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61. 성령으로 우리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요한복음 14:15-24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기독교는 관계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인격적인 연합을 이루어 교제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목적하였던 것은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함께 나눌 인격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인간을 인격체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초의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은혜와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이 인격체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하나님인 존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어 신의 뜻이라면 무조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자발적인 판단과 결정 그리고 행동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의 선택과 결정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 먹기로 작정했을 때 하나님은 막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하고 결정하는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러한 인격성 때문에 모든 인간은 자신의 존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되었다는 증거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자신에 대한 존엄의식입니다. 인격이란 내 생각과 행동의 주체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인격은 우리의 영혼 속에 깃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인격이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으면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인격으로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격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인격인 인간들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창조주를 영광을 높이고 그분의 권능과 지혜를 찬송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처음 했던 일은 피조물의 이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와 속성을 파악하여 그것에 가장 적절한 명칭을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과학자들이 하듯 아담은 피조물 속에 담겨 있는 사물의 이치와 속성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발견하고 찬양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아담에게 있어 일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발견하였고 찬양했던 것입니다.
오늘 날처럼 예배라는 많은 명칭을 붙여 한주에 11번(새벽7번, 수요, 금요, 주일오전, 오후) 예배하면서도 삶 속에는 전혀 하나님을 의식하거나 찬양함이 없는 이중적 삶이 아니라, 일이 곧 예배였던 것입니다.
좀 쉽게 말하면, 학생은 공부가 예배이고, 주부는 살림과 아이 돌봄이 예배이고, 남편은 직장에서의 일이 곧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와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인격으로서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인격 앞에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길 원했습니다.
하나님 의존적인 삶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하실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창조주를 거역함으로 인간에게는 저주와 심판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인생의 가장 큰 복일진대 그것을 상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인간에게는 공허와 허무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채워야할 영혼의 빈 공간에 아무리 돈과 학식과 명예로 채워도 채우는 만큼 공허해 질뿐입니다. 영혼의 외로움을 인생의 쾌락으로 채워보려 할수록 오히려 더 허무해 질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격의 중심인 영혼은 하나님의 인격과 연합되고 교제할 때만이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어보아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뿐이네!’의 노래가사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의 인격과 교제할 때만이 비로소 평안함을 얻습니다.
비로소 안식할 수 있습니다.
엄마 품에서 떨어져 최고의 보육시설에서 최고의 음식과 여러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아도 아기는 안식할 수 없고 평안할 수 없습니다. 아기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이듯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만족을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더럽고 타락하여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을뿐더러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더럽고 추한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의 손길을 내밀어도 밀쳐내고 거부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섬기는 그 분이 백성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그 일을 언약으로 맺으신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을 삼는 법적인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죄인들 가운데서 그분의 사랑받는 자신의 백성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아브라함을 통해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시 우상을 섬겼던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가나안땅으로 갈 것을 명하시고 그곳에서 자신의 백성 삼는 일을 시작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은 성막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제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사함 받아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인격과 성품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 관계적인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목자라고 하시고 너희는 내가 기르는 양이라고 하심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인격성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남편이라고 하시고 너희는 나의 신부라고 하심으로 인격적으로 최고의 친밀한 관계임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라고 하시고 너희는 내가 기르는 자녀라고 하심으로 결코 그분의 권위와 사랑의 성품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우리에게 친밀하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그의 백성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거부하였습니다.
예레미야 3: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하나님은 그의 은혜의 손길을 반역한 백성들에게 뻗쳤지만 그들은 남편 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간음을 범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상속받아 집나간 탕자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삼으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찬송과 영광을 받을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작하신 일을 마침내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빌립보서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예례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31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삼는 새 언약을 세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새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과 세운 언약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언약을 통해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은 남편 된 하나님을 버렸지만 새 언약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하고 다시 기억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새 언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전해 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속에 기록된다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37:26-28
26.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27.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8.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 화평의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를 그들 가운데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 가운데 거할 처소를 마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처소,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는 영원토록 그의 백성가운데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간헐적으로 그의 백성에게 임재 하셨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화평의 언약이 세워질 때 그분의 성소가 그분의 인격이 우리 가운데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할 때였습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