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06-20 12:31

요한복음 강해 59. 목적지 그리고 길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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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59. 목적지 그리고 길

 

요한복음 14:5-6

5.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가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옳은 것이며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은 맞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이 길은 맞는 것인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진지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때론 이러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내 인생의 길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외수 작가는 <퇴근>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날마다 오후 다섯시부터

길을 잃어버리는 당신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는 길을 묻지 않지만, 그 일을 잠시 그만두었을 때 우리는 길을 묻게 됩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말입니다.

 

인생가운데 가장 중요한 질문은 길에 대한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또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 앞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오후 다섯시에 퇴근한 직장인들처럼 말입니다.

 

목적지를 모르고 가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열심히 뛰어가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그 인생은 불쌍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두 가지가 오늘 우리가 나눌 내용입니다.

 

목적지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길을 묻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너희가 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고 하시고 또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배하러 간다고 하니까 제자중 하나인 도마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5절에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 목적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목적지로 가는 길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사역 기간에 그리고 다락방에서 마지막으로 말씀을 하시면서 어디로 가는지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4절에 보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라고 하심으로 결국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는지 그 길을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가는 목적지가 하나님 아버지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진리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인생의 목적지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끝에 최종적인 목적지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앞으로 가게 될 곳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영원히 그곳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그 하나님 우리들의 아버지가 계신 곳입니다. 어떤 성도는 조금 빨리 가기도 하고 어떤 성도는 늦게 가기도 합니다. 어떤 성도는 고통속에 가기고 하고 어떤 성도는 편안하게 가기도 하지만 결국 종착지는 같습니다. 그곳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고 믿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삶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목적지를 아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갈 준비를 합니다. 반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근본적인 불안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목적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절망합니다.

 

여러분은 화장터에 가보신적 있습니까? 화장터에 들어가면 여러개의 화구가 일렬로 있고 그 앞에 유가족이 볼 수 있도록 작은 방들이 있습니다. 대학원때 인천에 있는 모교회에서 전도사사역을 시작할 때 였습니다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참석한 장례식은 인천의 호프집 화재사건때 희생당한 학생들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운구가 화구로 하나씩 들어갈때마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것은 깊은 절망이었습니다. 화구 앞에 놓여져 있는 영정사진의 아리따운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인생이 허무하고 허망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세월호 사건은 어떻습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곧 절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합니다. 성경은 죽음을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가는 잠깐 동안의 수면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잠들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잠시 잠들었다 눈을 뜨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떠서 이곳에 오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잠을 자고 일어납니다. 아니 평생을 그렇게 삽니다. 잠은 우리에게 있어 휴식이며 평안입니다. 그래서 잠은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죽음이 잠자는 것이라면 우리는 매일 죽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렇게 하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 코 끝에 호흡이 다하고 그렇게 잠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품에서 새로운 호흡으로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2

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Now we know that if the earthly tent we live in is destroyed, we have a building from God, an eternal house in heaven, not built by human hands

2.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 땅에서의 삶은 텐트생활과 같습니다. 캠핑을 하게 되면 텐트를 칩니다. 캠퍼중에 텐트에 무언가를 잔뜩 쌓아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있으면 텐트를 접고 집으로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이 땅에서의 삶을 소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시 텐트치고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하도 괜찮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집이 있기 때문 아닙니까? 평생을 텐트에서 산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것이 없겠죠. 여행의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가 가장 불편한 것이 사실 캠핑입니다. 그러나 또한 가장 재미있고 추억이 많습니다. 호텔은 편하지만 추억이 없습니다. 억수 같은 비를 맞아보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아래서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좋은 추억들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할 때 원문의 뜻은 하나밖에 없는 그 길이며 그 진리이며 그 생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개의 길 중에 하나가 아니라 오직 한길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여기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진리입니다.

 

오늘날, 이 진리는 굉장히 위협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철학적 사조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합니다. 이 사상은 절대적이 진리를 부정합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을 해체시키고 진리는 다양하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도 다양하다라고 말합니다. 산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러개가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뿐만 아니라 이슬람에도 불교에도 천주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 탄신일에 천주교나 기독교중에서도 어떤 교단은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하고, 성탄절에 불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을 거는 것을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