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6.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016.4.24.
요한복음 1:29-34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강해 6번째 시간으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례요한의 증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왜 세례요한의 증언이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증인을 내세울 때 아무래도 믿을 만한 사람,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증언이 더 확실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세례요한은 상당히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선지자로서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증언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의 증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가 세례요한의 증언을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요한이 세례요한의 증언을 다루면서 삼일동안의 증언으로 구분하여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본문 29절에 보면 “이튼날”이라고 시작하고 있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내용은 세례요한의 첫째 날의 증언입니다.
세례요한의 첫 번째 증언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미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단지 그분을 소개하는 ‘소리’일 뿐이다.”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26절에 보시면
“너의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그렇죠. 그분이 이미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디 계셨는가? 하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후에 세례요한에게로 오고 계셨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세례요한은 예수께서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그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고 하늘로서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제가 지난 주에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세례후에 그리스도임을 알았다고 했는데 마태복음 3장을 보니까 세례전에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 오시나이까?(마3:14)라고 한 것을 보니까 이미 그리스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지난주 내용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세례 후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그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러 광야고 가셨고, 세례요한은 요한강에서 계속해서 회개를 선포하며 세례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요단 강가입니다. 이곳에 이스라엘 땅 각 처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움집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요한에게로 걸어 나오십니다. 그러자 요한이 이렇게 외칩니다.
29절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에게 향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소리’로서 세례요한의 역할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그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사역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욱 잘 알게 되고 그 분을 사랑하게 될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자, 이렇게 세례요한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을 향하게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첫째날이 증언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이 이미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날은 그분이 바로 여기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분을 보십시오”
그때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영화나 그림에게 보는 것처럼 머리가 반곱슬로 길게 내려오고 훤칠한 키에 인자한 얼굴, 하얀피부에 환하게 웃는 모습, 그 뒤로는 후광이 환하게 비추고...그러했을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모습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이 나를 보았다고 하자, 그들이 “네가 나이가 오십 세도 못 되어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거칠게 대항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예수님의 모습이 50살 정도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서른살이었던 예수님을 그렇게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살아온 환경이 얼마나 힘들고 각박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 눈에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던”(이사야53:2)것입니다.
그런 분을 향하여 세례요한이 외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분을 보십시오.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두 번째 날 요한의 두 번째 증언이 이것인 것입니다.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이 요한의 외침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먼저 “세상 죄를 지고 가는”이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말 표현에는 죄를 등에 짊어 진 것 같은 모습이 연상되는데 그것이 아니고, 세상 죄를 없애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세상 죄를 없애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세상”이라는 단어는 이미 설명한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조화롭게 창조한 세상이었지만 인간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혼동과 어둠가운데 있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서도 기독교의 핵심진리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죄라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려 하는 것, 그래서 모든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하죠. 이러한 우리의 죄악된 상태로부터 온갖 죄악들이 발행합니다. 살인, 도둑질, 폭력과 같은 행동으로 통해 나타는 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와 미움 온갖 혐오스러운 생각들에 이르기까지 이 것을 자범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죄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죄를 없앨 수 있을까요?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마도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부끄러웠던 과거의 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죄들을 우리가 과연 지울 수 있을까요?
신부님에게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면 사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죄를 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죄의 대가를 치루면 없어질까요? 그렇다고 죄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가롯유다가 예수를 팔고나서 자결합니다. 그렇다고 그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가 우리의 죄를 없애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나타내면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어린양에 대한 상징적 의미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어린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창세기 22장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안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죠. 그래서 이삭은 자신을 태울 번제나무를 등에 지고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릅니다. 그때 이삭을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하죠.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이 대답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리고 아브라함은 번제단을 쌓고 그 위에 이삭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칼로 잡으려 할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나”
그리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까 숫양 한 마리가 수풀에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삭을 내린 번제단 위에 그 양을 올리고 번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죠. 그 뜻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문자가 없었으니까 구전으로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모리아산을 보면서 “여호와이레”야 했던 것입니다. 자녀들과 그곳을 지날 때면 이곳이 여호와이레란다 하면서 그 사건을 후손들에게 계속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모세가 이 사건을 창세기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때가 66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을때는 바로 그 사건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여호와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될 그 어린양!
두 번째로 그들은 유월절 어린양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명하십니다. 유월이라는 것은 영어로 “Lord’s Pass Over” “하나님께서 넘어 가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이 장자들이 다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불에 구워서 쓴 나물과 함께 먹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밤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을 두루 다니면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막론하고 애굽에 처음 난 것을 다 죽이십니다. 그때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 사람들은 살게 되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 피를 보고 넘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가서도 유월절을 해마다 지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유월절을 지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유월절은 해방의 날을 기념하는 축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린양 하면, 유월절에 먹는 어린양, 그 어린양은 애굽의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될 때,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어 죽음 곧 심판을 당하지 않고 그분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것으로서의 그러한 이미지가 그들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유월절을 축제로서 지냈던 것이고 그때 어린양의 고기굽는 향으로 온 이스라엘은 가득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어린양이라고 할 때 그들은 속죄제사로서 죽이는 어린양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속죄제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죄인들과 함께 거할 수 없으므로 죄를 사하는 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레위기 4장 32-35절을 보면, 평민가운데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을 어겨 죄를 범했을 때 사함을 받는 제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32.그가 만일 어린 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33.그 속죄제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제물로 잡을 것이요
34.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전부 제단 밑에 쏟고
35.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 양의 기름을 떼낸 것 같이 떼내어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가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네 번째로 어린양이라고 했을 때 그들은 이사야 53장의 이사야의 예언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는 수난당하는 메시아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 버림을 받고, 간고를 많이 겪고, 질고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멸시를 당하고 징벌을 받는 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고난당하는 메시야,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하는 어린양,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그 어린양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어린양의 제사 때문에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을 때, 모리아산의 사건과, 유월절 어린양, 그리고 속죄제물로서의 어린양, 그리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의 이미지들이 그들의 머릿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구약의 네 가지 성격의 어린양을 다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할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도요한에게 있어서 만큼은 앞에서 말한 네가지의 어린양의 의미가 모두 예수님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되어 그 사실을 외친것입니다.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3년 동안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이 죽을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언덕을 오릅니다. 그 곳은 바로 이삭이 자신이 죽을 번제단을 지고 올랐던 그 모리아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말했던 하나님이 자신을 위채 친히 준비하신 어린양이셨던 것입니다.
그날은 마침 유월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이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어린양을 잡아 구워먹으며 기쁨의 잔치를 하는 그 날이었습니다. 바로 그 날 어떤 일이 생깁니까?
요한복음 19장을 보겠습니다.
1.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
14절입니다.
14.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여러분 이 장면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유월절의 고기향기로 가득한 명절의 분위기에서 한 사람이 죽음을 위해 준비되어지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유월절에 먹을 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죄인들의 손에 죽기위해 한 사람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 개의 그림을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한쪽에서는 어린양을 잡아 해방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앞으로 오실 참 해방자 되신 유월절 어린양 예수를 예표하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참되신 유월절 어린양을 자신들이 손으로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복음 1: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구약에서부터 그들이 행했던 모든 의식과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이 유월절에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의 어린양라고 할 때,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어린양의 의미를 모두 성취하는 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18-20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없애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것입니다.
죄를 없애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기에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준비하신 어린양이 결국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했던 그 산, 즉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그곳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은 유월절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가 예언했던 우리 모든 무리의 죄악을 담당한 어린양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 세례요한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증언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요한복음 3장 16-19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을 구궐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영생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죄를 없앨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어린양밖에는 없는데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 죄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날 잊고 싶은 정말 지우고 싶은 죄의 기억들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없애버리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부분에 있어서 자유해도 됩니다. 더 이상 과거의 죄에 얽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홍같은 죄를 흰눈처럼 지윈 것입니다. 그일을 바로 세상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을 통하여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입니다.
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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