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06-27 16:04

요한복음 강해 60. 믿음의 내용과 믿는자의 축복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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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60

 

요한복음 14:7-14

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만일 여러분들에게 누군가 기독교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또는 기독교인으로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고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제가 기독교인으로 믿고 있는 것은 예수가 주님이며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주님 또는 그리스도라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분이라면,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는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어떤 설교자 또는 목사가 이 사실을 믿지 않을 경우에는 가짜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가 하나님임을 믿지 않고 있다면 아직까지 하나님의 백성은 아닙니다.

 

교회의 십자가는 걸려 있는데 그곳에서 설교하는 목사나 모인 성도들이나 할 것 없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지 않는다면 그곳은 교회도 성도들도 아닙니다. 단지 불교나 이슬람 같은 하나의 종교인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전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곧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 번째는 내가 곧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것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7절에 보시면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아버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를 본 것이 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하십니다.

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하신 말씀입니다.

빌립아, 네가 3년 동안이나 나와 함께 있으면서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보지 못했느냐, 나를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하나님을 보이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이때까지도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중에 대부분은 놀라운 이적들과 생전 처음 들어보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들이었습니다. 때로는 놀라기도 했고 또 충격을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불과 한 주전에 있었던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이었습니다. 이미 죽은 지 4일이 지나 시체는 부패했고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그 시신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신화가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요한복음의 기록은 벌써 거짓으로 판명되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 당시 가뜩이나 예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된 유대정부와 바리새인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보았고 그 일은 삽시간에 예루살렘 전역에 퍼져나갔습니다.

 

그 일 뿐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나머지 선별된 6가지 이적들은 어떠합니까?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으로 시작하여 거의 죽게 된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린 사건이며 베데스다 못가에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일으시킨 일,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운 이적들이 일어난 현장에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시고 다락방에서 말씀하시는 순간에도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고 들었음에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을 적대시했던 자들, 유대의 관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에 대한 입장이 명확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사람이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 입장이 모호한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예수가 하나님임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믿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내용은 바로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이나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알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이때까지는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이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주에 니고데모와의 대화내용을 잠시 살핀바 있습니다. 주제가 거듭남에 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을 잠시 보도록 할까요?

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렇다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가능하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물과 성령이라고 했을 때 니고데모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알았어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누구입니까? 그는 구약에 정통한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입니다. 따라서 물과 성령이 함께 등장하는 구약의 말씀을 기억했어야 합니다.

 

에스겔 36:25절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의 방식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25.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우리나라 성경에는 주어가 생략되었는데 영어 성경에 보면 I will이 다섯 번 등장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죠. 실제로 물이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로 사용된 것입니다. 또 새영으로 우리의 죄악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27절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물은 성령의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하시는 역사의 상징으로 사용된 비유적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물과 같은 성령, 즉 물이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어야만, 거듭나야만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3절에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제자들은 이때까지도 성령님의 오심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 번째는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 또는 신앙은 예수가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이것은 놀라운 이적들을 체험한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비한 체험을 추구하는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신앙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죽은자가 살아나는 일을 본다고 할지라도 믿지 않습니다(16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