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에베소서 6:1-4
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간혹 가다 기독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을 보고, 부모의 은혜와 공덕을 모르는 것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가정을 등한시 하고 교회 일에만 빠져있는 잘못된 신앙인들을 보면서 기독교가 마치 가정이나, 부모나,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에도 <마가복음 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여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 때문에 부모와 처자식을 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온전해 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가정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소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그 어떤 조직보다 가정이 가장 소중함을 말합니다. 또한 그 가정의 기초단위인 부부관계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서의 결론부분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들을 기록할 때 대부분 전반부에 신학적인 내용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라는 실천적인 내용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전반부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성령충만함을 받은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5장 17-18절을 보면,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성령충만한 삶이 무엇인가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성령충만이란 어떤 신비적인 체험이나, 어떤 열정적인 상태를 생각하는데 바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성령충만한 삶이 실제적인 삶의 영역, 특히 인간관계에서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5장 22-33절부터 보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부터 성령충만한 삶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말하고 있고,
이제 6장 1-4절까지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성령충만한 삶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주시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그러면서 다시한번 반복해서 말합니다.
2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공경"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길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듯이 부모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질서입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거나 순종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는 부모를 사랑하고 섬깁니다. 그리고 자녀가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진리를 말해줍니다.
첫째,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 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는 자에게 대하여 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레위기 20:9)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5)
출애굽기 21: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어찌 보면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는 말을 하면 죽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에게 주신 이 율법이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율법에 따라 죽어야 할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성경은 부모에게 대한 순종과 섬김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 을 했기 때문에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용서하심, 그리고 헌신과 은혜...
이러한 것들을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서 알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자신을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피조물이 그 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에 "세상에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냐고 하십니다."
이렇게 세상의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를 비교하는 것은, 아무리 세상에 악한 아버지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에게 있어서만큼은 비록 부족하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자녀를 대합니다. 그러기에 자녀들은 마땅히 부모에게 하나님을 섬기듯 복종과 공경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자녀는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보물이 우리의 자녀입니다.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내 뜻과 계획과 바람으로 양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주의 교양이라는 것은,
동일한 단어가 쓰인 다른 성경본문을 보면 징계라는 단어와 교차적으로 쓰였고, 의로 교육한다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어떨 때 징계를 합니까?
징계라는 것은 규칙과 질서와 원칙을 전제합니다. 이것에서 벗어날 때 징계하는 것입니다.
원칙이 없으면 감정대로 합니다. 감정대로 하기에 일관성이 없고 상처를 줍니다. 일관성이 없는 교육은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눈치 보는 아이로 만듭니다.
따라서 부모님들은 주님의 말씀의 원칙가운데서 삶의 질서와 규칙과 원칙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자녀들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 났을 때는 징계하고 그것을 잘 준수했을 때는 보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훈계라는 단어는 말로하는 훈련을 말합니다. 그것이 격려일수 있고, 책망일 수 있습니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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