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16.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 예수/2016.7.3
요한복음 3:31-36
31.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강해 16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을 끝으로 요한복음 3장이 마무리가 됩니다. 니도데모와의 대화로 시작된 3장은 성경의 주옥같은 진리들을 우리 가운데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구원은 인간의 어떠한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것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했지요. 즉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말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곧 예수가 십자가에게 죽으신 사건, 그것을 예수님은 인자가 들리는 것으로 설명하셨는데, 그것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어지며 그것을 우리가 믿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평행선 같은 논리가, 비록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 조화되지는 않지만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우리 구원의 확실함과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또한 우리의 신앙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이끌어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장면은 세례요한에게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의 모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늘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지요. 그것은 환경이나 사람들은 언제나 유동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으신 예수님께 우리의 중심을 둘 때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기쁨이 주어지는데 그 기쁨은 우리의 중심되신 예수가 증거 되어지고 그분이 높임을 받을 때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다(요3:29)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즉 예수중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자신의 흥함을 통해 예수의 흥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쇠함 즉 자기부인과 자기포기 낮아짐과 겸손함을 통해 예수의 흥함을 가져온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례요한은 이제 왜 우리가 예수중심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왜 예수가 흥해야 하고 우리는 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을 믿고 그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마땅한 것이다 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가운데 임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에 대하여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중심으로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보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
31절에 보면,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이라고 말하고 있고, 34절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이라고 말합니다. 위로부터 온다는 것과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2천 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오신 예수라는 분은 누구인가?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늘로부터 왔다 라고도 표현합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말년 병장 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미사회라는 것이 참 굉장하죠. 우리가 보기에는 작은 곤충에 불과하지만 개미는 인간사회가 많이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미 사회는 개체끼리 분업하고 의사소통하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줄 안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인간이 그 개미사회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과 함께 거하면서 소통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 개미에게 인간사회에 대하여 알려주기 원한다고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은 반드시 개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미는 결코 인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이 개미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개미가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개미들에게 인간 사회에 대하여 알려줄 때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이룬 엄청난 문명에 대하여 말해준다고 해도 개미는 자신들의 이해수준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죠. 그런데 창조주께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끔 하기위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 좀 안다고 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의 먼지정도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주의 크기와 넓이를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속에 사는 지구라는 곳은 먼지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무한 광대한 우주를 창조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사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단지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분이 알려주신 것들을 통하여 우리의 인식수준에서 이해할 뿐인 것입니다.
2천년에 팔레스타인 땅에 오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바르고 분명하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 외에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 땅의 언어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만 해도 하나님 나라를 7개의 비유로 설명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하나님 나라는 누룩과 같다. 하나님 나라는 숨겨진 보화와 같다.”
니고데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당대의 최고의 종교적 지식인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대하여는 이 땅의 언어로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이라는 설명이었고, 바람의 비유를 통하여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와 친족관계이기에 그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가까운 사람일수록 존경하지 않는 법입니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가족들에게는 외면 받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예수는 그의 형제들뿐만 아니라,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이종사촌인 세례요한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 탄생부터 성장과정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사야 7장의 말씀을 합니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러한 구약의 말씀들이 예수에게서 성취되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요한은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을 통해서 자신이 인간이 되어 오실 하나님의 길을 예배하는 선지자로서 살아가야 할 것임을 들었습니다. 천사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며 또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 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 때에 하늘로부터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똑똑히 들었을 때,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에서부터 오리라고 했던 그 메시야,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 이제 오셨구나를 알았던 것입니다.
만물위에 계신 분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예수가 만물위에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31절입니다. “이는 만물위에 계시고....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만물위에 계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초월하여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셨고, 창조주셨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능자이시고(그러니까 인간도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한 분이시며, 어디에나 계실 수 있는 무소부재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위에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프롤로그인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기에 예수는 만물위에 계신 것입니다.
그 분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하나님이 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셨는지 그리고 자신이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32절에 보시면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직접 경험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정확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실 때, “아멘 아멘, 아노센으로 나지 아니하면”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 쓰이는 단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이 땅의 언어로 말씀하시면서 “아멘 아멘”으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실 때 예수님이 하고 싶은 말을 스스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만 움직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말씀하신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는 모든 과정을 보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34절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만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요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8: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요8: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요8: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고, 하나님의 뜻만을 말했고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시고 선포하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그것은 예수님이 신적 권위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들이 예수를 믿게끔 하기 위하여 간청하러 오신 것도 아닙니다. 간혹 우리가 요한계시록 3:20절 말씀을 통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것을 마치 예수님이 우리가 마음 문을 열도록 간청하고 계시는 모습을 그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담대하고도 당당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두드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신적인 권능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보내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그러나 곧 떠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성령님이 한량없이 주어졌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 땅에서 스스로 사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고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었고 또한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사역이었던 것입니다.
두 가지의 상반된 반응
자, 그런데 그 예수님을 오심이 우리 가운데 두 가지의 상반된 반응이 일으켰습니다. 대부분 예수를 믿지 않고 멸시했지만 어떠한 무리들 가운데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믿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인가?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입니다(요1:13). 이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그래서 본문 32-33절을 보면
“32.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그의 증언을 받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되다라는 단어(아레떼스)는 진리(아레떼이아)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인쳤다’는 것은 ‘확증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진리이심을 확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되시다 그 분이 진리이시다 라는 것을 확증하고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놀랍고 신비스런 일입니다. 어떻게 죄인들 가운데 참 진리를 발견한 자들이 생겼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예수를 믿고 우리의 고백이 하나님이 참되시다 그분만이 진리이시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결국 두 개의 상반된 반응을 가져왔습니다.
그의 증언을 받지 않는 자들과 그 증언을 받고 하나님을 참되시다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결과는 무엇인가?
36절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 즉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아들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아니 이미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들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가 구원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들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대조가 아니라 아들을 믿는 것과 순종하지 않는 것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즉 믿음에 대하여 한 차원 진전된 단어를 사용합니다. 믿지 않는 것은 곧 순종하지 않는 것이며 믿는 것은 곧 순종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살후1:8-9
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여기 보면 믿음의 차원을 순종과 복종의 차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만일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 자들은 결국 믿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열매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또는 아닌가를 판가름 하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를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가? 아니면 믿지 않고 내 맘대로 살아가는가? 내 맘대로 살면서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거나 잘못된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참된 순종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께 우리의 마땅한 반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배이고 순종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앞에 아멘으로 순종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성도인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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