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기타

19-01-08 16:08

2018 송구영신예배/ 지나온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joywoori
댓글 0

지나온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전도서 3:1-11
1.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벌써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이 때쯤이면 우리는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바쁘고 분주하게 사셨던 분들에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하는
당혹감이 있을 수 있고, 삶의 무게를 지탱하며 버텨온 분들에게는 “그래, 이렇게 또 한해 버텨냈다”하는 작은 격려의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무언가 이룬 것에 대한 성취감으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분은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우리의 마음은 감사와 후회가 교차하는 시간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시간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우리 삶에는 때가 있고 그 때는 하나님이 주권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인생 만사에 때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자녀들이 선물로 찾아와준 때가 있었지요. 그때 우리는 얼마나 감격하며 감사했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우리 곁을 떠나갈 때가 있었습니다. 또 그것을 준비하는 부모님들도 계십니다.
그들 때문에 웃을 때도 참 많았지만, 또한 그들로 인해 힘들고 슬퍼할 때도 많았지요.

우리를 사랑해준 부모님들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 곁에 있어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또한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사업을 시작하여 모든 것이 잘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건강하고 열정이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약하고 우울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남편 또는 아내로 인해 힘과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서로를 향해 분노하고 고함을 지른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상반된 삶의 형편과 모습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우리 삶을 이루어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이러한 삶의 때는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고 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러한 때에 영향을 주거나 변화시킬 수 없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때를 정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이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닌 것처럼, 지나온 우리의 삶은 그와 같은 수많은 때들을 연속이었습니다. 밀물의 때와 썰물을 때를 인간의 지혜나 노력으로 영향을 주거나 변화시킬 수 없듯이 지나온 우리 인생의 때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어졌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때들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때를 주관하신다면, 우리는 그 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이루여고 해서는 안됩니다. 욕심입니다. 욕심은 죄를 낳게 되죠. 하나님께서 그러한 때를 허락하셨다면 그러한 상황과 환경에 맞추어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기뻐할 때는 마음껏 웃어야 합니다. 춤을 출 수도 있어야 합니다. 슬퍼할 때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고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든 것입니다.

 

자연에 계절이 있듯이 우리의 삶에도 계절이 있습니다.
그것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순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봄과 같은 어린 시절에 너무 어른스러운 것도 이상한 것입니다. 인생의 가을이 되어 내적으로 무르익어야 할 시기에 젊어지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고 돈과 시간을 쓰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를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올 한해 어떠한 때를 보내셨습니까?
지나온 삶의 모든 발자국 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내가 걸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끌고 가신 것입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도 하셨지만, 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인도하셨습니다.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우리 삶에 고난의 때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즐거움의 때는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때를 주관하실 때 그것에 순응하며 하나님 앞에 반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2. 삶의 모든 때들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11절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지나온 한 해 동안 우리 삶의 모든 형편들은 아름다웠습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란 시에서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시인은 이 땅의 삶을 소풍으로 인식하고 그 모든 삶의 때들을 아름다움이라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본문에는 상반된 삶의 형편과 모습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뽑을 때, 죽일 때와 치료할 때, 헐 때와 세울 때, 울 때와 웃을 때, 슬퍼할 때와 춤출 때 등 이와 같은 삶의 모든 모습들이 아름답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해와 판단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죽을 때, 슬퍼할 때와 같은 삶의 형편들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8절에 보면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가 있는데 사랑할 때는 아름답죠. 그런데 미워할 때를 어떻게 아름다웠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잣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제단하고 평가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성공한 거야!” 라고 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이며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까?
“내 삶은 실패했어!”라고 할 때 또 무슨 근거와 기준으로 그렇게 판단하는 것입니까?

그 모든 판단과 기준이 죄악 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고, 우리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 된 세상이 만들어 놓은 판단 근거와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삶의 이해하고 평가하면 예수님은 가장 불쌍하고 실패한 인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제 드린 말씀처럼 우리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인과율에 사로잡혀,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며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때로는 그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어 삶을 공평하게 해석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억들은 많은 부분이 편집되어 있고 자기중심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왜곡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면 성공이 다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의 원인도 다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내 자신에 대해서 관대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혹하고 냉혹하게 자책해서도 안 됩니다. 그때 그렇게 한 것은 내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잣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제단하고 평가해 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실 때는 삶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분의 섭리가운데 우리의 모든 삶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캠퍼스에 우리의 인생을 그려가십니다.
여러 가지 색상으로 우리의 인생에 그림을 그려가십니다.
만일 그 그림이 전부 밝은 색으로만 이루어졌다면 과연 아름다울 까요?
아니면 전부 어두운 색으로 표현되었다면 아름다울까요?
그렇지 않겠죠. 다양한 색상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그렇게 그려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그려 가시는 캠퍼스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때로 우리의 삶이 밝은 색깔로 살아갈 때도 있지만 때로는 어두운 색도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다양성 속에서 생겨납니다.
획일화된 것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내가 낚시를 좋아해서 얼마 전 서해에 가서 가자미 두 마리를 잡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구워서 먹는데, 생긴 게 참 웃기더라고요. 생긴 거는 납작한데 얼굴은 바로 세워져 있더라고요. 마치 생선을 밟아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이 생선 참 웃기게 생겼다”고 하니까 아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은 참 개그가 있으셔”라고 말하더라고요.

하나님의 창조를 보십시오. 세상에 똑 같이 생긴 사람이 없습니다. 목소리도 다 다릅니다.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을 다 다르게 창조하셨을까?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새나 바다의 물고기도 어찌 그리 수가 많고 다양할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양성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죠.

한국 사회처럼 획일성을 좋아하는 사회도 없을 것입니다.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오면 느껴지는 것이 이 획일성입니다. 차 색깔이 다 비슷합니다.
집이나 건물이 다 비슷합니다. 


옷입는 스타일도 비슷합니다. 요즘 학생들도 보면 다 롱패팅 입고 있습니다. 그것도 검은색 아니면 흰색.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언가 뒤처지는 것처럼 여겨지죠.
이러한 획일적 문화에서 튀는 것은 곧 왕따를 차조 하는 일입니다.
거의 대부분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합니다. 아파트에 들어가면 가구배치도 어찌 그리 똑같은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그 모습이 획일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면 무언가 실패하고 잘못 살아가는 것처럼 판단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22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과 형편들이 있고 그것들이 다 아름답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 즐거워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말씀합니다.
그 다양성 속에서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그 일을 만족해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몫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질 분량을 정당하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작은 평수의 집에 산다면 그것에 만족하고 기뻐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희 몫이라는 것입니다. 꼭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아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작은집도 얼마든지 예쁘게 꾸며놓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삶의 불행은 자신의 몫을 남의 몫과 비교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피자를 나누어 자녀들에게 줍니다. 좀 큰 것이 형에게 갈 수도 있고 작은 것이 동생에게 갈 수 있겠죠. 그러면 동생이 형 것과 비교하지 말고 맛있게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형 것이 더 크다며 대들기 시작하면 그 피자가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몫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십시오.
세상에는 많은 것을 가졌으나 즐기지 못하는 불행한 인생이 있지만, 작은 것에 만족하며 즐길 줄 아는 멋진 인생도 있습니다.

 

12-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우리 삶의 몫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기뻐하며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우리의 수고의 몫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3. 이러한 삶의 다양성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합니다. 
 “14.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이 삶의 위에 나열 때 삶의 다양성입니다.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속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 속에서 다양한 경험과 상황들에 부딪히면서 우리 삶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을 가장 깊이 경험할 때는 날 때가 아니라 죽을 때입니다. 웃을 때가 아니라 슬퍼할 때였습니다.

그 속에서 내 삶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 삶에 다양성 속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며 또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아름답게 하실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편과 상황일지라도 우리는 아름다움으로 수용하고 그 속에서 기뻐하시며 즐기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