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12-19 16:52

요한복음 강해 82. 예수님과 함께한 아침식사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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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82.

 

요한복음 21:1-14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우리는 지난 시간 도마의 고백을 통해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믿음의 결과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글의 구성으로 보면 21장은 에필로그에 해당합니다. 어떤 영화를 보면 엔딩하고 나서 자막이 올라간 후 그 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마치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20:31-32절을 읽으면 책이 끝난 것 같은데 21장을 통해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21장의 모습은 참으로 따듯합니다. 20장까지는 긴장감 있게 진행되다가 도마의 고백으로 클라이맥스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31-32절을 통해 마무리하였다가, 이제 한숨 돌리고 21장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끊어서 읽지 않고 한 번에 읽게 되면 21장이 우리에게 참으로 따듯하고 푸근하게 다가오며 마무리됨을 느끼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갈릴리로 갔습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으로 예수님을 만나기전 그들의 삶의 자리였습니다. 왜 그들이 즉각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러 다니지 않고 갈릴리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제자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의 모습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갈릴리로 간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막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부활 후 만난 여인들에게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갈 것을 분부하셨습니다.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당시 모였던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배대의 아들들(야고보와 이 글의 저자인 요한) 또 다른 제자 둘입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하자 다른 제자들도 함께 가겠다 하여 그들은 배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대부분의 제자들이 어부 출신이었습니다. 평생 뱃일에 굿은 살이 밴 자들입니다. 당시에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자정을 넘긴 시간부터 그물질을 하여 잡은 물고기를 새벽녘에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지고 끌어올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바닷가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날이 어둡고 먼 거리에서 누구인지 판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낚시를 다녀보면 이런 광경은 흔합니다. “좀 잡으셨어요?” “고기가 좀 있나요?”
제자들도 예수님이란 생각은 못하고 흔한 장면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고기가 없습니다.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러면 잡으리라”
그들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물을 끌어올릴 때 묵직함을 느낍니다. 제자들이 달려들어 들려고 했으나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그물을 끌어올리던 요한은 순간, 바닷가에 서 있던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옆에서 함께 그물을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주님이시다”
항상 행동이 앞섰던 베드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거의 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겉옷을 걸치고 뛰어들어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제자들도 그물을 올리고 배를 저어 예수님이 계신 바닷가를 향했습니다.
8절에 보면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이라고 하는데 100m정도 되는 거리인 것입니다.

누가 먼저 예수님께 당도했을까요?
제자들은 배에서 내렸습니다. 베드로도 헉헉거리며 물에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숯불을 피우시고 그 위에 생선을 굽고 또 마른 보리 빵을 굽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당시의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새벽 미명의 고요한 갈릴리 바닷가.
그 한적하고 조용한 바닷가에서 불을 피우시고 생선을 굽고 계신 예수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소박한 아침식사를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너무나 아름답지 않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러한 정겨움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이에 베드로가 배로 올라가 그물을 육지로 끌어내었습니다. 이런 것 보면 베드로가 상당히 체구가 크고 힘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모닥불 주위로 앉았습니다.

그 누구도 “주님이십니까?”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주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 오셨습니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어떤 말도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예수님 곁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빵을 구워 제자들에게 주시고 또 구운 생선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당시의 장면을 머리에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모습이 연상되십니까? 제자들의 표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은 또 어떠했을까요?
저는 만일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제목을 붙이라고 한다면 “절대평강”이라고 할 것입니다.

20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그 평강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하심으로 우리에게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부활의 주님이 우리 삶의 자리에 찾아오셨을 때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삶에 대한 염려나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없습니다.
그 고요한 아침 예수님과 함께 한 식사는 평강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앞으로 제자들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사명을 감당할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3년 전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를 찾아오셨을 때 그곳이 바로 갈릴리 해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5:4-11>
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10절에 이에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 고기 잡은 것이 많아 그물이 찢어졌다고 하는데 본문에서는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초라한 어부에 불과했던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고 했을 때 그들은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알았다고 하여도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당시 12명으로 시작된 복음증거가 온 열방과 세계 가운데 열매 맺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던지신 구원의 그물에 건짐을 받은 자들 아닙니까?
그 그물은 결코 찢어지지 않는 영원한 그물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두 개의 장면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물고기를 잡기위해 밤새 수고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물으시는 장면입니다.
  
2천년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삶에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어부에게 고기는 목적입니다. 그물질은 수단일 것입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수순에서 행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밤을 새가며 공부하는 학생들, 그물을 던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앞에 놓여있는 행복을 위해 그물을 던지는 것입니다.
좋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청년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그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열어주고자 힘쓰시는 부모님들.

때로 우리 눈에는 여전히 부족하고 안타까워도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과 선택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문득 오셔서 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우리 삶에 의미를 물으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 그렇게 해서 행복하니?”

우리 삶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한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룬 모든 것들은 무의미합니다. 아무리 많은 물고기를 잡는다고 할지라도 찢어진 그물에 담긴 물고기 일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고 삶의 주도권을 그분께 내어드릴 때, 우리 삶의 모든 호흡은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비록 당장에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다고 하여도,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이 또 남긴 것 하나 없이 세상을 마감한다 하여도 주님께서 우리 삶에 주인이 되실 때 삶의 모든 것들은 목적을 갖게 되고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예수님과 함께 바닷가에서 소박한 아침식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만찬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소박한 식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발견합니다.

현재의 삶에 대한 근심도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습니다.
이곳에는 오직 평강이 있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먹는 음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그곳에 하나님이 니라가 임한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삶의 자리에서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겸손하시고 인자하신 모습 속에서 큰 은혜를 받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모습이 부활 후에도 여전히 변함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주님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왜 나를 버리고 다 도망갔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 살펴보게 되겠지만, 베드로에게 네가 왜 나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냐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뿐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받아주시고 품어주시는 주님께서 우리 삶에 찾아오시고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조반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빵을 구우시고 생선을 구원 먹이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삶에 소박하지만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어떠한 것으로 인해 우리 삶이 풍성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그 확신과 믿음, 그 현실이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후 제자들은 복음을 증거하며 수많은 고문과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가 되었던 것은 바로 갈릴리 바닷가에서 함께 했던 주님과의 아침식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 느꼈던 삶의 풍성함, 그 평안함, 그 기쁨, 그 완전했던 만족과 행복. 그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여 누리게 될 주님과의 만찬을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우리 삶에 함께 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누렸던 그 은혜의 순간들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합니다. 잠깐 이었지만 그 스쳤던 행복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행복의 극치인 주님과 함께 할 날을 소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 때 돌이켜 보면,
우리가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 주님께서는 우리 삶에 자리에 늘 함께 하셨습니다.
밤새 수고했던 제자들을 지켜보셨던 주님께서 우리의 삶도 늘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의미를 물으셨고,-“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때로는 말씀을 통해 주변의 믿음의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며 우리를 주님과 함께 하는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아기가 어머니 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평안하듯,
우리는 주님 품에 있을 때 비로소 안전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랑하시기에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거하실 원하십니다.
우리 삶이 때로는 소박한 아침식사처럼,
남들 눈에 평범하고 작고 누추해 보일지라도,
주님과 함께 했던 삶의 소소했던 일상들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축복과 은혜의 시간들이 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