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05-20 22:26

요한복음 강해 9.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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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9.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인자

 

요한복음 1:47-51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지난주에 이어서 예수님과 나다나엘의 만남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부르심의 독특성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장의 말씀처럼 약한 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어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와서 보라”는 부르심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고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믿음과 순종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실적 삶에서 경험되어야 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나다나엘의 대화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향하여 하신 말씀과 이에 반응하여 그가 예수님께 고백한 내용입니다. 이 장면 속에서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리고 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가서 메시야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나사렛에 사는 요셉의 아들 예수라고 라고 말합니다.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흔했기 때문에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이라는 동네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그때 빌립이 “와서 보라”하고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옵니다.


그리고 47절에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십니다.

이 문장을 잘 보시면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는 것과 그에게 말한 것을 구분하여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독자인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오고 있는 나다나엘을 주목하고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게 합니다. 그냥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만나 이르시되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지 않고,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그에게 이르시되”가 아니라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마치 예수님께서 손으로 그를 꼭 찝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야’라고 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그랬더니 나다나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48절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원문을 직역하며 “어디서부터 나를 알았습니까?” 즉 언제 어디서 나를 본적이 있습니까?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주목하셨고 그에게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할 때, 나다나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분명히 그는 구약의 한 인물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간사’하면 구약의 인물 중에 누가 떠오릅니까? 야곱입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지 않습니까? 야곱의 별명이 속이는 자입니다. 그가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직분을 취합니다. 그가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할 때 벧엘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말씀이 오늘 본문의 배경이기 때문에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28:11-17
11.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간사한 자였던 야곱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창세기 12장의 약속을 하십니다. 창세기 12장의 약속 기억하시죠.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큰 복을 얻을 것이라. 바로 동일한 약속을 야곱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의 약속을 하십니다. “네가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창세기 32장에 야곱이 이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때의 장면을 보시겠습니다.

24절입니다.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여기서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이 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며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 성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간사한 자가 아니라 참다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쓰임받는 인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렇게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과정을 보면 어떠합니까? 그의 원래의 모습은 간사한 자입니다. 속이는 자입니다. 남을 속여서 자신의 삶의 안정과 행복을 확보하려고 하는 바로 죄인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것입니다. 그러한 자를 마침내 하나님은 연단하시고 훈련하사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꾸어가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모습과 같습니다. 거짓말쟁이였던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에게 참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 그리고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은, 네가 바로 야곱이 아닌 - 즉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비겁했던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어 하나님이 백성이 되었고, 야곱에 이스라엘에 된 것처럼, 너 또한 참다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어 변화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고 변화시킨 하나님께서 바로 너를 지금 부르고 있고 너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장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인가? 라는 것과도 상통합니다.
요한복음 1:12-13절에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나다나엘로 대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다나엘과의 만남을 통해 구약의 야곱, 그리고 아브라함까지 참다운 하나님의 백서이 누구인가? 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참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어떠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어 가십니다.

아브람을 불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만들어 가신 하나님, 야곱을 불러 이스라엘로 만들어가신 하나님, 그분께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너를 베드로라고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반석과 같은 존재로 만드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그들은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성경은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 분이신가를 보여줍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하여 흘러갑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이지만 그는 애굽에 있을 때에 살인했던 자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지만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였고 그의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어 죽게 한 사람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허물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약속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로 바꾸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과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이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구약적 배경속에서 메시야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구약의 말씀 특히 나단의 신탁이라고 알려져 있는 삼하 7:12-16절이 말씀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너의 생애가 다하면 너의 후손을 다음 왕위에 앉히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을 짓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대신에 그의 백성을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이 왕위에 오를 때 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가령 시편2편을 보면 이스라엘 왕의 등극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2:6-7
6.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은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을 합법적으로 다스리는 분이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들이 성군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남북조 왕국으로 갈리고 나중에는 이방민족의 오랜 지배와 바벨론 포로의 과정속에서 이것이 메시야적인 예언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종말에 다윗의 씨 다윗의 가지를 하나님께서 일으켜서 자기 아들로 선언하고 다윗의 왕좌에 앉혀 성군으로서 통치를 하고 이방민족을 정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태평성대를 가져오리라는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은 예수가 나단의 신탁을 성취할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바로 이러한 메시야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의 압제가운데 있던 유대인들이 이제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가 오실 것이고 그가 하나님의 합법적인 왕이 되어 우리를 다스리고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다윗 시대의 태평성대를 이룰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야사상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로마 압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정치적 운동을 하거나, 또한 그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오해를 받은 적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 메시야라고 따른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오병이어 사건을 보면 예수님께서 빈들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왕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가셨습니다.


요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지 않습니까? 당시 그들이 예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기대했던 그러한 메시야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온 인류를 구원한 진정한 메시야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역 가운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당당하게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결국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5: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10: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2천년전에 유대땅에 사셨던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이것은 CS루이스의 말처럼, 그가 과대망상증 환자던가 아니면 진짜 메시야인 것입니다.

결국 나다나엘의 이러한 고백을 통해 참 이스라엘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수를 향한 고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구인가? 그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예수에게서 성취된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사야 9:6-7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예수님께서는 또한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요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리도다 예수의 무죄를 알고 놓아주려 하자 유대인들이 외쳤던 말입니다.
요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왕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나라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합법적 통치자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만일 우리가 그 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반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임을 믿게 되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표현한 부분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본문은 야곱의 벧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하십니다. 인자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호칭하실 때 늘 쓰던 단어였습니다. 공관복음에만 80회 이상 등장합니다. 이것은 다니엘 7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적존재가 있는데 그가 사람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 왕으로서 모든 영권세와 영광을 영원토록 소유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모양을 한 신적존재가 바로 자신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14-15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인자가 되십니다. 이것을 믿을 때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2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