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13. 하나님의 주권과 거듭남/2016.6.12
요한복음 3:3-11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강해 12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거듭남”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은혜와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태어날 때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듯,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이것에 대해 좀더 확장된 설명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인식의 틀과 언어의 집이라는 한계 속에 갇혀 있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했는데 그것을 말할 수 없다면, 사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어떤 진리를 명확하게 이해하면 할수록 그것을 쉽게 설명해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책을 읽을 때 쉽게 쓴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선생님 중에서도 쉽게 가르치는 분들이 실력 있는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아무리 학식이 뛰어나고 구약에 능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진리를 보다 쉽게 설명하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니고데모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게 될 이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또는 구원 얻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쉽게 가르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수님께서 많은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설명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노센으로 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니고데모가 그것이 무엇인지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4절에 보면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그가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자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5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아노센으로 나는 것이 곧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 이라로 하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핵심진리편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가 있지만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니까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물과 성령이라고 했을 때 물은 어머니의 양수를 의미하는 것이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아이가 양수에서 태어난다는 의학적 지식을 가진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잘못된 해석입니다. 또 하나는 주로 오순절 계통의 순복음교회의 해석입니다. 물로 태어나는 것은 물세례를 의미하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성령 세레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잘못된 해석입니다.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사건이 있은 이후에나 인식되어졌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너는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하지만 또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가능하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물과 성령이라고 했을 때 니고데모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알았어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누구입니까? 그는 구약에 정통한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입니다. 따라서 물과 성령이 함께 등장하는 구약의 말씀을 기억했어야 합니다.
에스겔 36:25절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의 방식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구원이 이루어지는가?
“25.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우리나라 성경에는 주어가 생략되었는데 영어 성경에 보면 I will이 다섯 번 등장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죠. 실제로 물이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로 사용된 것입니다. 또 새영으로 우리의 죄악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27절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물은 성령의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하시는 역사의 상징으로 사용된 비유적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물과 같은 성령, 즉 물이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37장에 마른뼈의 환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37장의 내용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성령께서 그를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 뼈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37장 5절에 보시면
“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그랬더니 어떻게 됩니까?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들어맞아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뼈에 힘줄기 생기고 살이 오르고 그 위에 가죽이 덮입니다. 그런데 생기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또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9절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 명령대로 대언할 때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서 그들이 살아나 일어나는데 극히 큰 군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36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하실 것에 대한 것을 37장에서는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마른 뼈와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을 창조해낼 수도 없습니다. 그런 마른뼈와 같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그분의 생기가 임할 때 살아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11:19-20
19.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여기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 영을 주셔야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24: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에서부터 그분의 백성이 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고 깨끗게 하시는 역사를 통해서만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니고데모는 이러한 것을 알지못하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3:10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6절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니고데모가 알지 못했던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것입니다.
즉 육에서 영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의 전적타락을 말하는 것이고 그러한 존재가 어떻게 스스로 깨끗하게 될 수 있는가?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물로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아시대 때의 대 홍수 사건입니다. 니고데모도 물론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온 인류가 죄악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창세기 6:3절을 보겠습니다.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 영과 육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5절입니다.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함을 보셨습니다. 이것인 인간의 죄악된 모습입니다. 즉 육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육에서 영이 창조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홍수 후에는 인간에게 과연 소망이 생겼을까요?
창세기 8:20절입니다.
20.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노아가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그도 역시 죄인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21절에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이렇게 홍수로 그들을 심판하였어도 그들의 존재는 여전히 악하기에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육으로 난 인간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욥기 14:4절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욥기 15장에서 엘리바스의 말입니다.
14.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욥기 25장에서 빌닷의 말입니다.
4.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5.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6.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욥 뿐만 아니라 욥의 친구들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에 대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욥기는 창세기처럼 족장시대에 쓰여졌습니다. 이미 이때부터 인간의 전적타락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64:6절입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이것이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의 전적 타락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구약의 가르침을 복음을 증거하면서 이렇게 요약합니다.
로마서 3:10
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그리고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것은 니고데모가 알 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였던 것입니다.
육은 육을 낳을 뿐입니다. 21절
세 번째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8절입니다. 성령으로 나는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바람이라는 존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합니다. 또한 바람은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 바람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대로 날아다닙니다. 이것은 바로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표현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니고데모처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가 깨닫게 되죠. 자신의 그토록 의지했던 거룩함에 이르는 모든 노력이 헛됨을 깨닫습니다. 그가 빌립보서 3장에서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재판에서 빌라도 앞에서 그를 변호했다고 합니다. 그는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산헤드린에서 쫓겨납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이 몰 수 당하고 성에서 쫓겨납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한번은 어떤 소녀가 남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뒤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랍비가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보고 네가 누구냐하고 하니까 니고데모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랍비가 네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니까 예수님을 추종하다 추방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가 랍비가 그녀를 돕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수세기 후에 폰티우스라는 사람이 니고메모가 그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순교했다는 고대 문서를 언급했습니다. 그가 무리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을 얻었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을 찾는 자들을 외면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으로 죄인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들 중에 하나입니다. 이제 우리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직 거듭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길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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