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18 참된 예배/2016.7.17.
요한복음 4:16 - 30
16.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한복음 강해 18번째 시간으로 “참된 예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사마리아 땅의 수가성 여인을 만난 예수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기에 요한이 이곳에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찾아오심으로 시작됩니다. 우리 편에서 어떠한 노력이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3장의 니고데모와의 만남 다음에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이 기록된 것입니다. 3장에서 니고데모는 당대에 부와 권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으로서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기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왔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이 여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당시에 천대받던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남자 6명과 동거하였던 불결하고 더러운 여인으로 취급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이름이 기록되었지만 이 여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녀를 찾아가시죠. 이것은 바로 세상에 그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구원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할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찾아가셨고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수를 먹으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있어 가장 숨기고 싶고 비밀스러운 죄악의 모습을 들추어 내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다는 증거 중에 하나가 바로 내 자신이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악 됨을 깊이 깨닫는 만큼 우리 가운데 임하신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또한 깨닫습니다. 이 여인은 그동안 회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더러운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영적인 목마름을 아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채우기 위해 그동안 남자를 바꿔가며 만났던 자신의 모습을 간파하고 계신 자신 앞에 서 있는 분이 선지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19절에 보시면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처음 여인은 예수님을 유대인 남자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만남을 통해 예수님이 선지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선지자라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알리시기 위해 선지자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고 있는 분이라면 선지자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배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20절에 보니까?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예배에 대한 질문을 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예배의 장소에 대한 문제는 평소 그녀가 궁금하게 여겼던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이렇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언급되었던 내용입니다. 가난안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12지파로 나뉘어 땅이 분배되어지고 이후 왕조가 세워지고 솔로몬 이후에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나뉘죠. 이때 북왕국을 북이스라엘이라고 불렀고 남왕국을 남유다로 불리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이고 남유다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세겜 땅에 있는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만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사마리아인들의 예배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사마리아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예배의 문제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선자지임을 깨닫게 된 순간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 마음 가운데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드리는 예배가 과연 참된 예배인가 하는 것이 의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첫 번째로 가장 하고 싶어지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것은 그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하기에 이에 대한 보답으로 무언가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라고 할 때 어떤 것을 생각하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주일에 모여 드리는 찬송과 기도 헌금 그리고 설교가 있는 이 시간을 예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도 예배의 한 부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예배에 대한 포괄적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예배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바르게 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로 예배를 나타내는 'worship'은 'worth, '가치'와 'ship, '신분'의 합성어입니다. 존경과 존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이며,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을 최상의 가치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 을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가장 가치 있는 분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비단 주일 예배 시간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의 영역에 있어서도 드러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여기 청년들이 계시는데,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들을 20대에 하게 됩니다. 직업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무엇을 가장 최상의 가치로 두고 생각하고 또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나의 최상의 가치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의 선택은 세상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예배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예배하는 자인가? 제가 왜 예배와 선택을 연결시키는가? 그것은 결국 우리의 삶이 수많은 선택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집에 편하게 쉬는 것 보다 이곳에 오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선택한 것이죠. 이러한 크고 작은 선택들이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예화)지난 금요일 쇼미더머니5가 끝났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랩경연을 펼치는 내용입니다. 우승을 비와이가 차지했습니다. 페이스북에 하도 글이 올라와서 제가 알게 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랩은 거칠고 욕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비와이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랩 가사에는 성경구절이 나오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것도 돌려 말하지 않고 아주 직접적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가사입니다.
<내 죄들을 이미 사해졌어. 새로운 사랑과 축복으로 인해 내 아침엔 난 다시 나음을 입어 난 네가 말하는 것과 달리 내 가치를 알아 특별하고 고귀함을 가진 단 하나뿐인 자녀임을 말이야God makes no mistake/자와상 pt2>
또 forever라는 곡에는
<모든 집중과 관심, 명예와 돈 전부 챙겨 현재 난 꿈나무들의 롤 모델 근데 애들아
나는 저걸 따라가지 않아 더 가치있는 걸 바라보지 영원한 걸 따라가렴 그럼 다 나를
따라올걸.
무언가를 얻지 못해도 난 걷지 믿음으로 역시 주님께 맡곁지 그가 원한다면 가고 아님 말아>
저는 이 가사도 그렇지만 그가 이러한 가사로 TV에 나올 때 얼마나 많은 인터넷 댓글들과 평가들이 난무하겠습니까? 결국 그가 이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결국 그가 했던 무대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무대가 된 것입니다. 그럴 때 이것을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삶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가장 가치 있는 분으로 높여드릴까
그런데 이 여인에게 있어 이러한 예배의 마음에 큰 걸림돌은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가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리심 산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인가 아니면 예루살렘에서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에 있어서 어떠한 형식이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신앙고백을 해야 하는가? 할 수 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인 참된 예배를 좌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반드시 예배당에서만 드려야 하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산에서도 드릴 수 있고 집에서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만 예배를 틀에 가두려고 합니다. 예배란 주일에 이렇게 예배당에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설교를 듣고 축도를 받아야 그것이 예배다 생각합니다. 맡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을 예배라고 생각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 하면, 예배와 삶을 분리하여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주일예배는 거룩하게 드리고 삶은 내 맘대로 삽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예배는 주일에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너희의 삶 속에서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예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제물은 보통 죽여서 드리는 것인데 살아있는 제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너희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삶 자체가 영적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나 형식이 본질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3절-24절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예배에 대한 중요한 지식을 알게 됩니다.,
1.첫 번째로 예배의 대상은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대신에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예배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녀들이 하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을 아버지라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보다 친근하고 인격적인 분으로 여기게 합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인격이신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의 자녀들의 인격적인 반응인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는 보다 자유롭고 생명력 있는 예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그 존재만으로 기쁨입니다. 부목사로 사역할 때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면 사택 곳곳에서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가 들입니다. 아빠 하면서 안기는 아이들이 목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아버지가 되어보니까 저의 아이가 저를 볼 때 발을 동동 구르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배의 그 어떤 거룩한 형식적 요소 보다 그 분의 인격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예배의 참된 본질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을 무슨 의미일까요?
여기서 영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진리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먼저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면 됩니다.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바람의 비유를 드시죠.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자들만이 참된 예배를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예배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희박해져서 간혹 어떤 교회에서는 불신자들을 위한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불신자들이 보다 쉽게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예배중에 가요도 부르고 영화도 보여주고 연예인을 초청하여 간증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예배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드리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러한 모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예배라고 불러서는 안됩니다. 전에는 구도자 예배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예배라는 단어는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참된 예배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드리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진리는 헬라어로 ‘알레떼이아’입니다. 이것은 진리, 진실, 실체, 본질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그림자나 상징이나 예표와 반대되는 의미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예배를 지시하십니다. 성전의 구조와 기물 그리고 예배의 방식까지 상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구약의 제사는 실체 또는 본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징이며 예표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짐승의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제물을 제단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속죄를 원하는 죄인의 머리와 그 제물의 몸에 양손을 얹고 죄인의 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시키는 의식을 행합니다. 그리고 제물이 죽습니다. 그렇게 하여 죄인의 죄가 속해지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고 하늘과 땅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요 제사장으로 서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모형으로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곧 구약에서 모형으로 예표로 보여주었던 모든 성전제사가 끝나고 실체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구약의 모든 성전제사는 끝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장에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세우겠다고 하실 때, 그것은 바로 내가 곧 성전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의 인격과의 만남인데 그 만남은 성령을 통하여 거듭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는 그 안에서 예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데 예수가 성전이 되셨기에 예수님 안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렇게 영광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곧 이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때”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도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예수의 어머니에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실 때도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지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길이 열렸고 그것은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지만 이미 그 효과가 현재에 나타나고 있음을 여인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 만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이 희박하다는 뜻이고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을 만큼 참된 예배를 기뻐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모여 드리는 예배일 뿐만 아니라 흩어져 삶의 자리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가장 위대한 가치로 삼아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분의 가치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순종할 때 그것은 참된 예배로 하나님이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계속하여 자신의 친밀함을 확인시키시며 우리를 더 큰 순종과 기쁨의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드립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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