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07-25 12:03

요한복음 강해 63. 주님안에 거하는 것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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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63. 주님안에 거하는것

 

요한복음 15:1-8

1.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부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이게 아닌데할 때가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예배와 심방과 전도일정을 감당하면서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라고 자문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설교를 하지만 머리에서 나온 설교라 머리까지만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심방을 하여 성도들의 이러 저런 형편을 듣고 기도제목을 듣지만 의무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사역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사역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없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은혜와 감격이 사라지고 의무와 형식이 남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교회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을 좌우하는 것은 예수님과 관계이지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자주 나와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지 그분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설명하십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우리가 예수님에게 연합되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현재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본 것은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은 참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1절에는 참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참 포도나무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냥 포도나무이다 해도 될 텐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포도원 또는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포도나무로 불렀던 것입니다.

<이사야 5:7>“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예레미야2:21>“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시편80: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이러한 구절들은 대부분 포도나무가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말해줍니다. 즉 구약의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오히려 반역하고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하신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은 결국 패역하며 하나님의 백성 됨을 상실했지만 자신은 참 포도나무 즉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합당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 안에 붙어 있는 가지, 즉 당시의 제자들과 오늘날의 성도들이 예수님과 연합되어 질 때 하나님나라의 온전한 백성이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이 무엇인가 또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 어떤 것인가 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그 핵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 영생,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고 할 때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그림중 하나가 바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대지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 결과 포도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성도들의 연합체라고 이해한 것입니다.(1:18)

<2:19>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또한 로마서 11장에서 성도를 접붙임을 받은 나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러한 연합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그것은 열매입니다.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는 열매입니다. 사랑, 기쁨, 겸손, 섬김 등 하나님께 속한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열매들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속함으로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결과들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지는 것입니다. 겸손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단지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열매를 맺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주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방향도 열매가 아니라 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열매를 위해 노력하다 보면 지칩니다. 대부분 신앙인들이 지치고 탈진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나에게 없는 것을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자원은 금방 소진됩니다. 핸드폰이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충전하지 않으면 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 대지로부터 올라오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받을 때만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제가 사역하면서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을 공급받아야 되는데 여러 가지 일로 분주했던 것입니다.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던 이유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과 교제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를 책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계시록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그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주님께서 주신 대안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네가 떨어진 자리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디입니까?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주요한 전략 중에 하나가 바로 떨어뜨리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과 교제로부터 우리를 떨어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여러 가지 일에 분주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때로는 전도, 봉사, 구제 등의 선한일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멀어진 상태에서는 결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고 교제한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여기서 계명이라는 것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그 사랑 안에 거한 것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성경을 성경전체를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딤후 3:16). 하나님의 감동이란 성령의 호흡하심, 쉽게 설명하면 성령님의 역사와 간섭하심으로 쓰여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경의 주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자신에게 조명을 비추시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조명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서 간섭하셔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깨닫게 하시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으로 충만해 진다는 것이 신비적인 것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성해 지는 것, 즉 우리가 성경 말씀을 묵상할 때 그것이 우리의 전인격에 역사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