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22-05-17 06:59

사랑은 오래참고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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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설교 “사랑은 오래참고”

 

고린도전서 13:1–7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가정을 달을 맞이하여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저는 최근 가족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꼭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올해는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그것은 가족이 있어 행복하기도 하지만 힘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 때문에 기뻐하기도 하지만 슬퍼하기도 하며,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불행해서 하기도 합니다. 

 

남녀가 만나 결혼할 때는 행복한 가정을 꿈꿉니다. 사랑하는 이와 이뤄갈 행복에 마음이 설렙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 설렘은 잠시뿐,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낳는 순간부터 고생은 시작됩니다. 육아는 기쁘고 행복하지만, 또한 우울하기도 합니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에 가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 같았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닥쳐옵니다. 학교에 보내면 편한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안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어려움은 가중됩니다. 부모가 고민하고 걱정해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대학을 보내고 취업을 하고 독립시켜도 어려움은 멈추지 않습니다. 

자식 걱정은 쉬는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이 결혼하지 않습니다.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습니다. 가족을 이루는 것을 포기합니다. 경제적 문제도 있겠지만,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우리 엄마 아빠만 보아도 행복하기는커녕 불행해 보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지 가족을 이루기는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가족을 만드셨을까요?

왜 남녀가 만나 함께 살게 하시고 자녀를 낳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하셨을까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가족을 왜 이루게 하시는 것일까요?

먼저 우리는 가족의 출발점인 결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청년들은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사랑의 출발입니다. 

연애의 목적은 서로가 즐기는 것에 있다면 결혼은 사랑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연애기간의 사랑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설렘이나 황홀함이 아닙니다. 이러한 감정은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원동력은 될 수 있으나 사랑은 아닙니다. 본문은 사랑이 아닌 것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가 천사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을 한다고 그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두 번째, 능력도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2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우리는 사랑을 능력으로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딸 가진 부모들은 사위 될 사람이 능력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아닙니다. 

 

세 번째, 불같은 열정도 사랑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3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내 몸을 불속에 던질만큼 상대에 대한 열정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고백, 능력, 열정입니다. 대부분 이것 때문에 결혼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 언급하는 것이 “사랑은 오래 참고”입니다.

왜 사랑을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영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Love never gives up”(The Message). “Love suffers long”(NKJV)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오랜 고통이다 라는 것입니다. 

조금 의미가 와 닿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왜 고통스럽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 포기하지 않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해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불행합니다. 아이 낳고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끝이 나길 바라지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중 이 고통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습니다. 가정을 깨지 못해 살아가는 부부도 있고, 자식을 내려놓지 못해 상처와 아픔 속에 있는 분도 계십니다.

왜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성경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다면 고통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상처받고 아파하며 힘듭니다. 

 

어머니에게 처음 입양 이야기를 했을 때의 반응입니다. 

“그냥 지금처럼 둘이 편안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니?”

아내와 가끔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편하게 살 걸 그랬나?”

 

결혼이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설렘과 열정이 식게 될 때쯤부터 현실적인 문제들에 맞닥뜨립니다. 결혼과 육아라는 현실 속에서 내 인격의 밑바닥을 보게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 중에 애들 핸드폰 집어 던지지 않은 부모가 없습니다. 

그런 부모님이 있다면 존경하셔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갈등은 또 어떻습니까?

TV가 깨지기도 하고, 밥상이 뒤집히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족을 깨지는 않습니다. 깨볼까 생각은 해보지만 그것이 더 힘들어 깨지 않습니다. 

자식 생각해서라도 참고 삽니다. 

 

때로는 자식들에게 

“그래 니 맘대로 해, 니 맘대로 살아” 소리치지만, 늦은 밤 자는 아이의 방에 들어가 보면 여전히 사랑스러운 내 새끼입니다. 포기가 안 되지요.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사랑을 하고 있고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하나님께서 왜 가족을 만드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하는 자들로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기적인 너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삶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로 우리를 끌고 가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바라보시며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보기 좋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가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2:18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 둘을 가족으로 묶으십니다. 

왜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셨을까요?

그것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누리는 그 사랑의 풍성함을 아담이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서로를 섬기시면서 풍성한 사랑을 누리십니다. 

그 기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보시니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를 만드시고 둘을 가족으로 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곳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가족은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처음엔 내가 배우자를 선택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준비하여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내가 자녀를 낳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부모는 어떻습니까? 우리 중 그 누구도 부모를 선택한 사람은 없습니다. 가족은 주어진 것이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족으로 묶으셨다는 믿음말입니다. 

 

그 원수같은 남편도 여러분이 잘못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만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막지 않으셨잖아요. 속 썩이는 여러분의 자녀들도 여러분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이요, 허락하신 어려움입니다. 

 

왜일까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배우라고 말입니다. 그 속에서 성삼위 하나님이 누리신 사랑의 풍성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가족으로 묶이지 않았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사랑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만큼 고통스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직장의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해도, 그만두면 끝입니다. 주변에 친하게 교제하던 사람일지라도 맘에 안 들면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가족은 어떻습니까? 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묶으셨어요. 참는 수밖에 없지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을 배웁니다.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 속에서 감격하고 기뻐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가족으로 묶이면서 자기만을 위해 살던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하기도 하고 할 수 없어 하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희생을 합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항상 이기려고 악을 쓰던 우리가 지는 법을 배웁니다. 자녀 이기는 부모가 없지요. 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져줍니다. 항상 사랑하는 편에서 집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족은 우리에게 고통스럽기만 했나요?

돌아보면 내 삶에 가장 큰 기쁨과 감격의 순간은 가족 때문이었습니다. 그 행복은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그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족을 허락해 주시고 그 속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행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그 행복은 혼자서 만들 수 없기에 가족으로 묶으신 것입니다.

혼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듀엣과 합창으로 노래하게 하십니다. 

혼자 부르는 노래도 좋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절대로 화음을 만들 수 없습니다. 결혼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다른 음을 냅니다. 그것이 화음을 만들어 냅니다. 혼자서 만들 수 없는 아름다움을 창조해 냅니다. 

 

합창은 음악의 극치입니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감동입니다. 장엄합니다. 가족이 부르는 노래는 합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듀엣을 부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합창하길 원하십니다. 

가뜩이나 외롭고 힘든 세상 쓸쓸히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아름답게 행복하게 노래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족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일지라도 그로 인해 내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늙고 병든 남편 수발드는 것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의지를 다지고 살아갈 힘을 내는 것도 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병고 끝에 배우자를 보낸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말이 무엇입니까? 그래도 있을 때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혼자가 되어 편할 것 같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그런 순간이 되면 삶은 외롭고 쓸쓸합니다. 좋은 곳에서 아무리 맛난 음식 먹어도 외로움은 달래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가족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아프지만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비록 사고쳐서 엄마 아빠의 마음을 힘들게 하지만, 건강한 것만으로도 고마워.

그동안 살아가면서 많이 싸우고 미워하기도 했지만,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이미 사랑의 자리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고 그것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며, 고통속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 속에서 성삼위 하나님께서 누리는 행복을 누리고 있음도 알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편하게 살기만을 원치 않으십니다. 

보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자리로 여러분을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결코 편하게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누군가를 위해 걱정하고 기도하게 하실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던 이기적인 우리가 가족으로 묶여 사랑하며 커가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은 존재들로 커가게 하실 것입니다. 

 

얼마 전 SNS에 가수 강수지씨가 올린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남긴 메모지였습니다. 

이 글이 감동되서 강수지씨가 운영하는 유투브 방송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찍은 여러 가지 영상들이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의 사진, 딸과 함께 ‘저높은 곳을 향하여’ 특송을 부르는 모습, 그림을 그리는 모습 등. 아버지를 추억하는 영상을 올렸습니다. 

강수지씨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영상을 올리고 또 유서를 공개한 이유는 그 마음에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문구에 “늘그막에 행복했다”는 그 글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을까요?

 

저희 어머니는 94세의 외할머니를 모시고 계십니다. 

외할머니께서 요즘 그런 말씀을 하신다고 해요. 다른 노인들은 딸하고 그렇게 싸운다는데, 나는 착한 딸 두어서 노년에 행복하다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도 제 가족은 감사할 것입니다. 외할머니께서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80이 가까운 저의 어머니의 섬김 때문입니다. 비록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지만, 외할머니를 위해 희생하고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도 원했던 현실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족으로 우리를 묶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겠다는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지금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 내 곁에 배우자 그리고 나의 자녀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가족은 이 땅에서만 존재합니다. 

누가복음 20:34–36 

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천국에는 가족이 없습니다. 모두가 형제 자매로 서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나의 어머니가 그곳에서는 자매로 만나게 됩니다.

이 땅에서 나의 아버지가 그곳에서는 형제로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서 내 아들과 딸들이 그곳에서 형제와 자매로 만나게 됩니다.

내 남편도 아내도 그곳에서는 형제며 자매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간혹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가족을 통해 누렸던 기쁨과 행복의 극대치가 그곳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맛보라고 가족을 주신 것입니다. 그 행복을 누릴 때 천국에서 누리는 행복이 어떠할지를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갈등하고 힘들어할 때가 많지만, 결국 감사의 자리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수동태입니다. 

누구도 스스로 선택해서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듯, 주어진 인생도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나라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 전에 미리 사랑을 연습하고 배우고 누리고 오라고 하십니다. 

주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시도 더욱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