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81.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
요한복음 20:26-31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도마의 신앙고백의 장면입니다.
그리고 나서 요한은 이 글을 기록한 목적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 글을 쓴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30절에 보면, 표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영어로 Sign입니다. 표지판이라는 것입니다. 원어로 ‘세메이온’이라고 합니다. “표적”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이 땅의 성도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내신 것이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실 때 수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은 그중에서 7개의 표적을 선별하여서 우리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2장부터 12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첫 번째 표적은 요한복음 2장에서 가나에서 열린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입니다. 두 번째 표적은 4장의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사건입니다. 세 번째는 5장의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병자를 고친 사건입니다. 네 번째는 6장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광야에 모인 5천명의 사람들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다섯 번째는 6장의 물위를 걸으신 사건입니다. 여섯 번째는 9장의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12장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입니다.
이러한 각각의 표적들은 그 자체로 신비한 사건이지만 이것을 통해서 알리고 싶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도 정작 성경적인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진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많은 분들 가운데 믿음이 무엇이며 자신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가에 대하여 고백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믿음을 믿지 못하는 것들을 억지로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학생 때 이해 안되면 무조건 외우라고 하시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믿음도 그런 것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교회 안에 유행했던 부흥집회는 무조건 “아멘”하여 믿는 신앙을 강조해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건강해 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면 “아멘”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형통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면 더 크게 “아멘”합니다.
마치 믿음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자기 신념이나 자기 확신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가진 바람과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1문 에서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계시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확실한 지식이며 동시에 성령님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가운데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확신한 지식 그리고 굳건한 신뢰입니다. 바른 지식위에 세워진 굳건한 신뢰입니다.
우리가 세운 믿음의 기초가 바른 지식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그 아무리 굳건한 신뢰가 있더라고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과 가족을 파괴시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성도는 잘못된 지식위에 믿음을 세우고 그것을 열정을 다해 추구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입다가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면 자신이 승리하여 돌아올 때 집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먼저 마중나온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는 서원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마중 나오자 옷을 찢고 가슴을 칩니다. 결국 무남독려 딸을 번제로 드리게 됩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가진 열심은 확실한 지식위에 세워진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나안땅의 이방신들을 섬기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가 취한 순종의 행위가 결국 자신과 가족을 파괴시켰으며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아픔을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회심하기 전 바울은 어떠합니까?
그는 십자가에 죽은 예수라는 자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들을 붙잡아 고문하고 죽이는 일을 열심을 다하여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잘 못 되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도 이러한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잘못된 지식이 우리 믿음의 근거가 될 때 내 자신과 가족은 파괴됩니다.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게도 아픔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공부하고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신앙이 건강한 신앙이고 바른 신앙인가를 분별할 때, 그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가? 또는 헌금을 얼마나 하는가? 보다는 – 물론 이런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 가정에서 그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봅니다. 그 사람이 얼마만큼 남편 또는 아내에게 신실한가? 자녀들을 사랑과 인내함으로 대하는가?
(마태복음 7:20-23
20.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왜냐하면 좋은 나무를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며 열매로 나무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열매는 내가 속한 가정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질서입니다. 그의 믿음이 바른 근거위에 세워졌다면 반드시 가정에서부터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만일 집안과 집밖에서 그의 말이나 행동이 다르다면 그 믿음을 신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적 행위 자신을 포장하고 도피하려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말 안듣고 속 썩이는 자녀를 참고 인내하며 사랑하는 것 보다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지긋지긋 하게 변하지 않는 남편을 참아내고 섬기는 것 보다 단기선교 나가는 것이 더 쉽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잘못된 근거위에 세워지면 자꾸만 현실을 도피하여 종교행위로 숨으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뜨레스디아스에 가면 3일 동안 성도들의 섬김을 받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아주고 격려해주고 정말 감동적으로 섬겨주십니다. 그곳에서 섬기시는 목사님의 사모님이 한탄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가족들한테 그렇게 안하면서....”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되는 확신한 지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의 핵심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자들입니다. 믿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면 안됩니다. 우리가 믿은 것은 예수님이지 다른 그 무엇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내 소원이 성취될 것이다. ‘예수 믿고 사업도 잘되고 건강하고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축복받을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가 믿음의 내용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직분을 의미합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메시야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왕이나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들이 직분을 감당하기 시작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부어 성별시켰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왕으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라는 것입니다.
또 제사장으로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시고 그 죄를 깨끗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 돼서 우리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왕, 제사장, 선지자로서의 삼중직을 가지신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고양이의 새끼는 고양이고 말의 새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는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 되신 완전한 하나님임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도마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자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는 제자들 중에서도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였습니다. 그는 믿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믿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말한다고 해서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아 확인했던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배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질문을 던진 제자가 도마입니다. 14장 5절에 보면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니까?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서 그곳으로 가시자고 할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예루살렘 사역을 하실 때 돌아 맞아 죽을 뻔한 일들이 있었기에 그곳으로 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때 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16절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도마의 신앙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확신 속에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집에 계실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은 주변에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지붕으로 올려 지붕을 뜯고 내려 예수님 앞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곳에 있는 서기관들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의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왜냐하며 모든 죄를 하나님앞에서 짓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기관들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죄사함의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 도마가 있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구나. 그렇지 않다면 그는 예수를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번은 빌립이 예수님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안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에 쌓여 말씀을 전하실 때 였습니다.
요10장 “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그러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도마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도마는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죽을 수가 있는가?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살아났다고 하지만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는 죽은 것이고 그것은 결국 자신이 믿음이 실패한 것임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자괴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도마야 네 손을 내밀어 못자국난 내 손에 넣어보고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라 믿는 자가 되라.
도마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 분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그리스도이시구나.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후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다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며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며 그분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인 여러분 각자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될 때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래서 이제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래서 이제 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임을 믿으십니까?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러한 사실에 여러분이 신실할 때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지식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인격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 대상이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모든 목적과 방향 그리고 삶의 선택들을 이 믿음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생의 여정 가운데 일어났던 일들과 앞으로 이뤄질 일들 또한 이러한 믿음으로 통하여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믿음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입니다.
31절입니다. “또 너희로 믿고 이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히려 함이니라”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존재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영향력 아래 놓였습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것처럼, 썩고 더럽고 쇄하는 존재입니다. 뿌리 뽑힌 나무처럼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비참함이 아니라 영생으로 들어가는 절차일 뿐입니다.
그런데 생명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생명은 아닙니다. 어떤 생명은 청년의 기상을 가진 생명이 있고 어떤 생명은 중환자실에서 가느다란 호흡을 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가졌지만 다 똑 같은 생명이 아닙니다. 어떤 성도들은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어떤 성도는 그렇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동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풍성한 생명을 어떻게 누립니까?
믿음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믿음이 신실하고 견고해 질수록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동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를 축원 드립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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