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69. 평안하라 그리고 담대하라
요한복음 16:25-33
25.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오늘 본문은 고별강화의 마지막 부분이면서 결론에 해당됩니다.
13장의 다락방 강화는 14장부터 고별강화로 이어졌고 이제 그 결론부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주부터 살펴보게 될 17장부터의 내용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붙잡히시고 십자가로 나가시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말씀의 주제는 “평안하라 그리고 담대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33절에 보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고 자녀들이 승승장구하고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 복음의 물결은 한때 한국교회를 휩쓸었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성도들을 오염시켜 놓았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는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 할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들을 가지고있습니다.
여기에는 이러한 종교적 신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다른 말로 치성을 열심히 쌓으면, 하나님께서 감동하사 어려움을 피하게 하시고 형통함을 주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모든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의식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땀을 흘리며 절을 올리고, 성당이나 절 그리고 교회에 돈을 바치며 나와 가족들의 인생에 제발 어려움이 닥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행여 주변에 누가 사고를 당하거나 건강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러한 종교심은 더욱 가중되어 더욱 열심히 치성을 쌓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는 이러한 종교적 신념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꽤 많이 계십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에 형통함을 보장해 주시는 분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다 행여 뜻하지 않는 어려움이 닥치면 예를 들어 암에 걸린다거나 사업에 부도가 난다거나 사랑하는 가족 중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그들의 신앙은 급격하게 흔들리고 극단의 경우 신앙의 길을 이탈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기독교는 만사형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만사형통을 단 한 번도 약속의 형태로 우리가운데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순교자의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길은 이 세상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길이며 때로는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른 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자기포기와 권리포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향하여 침을 뱉고 뺨을 때리며 조롱하는 자들을 향하여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 앞에서는 주저함 없이 분노하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모습을 보면서 참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고별강화의 마지막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그들이 행여나 염려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을까 다독이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1)”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4:16)”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8)”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삶 가운데 닥칠 어려움 또한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16:2)”
당시 출교라는 것은 유대교 공동체에서 이탈되어 더 이상 접근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 꺼리가 되고 어떤 일을 할 수도 없고 음식을 사거나 팔고 하는 기본적이 사회생활 자체가 제한되는 것입니다. 가족조차도 볼 수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에 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죽음에 처해진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이 자신들을 떠난다는 것에 서운해하고 있었고 당시의 세족식과 최후의 만찬으로 이어지는 그 무거운 밤이 빨이 지나가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기쁨과 평안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만사형통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너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십자가의 길이며 순교자의 삶이겠지만, 그 속에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의 삶 전체를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당한 그 고난과 핍박을 내다보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핍박과 조롱을 받고 죽음가운데 처해 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은 원형경기장의 사자밥이 되어 죽기도 하고 화형을 당해 죽기도 하였으며 사지가 찢겨 죽는 능치처참을 당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당시의 성도들의 모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앞으로 그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당하게 고통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평안하라 그리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도들은 이러한 극심한 환난 속에서 평안할 수 있고 또 담대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26.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그 날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기쁘신 일이기에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이 땅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너희는 평안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이 너희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이므로 평안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만사형통이 약속이 아니라 환난 가운데 평안할 것이고 담대할 것이라는 것이 약속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에 우리가 평안할 수 있고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세상의 모든 죄의 저주 악과 고난으로부터 이기셨기 때문에 너희가 담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승리의 우리의 승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싸움은 그리스도와 세상의 악한 영인 사단과의 싸움을 상징합니다. 키가 작고 어린 다윗은 장대한 체구의 큰 검을 가진 골리앗과 싸워 승리합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출전하여 물맷돌을 던저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칼로 머리를 베고 승리를 외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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