가 생각나더라구요.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우리 삶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과응보를 초월하십니다. 그래서 다 이해할 수도 없고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하게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우리를 지금도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소망하십시오. 우리가 2017년을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고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 삶을 붙잡고 계시기에 새로운 한해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져도 일어날 것이고 최후에 승리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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