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53. 하나님의 영광 십자가
요한복음 12:23-33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7.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
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요한복음 강해 53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영광”이라는 단어가 3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23절에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28절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세 번째는 28절에 예수님의 이러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늘에서 이러한 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로 나가시면서 그분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광은 예수님께서 얻으실 영광과 하나님께서 얻으실 영광을 의미합니다.
먼저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영광”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광”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께 적용이 될 때는 하나님의 본질, 속성, 성품 등이 피조세계 가운데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본체적 영광, 발산적 영광, 효과적 영광입니다.
첫 번째, 본체적 영광은 영광 자체, 즉 하나님의 존재 자체로, 하나님 자신이 영광 자체라는 의미로 본체적 영광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발산적 영광인데,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기 때문에 그곳에 나타나는 영광의 효과를 발산적 영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든 계시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느 한 순간에 임재 하셔서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어느 특별한 곳에 특별하게 계시다는 것의 표징입니다. 모세의 떨기나무, 지성소와 성전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를 발산적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 24: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출 40: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왕상 8: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사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세 번째 효과적 영광입니다. 반응적 영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패역의 길로 살아가던 사람이 회심하고 진리의 은혜를 담은 자가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는데 이럴 때를 효과적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뜻에서 사용됩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러한 것을 염두해 두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면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때”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때가 바로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시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십지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건일까요?
그것은 십자가 사건이 예수님의 신적 본질과 성품을 극명하게 나타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의 본체적, 발산적, 효과적 영광의 찬란함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냈습니까? 바로 인류의 죄를 심판하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십자가는 심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심판과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27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앞에서 괴로워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십자가를 통해 받아야할 육신적 고통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고, 침 뱉음을 당하고, 두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고통은 예수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보다 더 심한 고통속에서 죽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묵묵하게 그 길로 걸어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심한 고문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적 고통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심히 괴로워하신 것은 하나님으로 분리되어 심판과 저주를 받아야 하는 자리에 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옯겨 주시옵소서”. 구약적 배경에서 잔이라는 진노의 잔을 의미합니다. 선지서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큰 대접에 담겨져 쏟아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도 마찬가지죠. 7개의 대접이 쏟아지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잔은 하나님의 심판이요 저주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번도 그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져 본 적이 없었던 예수님, 늘 그 사랑 속에서 기쁨이 충만했던 예수님에게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통이 과연 어떤 고통일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그 사랑속에 풍성히 거했던 성자께서 이제 버림받고 심판받게 되는 것, 그 고통을 우리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로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 의로움은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셔서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극히 미워하셔서 반드시 진멸하시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죄를 덮어두거나 대충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의로움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십자가에 나타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얼마나 의로우신가를 보여주신 그 영광의 사건이었습니다.
로마서 3:25-26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두 번째는 십자가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영광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사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든 죄와 저주를 예수 그리스에게 담당시키시고, 그 댓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곳, 그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십자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1서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나타할 그 영광에 모든 것이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후 단 한 순간도 이 생각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27절에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게 이루게 될 하나님의 영광에 온전히 사로잡혀 사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토록 기다리던 그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했던 예수님이 이제 그 때가 되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심령에는 심히 괴로움이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었기에 순종함으로 십자가로 나가신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에게 있어서 간절한 기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28절에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기도는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기도하게 되어있지요.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그 첫 번째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 단지 기도의 모범으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늘 이 기도를 드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셨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응답이 들입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이것은 당시 실제적인 소리로 들렸습니다. 당시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중에는 천둥소리라고 하기도 하고 천사의 소리라고 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어떤 것인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큰 울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응답은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미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제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이 영광받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 가운데 펼쳐 보이셨고, 이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그 영광을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복음 1장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삶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삶의 모습들, 죄인과 함께 하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귀신 들린 자를 해방시키셨던 그 모습들, 죽음의 권세에 짓눌려 결국 죽었던 사랑했던 나사로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자신에게 침 뱉고 비웃는 자들에게 침묵하셨던 예수님, 십자가에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하셨던 그 사랑의 모습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준 사건들이었습니다.
이제 그 주님께서 우리를 그 영광을 길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요12:26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이 말씀은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에 이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길은 바로 썩어져 죽는 한알의 밀알과 같은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박수로 올려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삶으로 순종의 길로 나갈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갈 때만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 아니면 어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겠습니까?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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