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33. 생수의 강 예수 그리스도/2016.10.30
요한복음 7:37-39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본문의 내용은 초막절 명절 끝날에 예수님께서 외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두절밖에는 되지 않지만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는 상당히 깊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걱정되는 것은 이제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에게 오늘 설교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집중해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의, 식, 주가 가장 기본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먹을 것입니다. 집이나 옷은 없어도 살지만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먹을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물입니다. 밥을 굶어도 살지만 물은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실 때 지구의 70%가 물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우리 몸에 70%가 물입니다. 저도 아내와 함께 2개월을 캠핑카를 타고 뉴질랜드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탈레스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미 항공우주국의 임무도 다른 행성에 물이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인간의 문명도 역사적으로 강과 물을 중심으로 번성해 왔습니다.
이처럼 물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물에 대한 인식은 이미 고대사회 때부터 있어왔습니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다. 물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특히 BC 1400년경에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에 대한 인식이 남달랐습니다. 그들은 40년이란 오랜 광야생활에서 물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체험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광야로 나온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물이 떨어진 것입니다. 물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면서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가축이 목말라 죽게 되었다며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그 원망이 이제는 분노가 되어 차올랐을 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사정을 고하자 호렙산에 있는 반석을 지팡이로 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대로 했을 때 반석에서 물이 나와 온 백성이 마시게 된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광야 여정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마르지 않도록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물에 대한 이미지를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만큼 우리가 경험적으로 생명과 물이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설명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사야 12:2-3
2.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여기보면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라고 하고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은다’고 합니다. 구원이라는 개념은 죽음의 상태를 전제하고 하고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이 구출되었을 때 구원받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은다고 하는 것은, 죽음의 상태에 있는 자들이 우물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죽음의 상태에 있는가? 그렇죠.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마치 뿌리 뽑힌 나무가 죽은 나무이듯,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대지에서 떨어져 나가 죽음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뿌리 뽑힌 나무가 당장 시들지 않고 자신이 가진 생명력으로 얼마동안 사는 것처럼, 우리도 역시 우리가 가진 생명력으로 지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니죠.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의 상태에 있던 우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러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에스겔 47장의 말씀입니다.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이 말씀은 에스겔이 본 환상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1절의 ‘그’라는 존재는 성령님을 말합니다. 성령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문으로 갑니다. 그런데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성령님께서 동서남북으로 줄자를 가지고 물이 나오는 곳을 재기 시작하는데 먼저 동쪽에서 천척를 재고 나서 에스겔에게 물을 건너보라고 합니다. 건너보니 물이 발목까지 올라왔습니다. 그 다음에 또 천자를 재고 물을 건너보라고 하니까 물이 무릎까지 차올라왔습니다. 또 천척을 재니까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습니다. 또 천척을 재니까 물이 불어서 건너지 못하는 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6절에 성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사람아, 네가 이것을 자세히 보았느냐?(새번역) 그리고 강줄기를 따라 가 보는데 이미 강의 양쪽에는 많은 나무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8절부터 보시면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죽어 있는 것들을 살려내는 이 물이 어디로부터 나온다고 합니까? 12절에 보니까 성소입니다. 성전에 들어가면 뜰을 지나 성소가 나옵니다. 그런데 아까 성령님께서 줄자를 가지고 천척을 몇 번 쟀습니까? 네 번입니다. 즉 정사각형입니다. 그런데 성소는 정사각형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정사각형은 어디입니까? 성소 안에 있는 지성소가 정사각형입니다. 즉 지성소에서부터 나온 물이 흘러 강수가 되어 죽어있는 모든 생물을 살려내고 있는 환상인 것입니다.
스가랴 14:8절입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그날이라는 것은 14장 1절의 ‘여호와의 날’ 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권세아래 놓여있는 자들을 구원하는 날,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이 생수가 바로 생명을 주는 구원의 물인 것입니다.
이러한 구약의 말씀들이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로 또는 그림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초막절 명절을 보내면서 행했던 의식중에 하나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물의 의식이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3대 명절중에 하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20세 이상의 남자들은 이날에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이 명절을 지키게 됩니다. 초막을 짓고 7일 동안 생활하면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셨던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뿐만 아니라 초막절은 가을에 있어서 추수의 기쁨을 즐기는 절기이기도 했습니다. 7일동안 지키게 되는데 팔일째도 성회로 모여 지키게 됩니다. 특별히 첫날과 팔일째는 안식하면서 성회로 모이게 되는데 성회때는 희생제물을 드리고 기도를 하고 희생제물을 먹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물의 예식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때 제자장들이 세그룹으로 분리되어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제사장은 총 24명입니다. 그래서 8명이 한조가 되어 한팀은 성전에서 희생제사를 드리고 치루고, 또 한팀은 성전주변에서 버들가지를 꺾어 흔들면서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합니다. 한발을 디딜 때 마다 버들가지를 흔들면서 바람소리를 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팀이 물의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실로암 못에 가서 물을 길러 성전으로 올라와 제단에 있는 은그릇에 붓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기우제로서 다음해에 비가 올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제단에는 제물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단 앞 은잔에는 실로암에서부터 가져온 물이 계속해서 부어지고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는데 시편 120편부터 134편의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시편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제사장 두명이 성전계단 위에서 나팔을 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버들가지 흔드는 소리가 휘휘 들리고 있습니다. 실로암에서 길러온 물이 성전앞에 부어지면서 마치 에스겔의 환상처럼 성소에서부터 물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이 등장하십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외치신 것입니다.
“37.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초막절 축제가 최고조로 달한 큰 날(팔일째 성회)에 성전앞에서 이렇게 외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예수님이 이 외침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개의 해석이 가능한데 구두점 어디에 찍히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집니다. 첫 번째 해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그 배”를 “나를 믿는 자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들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난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견해는 구두점이 38절의 “나를 믿는 자”앞에 찍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그 배”가 예수님의 배가 됩니다. 어떤 의미인가 하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마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이름과 같이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배”는 인격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격의 중심을 배로 보았습니다.
두 번째 해석이 보다 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구약성경에서 생수의 강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옵니까? 그것은 지성소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21장에 보면, 요한이 새하늘과 새땅의 봅니다. 하늘에서부터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관심이 무엇인가 하면 성안의 성전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2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2절.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16절에 보면 이 성은 네모가 반듯하다고 합니다. 정사각형입니다. 정사각형이라는 것은 예루살렘성 자체가 지성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성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따라서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난다는 것은 예수가 바로 생명을 주는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초막절에 사람들은 장막을 지어 광야생활을 기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초막을 지어 생활할 때 또 하나의 초막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초막이었습니다. 그것을 성막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성막이 나중에 건물로서의 성전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막절에 그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로 등장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리서 “거하다” 것의 원어의 의미가 “장막을 치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장막을 치친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으로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에 가면 새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올 때 큰 음성이 나는데 이러한 음성입니다.
3절에 보면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장막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을 믿게 되면 예수의 배에서 나온 그 생수가 우리의 죽은 생명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환상처럼 성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죽어 있는 생명들을 살펴내듯, 예수를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으로 믿을 때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22장 1-4
1.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의 인격에서 나온 그 생명수가 우리의 죽은 생명을 살려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수는 곧 성령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땅에서부터 생명을 얻어 살아갑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요한복음에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만이 이 기록을 남겼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피만 나온 것이 아니라 물도 함께 나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물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수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구약의 그 생수의 근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자신이며 그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짐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목마르지 않다는 것은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에 살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가진 것이 많아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만족한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 되었기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부터 천국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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