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05-02 13:27

요한복음 강해 56. 십자가와 섬김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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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56

 

요한복음 13:12-20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강해 56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세족식 사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자신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길 원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는 속죄사역임을 그들의 발을 씻기는 것을 통해 교훈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고 난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이것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자주 서로의 발을 씻기는 일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십자가의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주제는 이것입니다.

십자가와 섬김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는 구원의 방식이며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야 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십자가에 담겨있습니다.

섬김이라고 할 때 여러분들을 어떤 것을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섬김과 십자가의 연관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우리는 왜 서로가 섬겨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섬길 것을 명하시기 때문입니다.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은 단 한 번의 행위였으나 이것을 통해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이러한 행위를 본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발을 씻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깊은 차원의 섬김이라는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섬김을 위해서였습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섬김을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고 했을 때 그 이유가 섬김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당연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자라는 표현은 다니엘서 7장에 표현된 사람모습을 한 신적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람의 모습을 한 신적존재임을 말씀하시면서, 이 땅에 온 이유가 섬김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며 질서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서 그의 백성을 섬기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면 이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정과 공동체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왜 그토록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동안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특권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슬픈 역사를 보았습니다. 세상의 권력의 목적은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려는 자세로 일한다며 그 나라 국민은 행복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언제나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섬기셨다면 우리는 모두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주의 섬김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질서를 실천하며 배우라고 주신 것이 가정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셨던 그 섬김을 배우고 실천합니다.

부모님들은 하는 일은 대부분 섬기는 일 아닙니까? 자녀들이 독립하여 또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을 때 까지 감당해야 할 섬김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자신을 마땅히 희생하며 자녀를 세워나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도 이 땅의 악한 아버지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나라의 섬김의 모습이 이 땅의 모든 가정, 심지어 악한 아버지에게도 심겨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에서 배우자나 자녀를 대할 때 또는 부모를 대할 때 이러한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남편으로서 아내를 섬기는 자로 있다는 것입니다. 또는 내가 아내로서 남편을 섬기는 자로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살다 보면 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고쳐보려고 잔소리도 해보고 갈등도 일으키지만 그렇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자기를 주장하고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항상 갈등과 충돌이 생깁니다.

그때 우리가 가져야 할 성경적 자세는 내가 어떻게 섬겨서 도와줄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히려 연약함을 감싸주고 부족함을 채워주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녀를 교육하는 것에 있어서도 우리는 섬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섬겨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울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먼저 가정에서 섬김의 자리에 서게 되면 가정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섬김은 치유를 가져오고 영적으로 회복되며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죄악이 창궐하지만 섬기는 소수의 사람으로 인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섬기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기쁨의 꽃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렇다면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섬김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연관시킵니다.

세족식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임을 이미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신 뜻은, 너희도 나와 같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희생과 포기를 의미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며 목숨을 버린 것처럼 너희도 서로를 위해 희생해야 하고, 하늘의 영광을 포기한 것 거럼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1-8

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서로 겸손히 섬길 것을 요구하면서 그 근거를 십자가와 연관시킵니다. 너희가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 겸손은 하나님이신 그 분께서 사람이 되셨고 결국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의 섬김의 근거가 되고 또한 섬김의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포기하고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여 우리를 섬겼듯이 너희도 포기와 희생을 통해 서로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고 있는 무리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했을 때 십자가는 삶의 주어진 고통을 의미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즉 우리가 죽었음을 날마다 고백하며 인식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부인입니다. 나의 유익과 만족을 추구하며 살았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백성의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0:45에서 섬김을 십자가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결국 섬김이란 십자가의 삶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을 희생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김 전에 먼저 사랑이 있고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주는 희생이 있습니다.

우리는 불특정 다수를 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면 모든 사림이 구원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만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3:1을 보시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결코 섬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섬김의 실천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바깥에서 하는 섬김은 외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섬김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고 그것이 교회공동체로 더 나아가 직장과 일터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도 예수님은 섬김과 십자가를 연결시킵니다.

요한복음 12:24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섬김과 십자가의 희생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죽음으로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려낼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대목에서 섬김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