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12-13 13:33

요한복음 강해 39. 참 제자는 누구인가?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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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39. 참 제자 그리고 자유/2016.12.11.

 

요한복음 8:31-32
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오늘 본문의 말씀의 중요한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참 제자가 누구인가?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참 제자가 누리는 영적유익입니다.
오늘은 참 제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살펴보고 다음시간에 참 제자가 누리는 영적유익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듣고 믿었다고 하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나를 믿는다고 하는데 진정으로 나를 믿는 것, 그래서 나의 참 제자가 되는 조건은 내 말에 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먼저, 제자라는 것은 스승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제자라는 용어는 선생님께 지적 가르침을 받는 것 정도이지만, 예수님 당시 제자라는 것은 스승의 모든 것을 본받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너희가 나의 말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된다고 할 때 그것의 의미는, 정말로 나를 믿는 참 제자가 되려면, 내 말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진정한 제자인가? 하는 것은,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고, 그분의 자녀인가, 나는 구원받은 자인가? 하는 것이 바로 이 말씀에 의해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부모님은 구원을 받았을까? 또는 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는 것도 바로 이 말씀에 의해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고후13:5에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성경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계신 줄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것을 알지 못하면 버림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구원받은 자인가? 아니면 버림받은 자인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먼저 몇 가지로 거짓되거나 잘못된 신앙의 형태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참 제자의 조건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종교적인 열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잘못된 것이며 따라서 참 제자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등장합니다. 그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당시 존경받는 지성인이며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는가 밤에 예수님께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2.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네가 나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하는데 사실, 니고데모 너는 거듭나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조자 없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의 고백은 거짓으로 판명된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바리새인으로서 열심히 율법을 연구하고 지켰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세상의 떡을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따랐던 수많은 무리들이 등장합니다. 6장에 가면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남자만 5천명 그러니까 여자와 아이까지 하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주시는 기적의 떡과 물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다윗왕때의 태평성대를 이루게 할 메시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가 하늘로부터 온 떡이며 나를 먹어야만 생명을 얻게 된다고 했을 때, 그들은 모두 떠나가 버립니다. 그 많았던 무리들이 다 떠났습니다.
요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세상의 떡을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통해 자신들의 삶이 평안하며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사업이 잘되고 질병에 걸리지 않으며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헌신한 만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헌금생활을 하며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축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기복적 신앙의 문제는, 자신의 삶에 고난이 일어날 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헌신했는데 왜 이런 고난이 주어졌는지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 그러한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면 믿지 않겠다고 떠나갑니다.
바로 세상의 떡을 위해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3) 종교적 신비 또는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23-24
23.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여기서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신앙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일어나는 신비적 체험이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병에서 고침을 받았거나, 귀신을 떠나가는 것을 체험했거나, 방언이나 환상 등을 경험한 경우입니다. 이들은 예수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믿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21-23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러한 신비적 경험을 했거나 또는 지금도 일으킬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이 참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병이 낫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 구원받은 자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그들이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해서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의 평가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잘 분별하셔야 합니다.

 

4) 일시적 믿음
일시적으로 믿음이 있어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고 기도와 성경읽기에 열심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정을 품고 헌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믿음을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련의 순간에 믿음을 저버리기 때문입니다.
눅8: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잠깐 믿다가 시편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련의 순간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시험해 볼 중요한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모릅니다. 내가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에 갈 확신이 있어요. 그러나 그 죽음이 당장의 현실로 내게 다가오면 그때 내 믿음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요한일서 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믿음의 형제 가운데 나가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5)지적 동의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야고보서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요한복음을 공부하면서 국내외 설교와 강의를 가능하면 많이 듣고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도올 김용옥 교수가 요한복음을 강해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의 깊이와 심도 있는 내용까지는 알지는 못하더라도 어설픈 지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요한복음을 잘 알고 가르칠 정도이면 참 제자이며 구원받은 자인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약을 믿지 않습니다. 그의 강의 내용을 보면 구약의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고 죽이고 하는데 그런 구약을 어떻게 믿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창조주의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지적인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도 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 내 자신이 참 믿음에 있는가 시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 제자,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법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자신의 불법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포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못된 믿음에 열정이 보태지면 그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구약 사사기에 보면 입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사기는 왕이 없을 때에 각자가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2명의 사사들이 등장하는데 입다라는 인물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입다는 사사기 11장부터 등장합니다. 입다의 이야기에서 가장 클라이막스는 그가 맘몬과의 전쟁에 나가는 장면입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합니다.
“30.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그리고 성경은 전쟁 사건은 두절로 간단히 언급하고 난 후 이제 입다의 서원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승리에 환호를 하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집의 사람들도 기뻐하며 환호합니다. 그중에 바로 그의 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기뻐하며 소고를 치며 자신의 아버지를 맞이하러 나갑니다. 여러분! 저는 이 장면이 성경에 등장하는 눈물 나는 장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맞이하러 나가는 딸, 그는 입다의 무남독녀였습니다. 입다는 글 보자 자신의 옷을 찢으며 말합니다.


사사기 11: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결국 그녀는 입다의 서원대로 번제물로 드려지게 되었습니다. 번제라는 것은 죽이고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당시 이방종교에서 흔히 행해졌던 제사법이었습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당시 이방종교는 자연재앙이나 우환이 있을 때 인신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서원을 하였고 또 그 서원을 지킴으로 끔찍한 결과를 맺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단서를 입다 이야기가 시작하는 10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10장 6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에 있는 모든 신들을 다 섬긴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입장에서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섬기면서 동시에 이방신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자신들의 신앙이 물들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한번에 타락하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타락하는 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 시작은 무엇인가 하면 이방신들을 동시에 섬긴 것입니다. 이방신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풍요와 안정을 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람이 만든 것이 우상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풍요와 만족을 주는 삶의 방식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그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드리고 각종 모든 기독교적 제반행위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일들이 오히려 불법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경솔하게 서원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집에 있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서원에 지켰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자기만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입다는 자신의 딸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었지만 그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신들을 섬기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인신제사를 금하셨습니다.
레위기 18:21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그런데 입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었거나 무시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참 제자가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이 아니라면, 그래서 우리가 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그분의 자녀가 아니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는 열정과 의지는 오히려 불법이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시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참 제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정말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인지, 아니면 내가 믿고 싶어하는 신적대상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참 제자, 참 믿음, 참 구원은 무엇이며, 참 하나님의 백성, 참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8:31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말씀안에 거하는 자들이 참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분의 말씀을 사랑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요14:21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5:10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참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에 그래서 그 분을 사랑하기에 그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려고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려고 할 때에 실패합니다. 오히려 내 자신이 그 말씀에 너무나 멀리 있다는 것을 순종하려고 하면 할수록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여전히 죄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를 흔드는 모든 악과 고난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묵묵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내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인내하면서 소망합니다. 무엇을 바라봅니까?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제 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할 수 있는 그 날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2-4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사모하고 있습니까? 나의 소망과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열망하고 있습니까? 내가 속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모든 만남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들이 순종되어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까? 실패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내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참 제자들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 가셔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분을 바르게 경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