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기타

25-03-25 09:43

설립10주년 감사예배 "진리안에서 사랑하는 공동체"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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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10주년 감사예배 설교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공동체”

 

요한3서 3–4 (NKRV)

3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10년을 맞이하는 기쁨의 날입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특별한 시작을 가졌습니다. 설립 예배도 없이 시작된 교회였습니다. 

개척을 준비하던 중, 청년 두 명이 집에 놀러 왔습니다. 옥상에서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를 안 나간 지 1년이 넘었어요. 내일부터 목사님 댁에서 예배드리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해서 다음 날, 덕명동의 작은 집에서 함께 둘러앉아 드린 예배가 우리 교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교회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던 중, "우리 교회가 기쁨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그럼 ‘기쁜우리교회’ 어때요?”

모두가 동의했고, 그렇게 우리 교회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오늘 본문은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의 인사말입니다. 발신자는 요한이고, 수신자는 가이오이지만,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가장 큰 기쁨"—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바라보시며 기뻐하십니다. 그 기쁨은 그냥 기쁨이 아니라 큰 기쁨, 위대한 기쁨 Great joy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을 바라보며 가장 큰 기쁨을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제 큰아이가 한자 등급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퇴근길에 케이크를 사 와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가장 기쁜 순간은, 이렇게 함께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둘째는 아빠와 함께 율동하며 찬양하고, 큰아이는 맨 앞에서 열심히 찬양합니다. 막내와 아내도 마음을 다해 찬양합니다.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면서, 저는 하나님의 기쁨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기쁜우리교회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진리를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1. 첫 번째로 진리가 무엇입니까?

1)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진리는 단순한 지식이나 사실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요 14:6)

진리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 존재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체입니다.

 

2)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즉,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진리입니다.

 

2.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곧 

✔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이며,

 ✔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맺고, 그분과 동행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입니다. 또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단순히 진리를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며, 그것이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3. 그렇다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진리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요약하면 사랑과 섬김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보이는 내 곁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4:20–21 (NKRV)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결국 진리인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것,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행하는 것은 내 곁에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 위대한 기쁨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마지막 날 인자가 천사들과 함께 올 때 있을 축복과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날, 모든 민족이 보좌 앞에서 좌우로 나뉘게 됩니다.

✔ 우편에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이 있고,

✖ 왼편에는 심판에 처한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편에 있는 자들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35–36 (NKRV)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자 우편에 있던 자들이 놀라며 묻습니다.

마태복음 25:37–39 (NKRV)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언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을 입혔나이까?

39 언제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뵈었나이까?

 

이에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마태복음 25:40 (NKRV)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여기 서 있는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함께 믿음의 길을 가는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들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입니다.

내 곁의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슬픔에 빠진 성도를 찾아가 위로하는 것은 주님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를 돌보는 것은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를 돕는 것은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성도를 사랑하고 섬길 때, 그것을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으십니다.

그 순간 우리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행할 때 우리 마음에도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물질을 내어 주었지만, 그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의 가정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물질로 섬겼습니다.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 성도님들이 먼 창원까지 찾아와 함께해 주셨고,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예성이가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 생명이 위급할 때도 성도님들은 기도와 물질로 도왔고, 지금 예성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고 방순애 성도님께서 쓰러지셨을 때도 성도님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기도하고, 장례 예배에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박찬무 성도님의 손자 세빛이가 태어났을 때는 모두가 기쁨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작은 사랑과 섬김을 주님께서는 자신을 향한 것으로 받으십니다.

로마서 12:15 (NKRV)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교회 공동체는 즐거워하는 성도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성도와 함께 울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수적입니다. 한 성도의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축하할 때, 그 공동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됩니다. 또한, 한 성도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됩니다. 이러한 모습이 더욱 깊어지고 진정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성도들은 모두가 내 마음과 같지 않고, 연약하며, 허물이 있습니다. 사실 저부터 시작해서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서로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주고받게 됩니다.

부부도 한마음이 되지 못해 갈등하는데, 하물며 서로 다른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로 모였으니, 어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교회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거룩하지도 못하고, 순결하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온전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으며, 순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 내 곁에 있는 성도가 나와 생각이 다를 때도, ✔ 때로는 말과 행동으로 실망을 줄 때도,

✔ 심지어 상처를 줄 때도,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실 때 몹시 괴로우셨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임을 이미 아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21 (NKRV)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함께 3년 동안 먹고 마시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던 제자에게 배신당하는 아픔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 이렇게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13:1 (NKRV)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사실 가룟 유다만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그들을 다시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만해서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 실망을 주는 성도를 사랑하는 것

✔ 나에게 상처를 주는 성도를 사랑하는 것

✔ 내 오른뺨을 치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공동체로 모인 이유는 바로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부담스럽다고 도망친다면, 그 어디에서도 진실한 사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던 중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2–15 (NKRV)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우리가 이 일을 행하도록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이 무엇입니까? ✔ 주님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 서는 것 ✔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씻어 주는 것

 

그 발을 씻기신 분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 주신 삶의 모든 모습은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가장 낮고 천한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섬김의 대상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이려는 세상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랑이 가능했을까요?

그분의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은 사랑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눅 23:34)

 

우리는 원래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면서 조금씩 사랑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그 사랑은 대부분 포기와 희생입니다. 나를 희생하고, 나를 포기하는 것. 그렇게 살아가면서 우리는 점점 사랑을 배웁니다.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가족으로 묶여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서 사랑이 깊어지고 진해집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 길로 이끄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사랑을 배우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며, 예수님의 희생과 포기와 섬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아픔과 상처, 갈등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을 더 크고 깊은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압니다. 사랑을 받는 것도 기쁨을 주지만,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말입니다. 

 

교회 공동체로 모여 사랑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절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용서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여 사랑해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포기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희생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것이 우리의 부르심입니다.

 

저 또한 교회를 섬기면서 힘든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위로하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한 번은 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주님, 저는 성도를 사랑할 힘이 없습니다. 성도를 섬길 힘이 없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은 바로 요한복음 21장의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새벽 미명이었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그 순간, 물가에서 한 사람이 다가오며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동료들과 함께 그물을 던졌고,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그 사람이 예수님임을 깨닫고 옷을 입은 채로 바다로 뛰어들어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물가로 나온 베드로는 예수님이 고기를 굽고 빵을 준비하셔서 조촐한 조반을 준비하셨음을 보았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동일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 질문과 명령을 세 번 반복하시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묻고,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성도들을 사랑할 자신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은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내 양을 먹이라.”

교회는 주님의 것이며, 성도는 주님의 양입니다.

목사의 역할은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주님의 양인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비록 상처와 실망을 주는 사람과 일들이 있겠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목회를 감당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듯이, 저도 그렇게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사랑과 섬김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를 방해하려 합니다. 교회가 사랑과 섬김을 풍성히 실천하려 할 때, 사단은 여러 방법으로 공격을 시도합니다.

말 한마디에 오해를 일으키고, 작은 행동 하나에 서운함을 심어줍니다. 그로 인해 파벌을 조장하고, 서로를 헐뜯으며 미워하게 만듭니다. 이 모든 공격은 결국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을 방해하려는 의도입니다.

 

이 모든 공격을 이기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26:41)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9:29)

에베소서 6:18에서는 우리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6:11–17 (NKRV)

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렇게 전신갑주를 입은 후 하는 일을 기도입니다.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우리는 기도를 통해 악한 영들을 대적합니다. 성도들의 사랑을 방해하고, 섬김을 막으려고 하는 모든 악한 영들을 기도로 대적합니다. 

또한 기도는 사랑과 섬김을 지속하게 하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과 섬김의 삶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에 의존해야 합니다. 기도는 은혜를 받는 수단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만큼 사랑을 실천하고 섬김을 나누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7교회를 칭찬하시고 책망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주님께서 교회를 평가하시는 기준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인내하고 고난을 견뎌낸 점을 칭찬받았지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다음과 같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19 (NKRV)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과 섬김을 실천했으며, 중요한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랑과 섬김이 더 깊어지고 진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칭찬하셨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 안에서도 사랑과 섬김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그 사랑과 섬김을 더 깊고 진실하게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섬김은 언제나 타인을 위한 헌신과 희생을 동반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풍성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동시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과 섬김의 깊이를 더욱 추구해야 합니다.

후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그 사랑과 섬김이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큼 깊고 진실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