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80.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1-28
11.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마리아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의 빈무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무덤 안에 예수님의 시신을 쌓던 세마포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고 머리를 쌓던 수건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했다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은 부활한 주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을 갖게 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 해당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서도 가장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을 대하면서 다시금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본문을 부활의 주님을 만난 마리아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도마를 보여줍니다.
가장 먼저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에게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먼저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빈무덤을 본 베드로와 요한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고는 생각조자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슬픔에 잠겨 다시금 무덤으로 찾아갑니다. 그녀가 구푸려 무덤 안을 보았을 때 그곳에는 흰옷을 입은 두 명의 천사가 있었습니다. 구약에서부터 천사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납니다. 마리아는 당시 이들이 천사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천사가 말합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마리아는 안식일을 준비하기 위해 예수님의 시신을 급하게 장사지냈기 때문에 새로운 장지로 이동하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말을 할 때 뒤에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신 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돌이켜 보았으나 그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단지 무덤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판단하여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몸이 이전의 몸과는 달랐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온전히 거룩하며 썩지 않는 몸이기에 이전의 예수님의 몸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부르시는 목소리를 듣자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깨닫게 됩니다.
요한복음 10:3절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마리아는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엎으려 예수님의 발을 붙잡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 감격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두 번째,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의 장면입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께서 부활하셨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너무 슬픈 나머지 환상을 보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한곳에 모여 숨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이후에 자신들의 목숨 또한 위태로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숨은 것입니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방문들을 다 걸어 잠근 후 자신들의 앞으로의 거처에 대하여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부활한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공간적인 장벽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홀연히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리고는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세 번째, 부활의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가롯유다와 도마를 제외한 10명의 제자들만이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자신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했지만 도마는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자신의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도마가 의심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도 그랬고 제자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6절에 여드레가 지난날입니다. 19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저녁 이후니까 주일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의 날을 기념하여 모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가지 도마는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가 참석한 이 모임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다가가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부활의 주님은 도마가 했던 말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듣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못자국난 손과 창자국난 옆구리를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엎드려 고백합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렇게 세 가지 사건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장면속에서 우리에게 주는 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26절에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와 첫 번째로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것은 단순히 인사말이 아닙니다. 이제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큰 은혜의 선물이 무엇인가?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평강”, “샬롬”이는 것은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찾을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평강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시켰고, 그 결과 악과 죽음의 영향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악합니다. 죽음의 영향력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삶에 가장 확실한 미래가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우리 삶에 가장 극한 두려움은 죽음입니다. 이 죽음의 현실은 단지 죽는 것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썩어지고 쇠해져 죽는 것을 과정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 속에 질병이 있고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문제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잔인한 죄의 영향력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죄로 말미암은 결과가 죽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속에서 평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평강이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은혜가 바로 평강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도 죽음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상징적인 행동이셨습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으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는 존재가 됩니다. 신적 생명을 공급받아 영생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뼈의 환상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골짜기에 수많은 마른 뼈들이 널려 있을 때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겔 37:9-10>
“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부활의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 생기, 영생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얻으신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 우리에게 이미 영생이 주어진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 결과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다. 여전히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마치 빈무덤을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마리아처럼, 슬퍼하며 울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고 그 부활의 생명의 우리에게 있는데, 슬퍼하며 울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주님께서 부활하셨는데 왜 우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불안한 것입니까?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입니까?
우리는 부활의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십자가에게 죽은 예수가 아닙니다. 그분은 부활하사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는 것입니다.
나중에 베드로가 부활의 주님을 믿고 나서 그가 받은 그 은혜와 평강으로 인해 이렇게 편지를 합니다.
벧전 1장입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4절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다 썩어지고 더럽고 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유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이미 와 있습니다.
이 부활의 생명이 우리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뭐라고 말합니까?
벧전 2:9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고 자존감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내 삶을 바라보며 주눅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그렇게 부럽습니까? 잘 나가는 동료, 친구들이 그렇게 부럽습니까?
다 썩어지고 더럽고 쇠하는 것입니다.
부활 생명 가진 자들이 그 정도의 삶을 추구할 것입니까?
돈, 많으면 좋겠죠. 좋은 직장에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인줄 알고 그 속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셔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더 이루고 남겨야 의미 있는 인생이 아닙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그 자리에서 충성하셔야 합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라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여러분에게 평강이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기억하시고 호흡할 때 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