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17-05-11 17:12

성경적 가정 (1)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joywoori
댓글 0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이 땅에서 천국과 가장 비슷한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정에서 천국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무조건적인 용서, 댓가 없는 섬김... 이러한 천국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만일 가정에서 폭력과 욕설, 외도, 무관심, 미움, 이러한 사단적인 것들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그곳은 지옥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천국을 맛보고,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지옥을 체험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행복한 교회 모든 교우들 가정이 천국을 누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가정에서부터 천국을 맛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를 받고, 경영되어질 때 그렇게 됩니다.
그것은 가정이라는 제도를 시작하시고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알고 순종하면 우리 가정가운데 천국의 풍성한 행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네 가지 원리로 구분하여 보았습니다.

 

첫째로,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원리입니다.
1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남성이 우월하고 여성이 하등하기에 여성은 남편의 돕는 존재로서 존재한다”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한 아내는 남편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에는 질서가 있다는 것이고, 그 질서 가운데 남편이 머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2-24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하면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가정에 머리가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적인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부부관계는 결코 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할 때 서약한 것처럼 죽음이 갈라놓을때까지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균수명을 80살 정도로 한다면, 결혼하여 50년 이상을 부부로 사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갈등과 의견충돌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속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 뿐입니다.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던가, 아니면 둘 중 한 사람의 의견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화로서 의견을 일치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럴때, 하나님의 뜻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가정의 질서에 대한 이해속에서 오늘 말씀을 볼 때 그 의미가 명확하게 살아납니다. 아내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는 것은, 남편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결정권은 남편에게 있으나, 그 모든 결정과정에서 공정하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아내들은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더 현명하고 모든 면에 있어서 뛰어날 때, 아내가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과 가까운 친구가정에서 아내가 결정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첫 번째 원리는 남편이 가정의 머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떠남의 원리입니다.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하와 당시에 부모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가정이라는 것은 부모를 떠나야 된다는 가르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성 또는 여성과 새로운 가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가정을 시작하는 남성과 여성은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를 떠나 보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떠난 다는 것은, 경제적 독립뿐만 아니라, 정서적 독립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의 독립을 말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떠나 보낸다는 것은 이제는 새로운 가정을 이끌어가는 주체자들로 인정하고, 자녀의 가정을 독립된 가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적인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무척 중요한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여기 청년들이 계신데...
만일 여러분들이 결혼을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부모로 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의미합니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존했던 부모와의 관계가 새롭게 재정립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부모의 가정과 나의 가정이 국가라는 제도권 안에서 독립된 가정과 가정으로 존속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결혼이라는 것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하여도, 부모로부터 독립할만한 인격과 의지 그리고 경제적 자립심과 토대가 형성되었을 때, 결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이러한 것이 형성되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습니다. 한다고 하여도 불행한 결혼생활을 할 뿐입니다.

이렇게,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게 되면 이젠 더 이상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서는 안됩니다. 또한 아무리 어렵고 힘든일이 있어도, 부모에게 의존하면 안됩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들이 결혼하였는데 어려울 때 찾아온다면 이렇게 말하셔야 합니다.

“이제 너는 한 가정의 아버지요, 남편이 되었으니, 이러한 어려움은 네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네가 지거라, 나는 뒤에서 기도하겠다” 이러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들의 부모님께서 혹시 네 가정에 어려움이 있니라고 물으신다면
“괜찮습니다.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 조금 어렵지만,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때때로 가정에 불행이 찾아오는 이유중에 하나가
부모가 자녀의 가정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데서 옵니다.
또한 자녀가 부모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의존할 때도 갈등이 유발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녀에 있어서 부모에 대한 책임과 아내에 대한 남편의 도리. 또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도리가 충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의 가정이 먼저냐, 나의 가정이 먼저냐 할 때 그것은 떠남의 원리에 따라 나의 가정이 우선됩니다. 저는 지금 가정의 질서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중요한 성경의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바로 결혼식 아닙니까?
결혼식을 기점으로 부모는 자녀를 떠나보내고, 자녀는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예화)결혼식
부모에게 인사하는 시간....

우리 모두는 언젠가 우리의 자녀들이 떠날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노후에 홀로 내 인생을 감당해야 겠다 지금부터 마음을 다잡스시고, 또한 경제적으로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어르신들, 자식들에게 재산 다 주지 마세요. 살아계실 때 잘 쓰세요. 어려운 이웃들 위해 사용하시고, 선교헌금으로 드리시고,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굶주신 아이들에게 쓰시고....
저희 아버지 돌아가실 때 그러시더라고요
“물려줄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그런것 같아요. 그러데 뭐가 미안합니까?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신앙의 유산만 남겨주세요.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재산 남겨봐야 자식들 싸울 뿐입니다. 

다 헌신하고 주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돈 없으면 무시하는 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지 않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는 떠남의 원리입니다.
이것을 알 고 인정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행복이 우리 가정에 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연합의 원리입니다.
24절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남성과 여성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바이올린과 활이 하나이듯이, 열쇄와 자물쇄가 하나이듯이 독립된 두 인격체가 하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혼을 통해 비로서 온전한 인격체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물론 결혼하지 않으면 온전한 인격체가 아닌가? 그런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혼인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단지 성적인 차원에서만 하나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 완전히 결합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초두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한번 결혼을 하면 평생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9장에서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우리 생각에는 내 남편 또는 아내와 결혼한 것이 나의 의지와 결정인 것 같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다면 오늘날처럼 이혼이 그렇게 빈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하나됨의 원리가 위협받고 이혼이 빈번한 이유중에 하나는, 사랑에 대한 오해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드라마나 영화 또는 소설속에 나오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오해합니다. 첫눈에 반하고, 마음이 가는대로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는 느낌과 설레임과 환희를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감정적인 상태는 우리에게 예술적 감정을 일깨우기도 하고, 용감해 지게도 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도 합니다.

 

<최근에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영화순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 영화의 포스터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 사랑이었다”
그 글귀를 보니까, 저도 옛날생각이 나더라구요.
이 영화는 첫사랑의 설레임을 자극하게 하는것은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첫사랑때의 그 설레였던 느낌이 나의 삶에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사라지면 이내 사랑이 식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그러한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지에 가깝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말하는 것 처럼,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지 않고....
모두가 감정이 아닌, 의지적 행동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고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감정으로 시작됩니다. 마치 자동차의 시동을 걸듯,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은 의지로 유지되고 마침내 희생과 섬김으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결혼식때 하였던 서약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아내로 맞이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남편된 책임을 다하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부유할 때나 궁핍할 때나 늘 사랑하고 도와주며 귀중히 여기고 보호하며 오직 이 사람으로만을 남편, 또는 아내로 삼아 평생토록 오늘의 약속을 지키기로 서약합니까?" 
우리 모두는 이에 대해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증표로 반지를 교환하게 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이 언약안에 자신을 메이는 것입니다.


기억나십니까?

우리가 결혼을 통해 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살아가다가도 우리의 가정을 흔드는 일들이 때때로 다가옵니다. 기쁠때도 있지만, 슬플때도 있고, 건강할때도 있지만, 병들었을때도 있고, 부유할때도 있지만, 궁핍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서약한 것 처럼...늘 사랑하고 도와주며 귀중히 여기고 보호하며 오직 이 사람만을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그 약속을 의지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모습인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있어서 의지적으로 노력하며, 희생과 섬김으로 하나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누구같이 하라고 하십니까?


자기 자신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내 자신을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내 자신을 바라볼 때, 때때로 실망스럽고 부족함이 많습니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때로는 잘못된 죄악을 행하기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런 내 자신을 용납하고, 이해하고, 살아갑니다.
마치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관대하듯 그렇게 아내에게도 관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지적인 노력과 희생과 섬김이 있을 때, 그 가정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행복이 충만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죄없음의 원리입니다.
2장 25절을 보면
“아담과 그의 아내 두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니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에 한번 강해를 한적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후 첫 번째 했던 행동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몸을 가린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몸을 가리웠지만, 진정 감추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죄악된 본성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범죄했을 때 점점 감추고 싶어가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편에게 또는 아내에게 비밀이 많아질 때 그 가정은 온전해 질 수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쌓여져 갑니다. 이러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아내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고, 남편에 대한 신의를 저버릴때....그럼으로 말미암아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면, 행복했던 가정이 순식간에 불행으로 바뀝니다.  
천국을 맛보았던 가정이 지옥으로 변합니다.
그만큼 부부의 신의를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두 사람이 벌거벗은 순간에도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죄없음의 원리입니다.

추가로 한가지 덧붙인다면, 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때때로 심한 부부싸움후에 각방을 쓰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벗어가는 것입니다.
싸우고 난 후 아무리 미워도 분방해서는 안됩니다.
분방할 수 있는 경우는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동안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2장의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시는 모습 속에서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네가지 원리로서 살펴보았습니다.

바라기는 여기에 모이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이러한 원리에 순종하시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세상에 가정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보다 중요한 존재는 없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하나님이 짝이어 주신 내 남편 아내를 더욱 소중히 여시기고. 더 큰 사랑과 섬김과 배려를 통해 우리의 가정을 천국으로 만드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