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19. 물동이를 버리고/2016.7.24
요하복음 4:27-42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요한복음 강해 19번째 시간입니다. “참된 기쁨과 만족은 어디로부터 오는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27-30절로 먹을 것을 사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오면서 여인이 퇴장합니다. 퇴장해서 어디로 가는가 하면 동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만난 예수를 전하게 됩니다. 두 번째 부분은 31-38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먹을 것을 사가지고 돌아온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시게 됩니다. 당연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몹시 시장했을 것을 알고 음식을 드시라고 권하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 양식이 무엇인지 말씀을 하십니다. 세 번째 부분은 39-42절로 여인이 사마리아 동네로 가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예수님을 증거한 결과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본문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서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 보여준 모습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인의 보여준 모습은 물동이를 버리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의 주제는 희어져 밭을 보라 추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추수 곧 복음증거의 열매를 말하는데 이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물동이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삶의 허무와 공허함 속에서 살았던 여인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여섯 명의 남자를 바꾸어가며 동거하며 살아보았지만 내면의 결핍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정오시간에 야곱의 우물을 찾았던 그녀는 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영적인 목마름 가운데 있었던 것이죠. 그에게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고 하셨고, 그것을 주시기 위하여 그녀가 얼마만큼 영적으로 파산한 자인지를 들추어 내셨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숨기고 싶었던 감추어진 죄의 모습 그 누추함과 추악함을 폭로해 내시죠.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나타내십니다.
25,26절에 보시면,
25.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여기서 “내가 그라”라는 말은 원문에 “에고 에이미”입니다. 이 말은 ‘나는 나다’ 라는 뜻인데,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입니다. 내가 곧 구약에서 모세에게 나타났던 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녀의 첫 번째 행동을 보시기 바랍니다. 28절입니다.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녀에게 있어서 물동이는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렸다는 것은 그녀의 영적 갈급함이 채워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그것을 이미 맛본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 예수님께서 생수를 주겠다고 하니까 마시는 물을 생각했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물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그녀와 생수에 대하여 그리고 예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이 꽉 채워진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의 결핍된 마음을 채우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동네로 달려갑니다. 그동안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인해 사람들을 피해 다녔던 여인이 이제는 사람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를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여인이 이렇게 변화되었을까요?
그녀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본 것도 아닙니다. 또는 그에게 어떤 설교를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변화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 앞에 서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메시아이시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이 더럽고 추악한 죄인을 찾아오셨다는 것, 그 은혜가 그녀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잘 변화되지 않습니다. 지독하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좋은 가르침을 아무리 받아도 잘 안변합니다. 마음에 감동이 되고 정서적인 설득은 될지는 모르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런 사람이 은혜를 받게 되면 변화됩니다. 지독하게 변화되지 않던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면 변화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아닙니까?
그래서 1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하나님의 선물은 생수이고 생수는 곧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잘 알아야 할 것은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그 중에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예수님 안에 죄의 용서함과 치유와 회복 그리고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은혜는 죄의 용서함도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큰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화)통계를 보니까 2014년에, 요보호아동, 그러니까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던가 아니면 부모의 이혼, 사망, 질병 또는 학대 등으로 보호조치가 필요한 아이가 6014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보호시설로 들어간 아이가 2900명, 가정에 위탁된 아이들이 1300명, 입양된 아이는 393명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아이들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최고시설의 보호소일까요? 아니면 매주 마다 보내오는 엄청난 선물일까요? 착하고 좋은 선생님들이 매일 돌아가며 이들을 돌보아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좋은 선생님 100명보다 단 한 명의 엄마가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분, 그리고 가장 큰 선물,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외의 것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 자꾸만 세상에 보여 지는 것들, 성공, 재물, 외모 이러한 것에 눈이 멀어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다 가졌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100-1=0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의지하고 소망했던 것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나의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그 분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더럽고 추악한 죄악 가운데 살아갈 때에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 은혜가 무엇인지 알고 받은 자들이라면, 그분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여인처럼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자리자리에서 증거하며 높여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수가성 여인과의 만남의 장면을 통해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정말 중요하고 꼭 되어져야 하는 일이라고 할 때 그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때가 있습니다. 본문에 꼭 그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4:32-34
32.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굉장히 주리시고 목마르셨을 텐데 제자들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배부르신 것이 아니라, 수가성 여인과의 만남 이후에 굉장히 만족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무엇을 잡수셨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식이라는 것은 살아갈 힘이며 에너지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살아갈 힘이며 에너지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이룰 때 만족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있으실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며 행복이었습니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만큼 가장 큰 만족함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면서 마지막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 이루었다”(요19:30)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만족이라는 것이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채워지면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을 얻었다고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의 만족과 행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때 찾아옵니다.
그래서 소요리문답 제1문을 보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영화롭게 되고 나의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살면 만족할 것 같은데 오히려 점점 더 공허해지고 허무해 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분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살아갈 때 우리 삶이 행복해지고 풍성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어려운 일들을 허락하십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사업에 큰 손해를 보거나 실패하기도 하고 내가 의지했던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들을 통해 우리 삶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세요. 네가 그렇게 의지하고 붙잡으려고 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독히도 바뀌지 않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바꾸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8:2-6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2절에 시험하셨다고 하시고, 5절에 징계하셨다고 하시죠.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또 징계하실 때도 있어요. 그때 우리가 깨닫습니다. 우리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구나. 그리고 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4장 전체에서 특히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39절에 보시면,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사용하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구원은 우리가 노력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하시는 사역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이 일에 동참시키십니다. 우리의 어눌한 입술을 사용하시어 증거하게 하시고 그 증거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왜 이렇게 하실까?
36절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뿌리는 자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복음을 전했던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 거두는 자들은 그 이후에 복음을 증거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일을 했고 이제는 우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뿌린 씨앗들의 열매를 우리가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중 하나가 우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추수하는 자가 되어 열매를 거두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추수의 기쁨을 함께 맛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로도 찬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다 하시고 그 열매를 따는 일에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삶에 가장 큰 기쁨과 만족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찾아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회개하여 돌아올 때 그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거두는 사역에 동참할 때 우리 삶은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해 질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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