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48.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2017.2.26
요한복음 11:1- 16
1.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한복음 강해 48번째 시간으로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으로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입니다.
요한복음에는 7개의 표적이 등장한다고 했는데 그 마지막인 7번째에 해당합니다.
그 동안의 강해를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표적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보다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가는 장면을 살펴보면서 이 표적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4절까지는 본문의 사건이 어떤 상황속에서 벌어졌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서론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그는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의 오라버니로 예루살렘에서 1km떨어진 베다니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마리아는 12장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던 여인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저들의 집에 들르셔서 음식을 잡수시며 교제한 장면이 기록된 것으로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 가족은 예수님께서 전도여행을 하실 때 가끔 들리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가족이었음을 몇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3절에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5절에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36절에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이렇듯 이 삼남매를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들은 것입니다. 이 병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질병이었습니다. 이에 다급한 자매는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한 예수님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4절에 보니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즉 이제 펼쳐지게 될 사건의 전개는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철저하게 계획되고 조율된 사건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도입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몇 가지 사실을 주의 깊게 기대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제 앞으로 진행되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광을 받으실 것이 가? 하는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영광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십니다. 6-7절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루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상황과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반면 마리아 가족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황당하고 속 터지는 일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그동안 예수님의 사역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이 오시면 분명 죽을병이라도 고침 받는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가장 위급한 순간 주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예수님께 보낸 것입니다.
한편 그들은 죽어가는 나사로를 지켜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만을 기다리는 것뿐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10장 40절의 기록처럼 요한이 처음세례를 베푼 곳 그러니까 베뢰아에 있는 베다니에 계셨습니다. 마리아의 집에서 하루길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약 이틀정도 소요될 것입니다. 그 이틀 동안에 오직 한 가닥의 희망의 끈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냈던 사람이 돌아오는데 혼자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여 와야 되는데 홀로 온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느꼈을 그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소망이 끈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습니다. 삶의 힘들고 어려운 문제 앞에서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새벽기도도 하고 금식도 하면서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구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기대하고 소망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식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때와 일치하지 않는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더 큰 소망이 됩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 맘의 소망이 이루어 지지 않을 때,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더 큰 은혜가 됨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와 나의 때가 다른 것은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조급해 하거나 경거망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저 묵묵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를 기다리되, 한편으로는 인내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감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원하는 것을 당장 해달라고 조릅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기다릴 줄 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까지 기다리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좋은 아버지가 되사 자식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보고 기대하는 것은 우리 수순이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이상이십니다. 그분을 믿고 신뢰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영광은 믿음을 통해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틀을 지체하시고 마리아에게 가십니다. 그 사이 이미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17절에 보니까 나사로가 죽은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장사하고 무덤에 묻는 일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에 대한 기대도 헛될 뿐입니다. 그렇게 불 꺼지고 막 내린 무대, 모든 것이 종결되고 절망적인 삶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원망스런 마음으로 예수님께 아룁니다.
21절에 보면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그는 원망과 함께 주님께 대한 한 가닥 기대가 있었습니다.
22절을 보시면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비록 나사로는 죽었지만 마르다는 주님께서 무언가를 해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23-2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부활하실 것이며 또한 부활을 일으키시는 부활의 원천이요 근원임을 말씀하는 것이고, 또한 생명이라고 말씀하심은 죽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하는 분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한데 믿음을 통하여 죽은자는 살아나고,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는 이미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 즉 신적 생명인 영생의 삶에서 단절되어, 인간은 자신의 유한한 내재적 생명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결국 죽음에 걸려 있으며, 그 죽음의 증상인 질병을 끌어안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인들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상태에 있던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죽으면 끝난 것입니다.
만일 죽은자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창조주께서 생명을 공급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주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기를 기뻐하셨고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생명을 공급하십니다. 그 일을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납의 손이기에 믿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 즉 영생이 믿는자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할 때 그것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 메시야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27절에 마르다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아주 정확한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결국 나사로를 살리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죽은자를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어떻게 죽은자들에게 임하는 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것, 하나의 성품, 지혜, 생명, 의로우신, 선하심 등이 피조세계에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 죽은자에게 임하므로 사망이 깨어지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사망가운데 있는 죄인들이 어떻게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어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생명의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으로 가십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41-42절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리고 나서
43-44절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이 장면을 우리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가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서 37장의 마른뼈가 살아나는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에스겔을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말씀을 주시는데 그 말씀이 이것입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그리고 에스겔이 이 말씀을 대언할 때 뼈가 붙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입니다. 그러나 생기는 없었습니다. 그때 다시한번 여호와의 말씀을 주시는데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이에 명령대로 하였더니 생가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서는데 극히 큰 군대러라“
마른뼈가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일어났습니다.
나사로는 어떻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선포하실 때 이루어 졌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이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는 것과 또한 말씀에 반응하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몇 해 전 한글날 MBC 아나운서들이 실험을 했습니다. 밥을 용기에 담고 한쪽에는 좋은 말, 또 한쪽에는 나쁜말을 했습니다. 4주후 결과를 보았더니 좋은 말을 한 밥은 하얀색 곰팡이에 누릉지의 구수한 냄새가 나는 한편, 나쁜 말을 한 밥은 새까만 곰팡이와 역한 냄새를 풍겼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말도 이렇듯 영향력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얻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도 합니다.
요한복음 1장을 1절에서 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태초부터 계신 말씀,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육신으로 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육신으로 거하신 말씀께서 친히 말씀하시자 생명의 역사,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듯 생명의 역사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을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비로소 죽은 자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말씀하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1:40)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영생이 이미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이 우리 가운데 약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곧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면 부활의 몸, 영원히 썩지 않고 부패하지 않는 완전한 부활의 몸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납니다.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길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믿어야 합니다. 때때로 일어나는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길 원하신다면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우리 안에 생겨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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