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8-21 13:55

사사기 강해 29. 거짓신앙의 결과

joywoori
댓글 0

사사기 강해 29. 거짓신앙의 결과

 

사사기 12:1-7
1.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2.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4.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5.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7.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입다 이야기 세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입다의 비극적 인생을 보고 있습니다.
창기의 아들로 태어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입다. 그가 결국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지만 전쟁을 앞두고 서원한 것으로 인해 딸을 번제로 바쳐야만 했던 그의 모습 속에서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그의 인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는 의로움이 아닌 자기확신이 평강이 아닌 분노가 희락이 아닌 슬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두 시간 동안 입다의 비극적 삶의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당시의 시대적인 영적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섬기는 온갖 신들을 모조리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에 유익과 만족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추구한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선인가 악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에 유익과 만족을 주는가 였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의 삶의 양식(라이프 스타일)에 영향을 받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믿던 신까지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입다 개인의 출생과 성장 과정 속에서 그 비극의 원인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그는 창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성장 하면서 형제들에 의해 추방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장로회의를 통해 입다의 추방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이복형제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죠.

그러한 성장과정 속에서 원한과 서러움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주류사회에서 내몰려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면서 그는 자신의 가문을 일으킬 야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는 놓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서원을 한 것입니다. “꼭 승리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승리하고 돌아올 때 나를 첫 번째로 반기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그의 성공에 대한 지나친 야망은 결국 자기의 딸을 번제로 드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가 비록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였지만 서원의 내용이나 그것을 지키는 방식은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비극적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더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입다의 잘못된 신앙이 먼저는 그의 가족을 비참한 지경으로 내몰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떠한 비참한 지경으로 내몰리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1.잘못된 신앙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마침내 파괴합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입다에게 찾아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지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1절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에브라임 지파가 굉장히 화가 난 것입니다. 이 전쟁에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까지 화가 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표면적으로 볼 때는 자존심입니다. 우리가 그래도 이스라엘에서 가장 대표적인 지파인데 우리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리품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에브라임지파의 태도는 여기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8장에 가면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와 미디안 대군을 진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삿8: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이러한 에브라임 지파의 태도는 전쟁의 승리를 두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전리품을 나누지 못함에서 오는 분노였던 것입니다. 이 모습이 여기서도 반복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에브라임지파의 모습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파가 어떻게 파멸을 길을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분당에서 사역할 때 판교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당시 7개의 교구로 구성되었는데 전도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제가 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새신자전도에 경쟁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해 교구목사, 전도사, 총무권사의 능력이 평가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침개 전도, 붕어빵 전도, 도시락 전도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파라솔을 치고 전도를 시작할 때쯤, 다른 교회도 하나둘 파라솔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분당의 내로라하는 교회들이 하나하나 파라솔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하다가 그곳에 개척을 시작하시는 목사님 내외가 전도지를 들고 아파트단지를 돌다가 저와 마주친 것입니다. 저에게 이렇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목사님 교회는 크고 또 먼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전도를 해야 합니까?” 그때 사실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작은 개척교회를 하셨으니까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그래도 옆에 성도님들이 계셔서 눈치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대 멀다고 안가 나요? 좋은 곳이면 멀리 있어도 가야지요.” 사실 그 말을 하고도 후회가 많았습니다.

세종시 첫마을이 들어설 때 제가 전에 섬겼던 교회의 전도사역을 맡았습니다. 이미 판교에서전도를 했던 전력이 있어 현수막도 붙이고 파라솔도 세우고 하며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만 그곳에서 전도를 했는데 몇 주 지나니까 J교회에서 목요일마다 대형버스가 1,2대씩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성도들은 아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시 전쟁이 붙은 것입니다. 그곳에서도 전도를 하다 개척을 하시는 목사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 열심히 전도해서 목사님 교회로 보내드릴게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교회 공동체들이 하나가되지 못하고 경쟁을 하는 것일까요?
노회를 가면 대부분 발언을 하시는 분들이 규모가 있는 교회의 목사님들이십니다. 그분들에게 의해서 대부분의 결정들이 이루어집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교인의 숫자는 결국 헌금과 연결되고 그것은 결국 교회의 파워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최근에 기독교내에서 결정되는 것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진리와 정의 보다는 힘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대부분 교인의 숫자 헌금의 액수에서 나옵니다.

 

최근의 명0교회 세습 문제를 가지고 예장통합 재판국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8대7로 세습은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세습 금지법을 제정해 놓고 그것을 어기면서 이것은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이유인즉 이미 김0환목사가 퇴임을 한 이후에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개미가 웃을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교회안에서 가능해 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통합측 내에서 김0환 목사의 파워가 것은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흐르고 있는 논리를 보십시오.
결국 머릿수, 돈 이 그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정의가 없습니다. 진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입다를 찾아옵니다.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
암몬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과 찬양을 드리기는커녕, 파워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게임의 중심에 전리품, 즉 돈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문화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흡수된 것입니다. 그들이 돈 맛을 본 것입니다.
돈과 권력 앞에 머리를 숙이는 세상을 보면서 그것에 도취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군대를 300명으로 줄이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서 시험을 당하실 때 천하만국이 영광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따라는 가는 자들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비록 넘어지고 실패하더라고 다시 일어서서 그 길로 가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이후 에브라임 지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사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당시 일어났던 두 개의 충격적인 사건을 소개하죠.
전에 말씀드린바가 있을 것입니다.
17장 1절을 볼까요?
미가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어머니의 돈 은 천백을 도둑질합니다. 어머니의 저주를 듣고 그것을 다시 돌려주죠. 그때 어머니가 말합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께 복 받기를 바라노라.” 어머니는 그것으로 신상을 부어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에게 신당이 있었는데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미가 가문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여호와를 섬기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은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들의 언어는 어떠합니까?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들의 섬김의 대상은 여호와였지만 실제로는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19장 1절을 볼까요?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전에 말씀드린 그 끔찍했던 시체 열두 토막 사건도 에브라임 산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돈을 맘몬신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돈 자체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이 그것을 목적 삼는 순간 우리 안에 우상으로 다가와 신적권세를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에 끌려 다니기 시작합니다.


2.잘못된 신앙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합니다.
그렇다면 에브라임 지파만 이러한 우상에 빠졌을까요?
입다는 어떻습니까“
<삿12:2-4>
“2.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4.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그러고는 잔혹한 동족학살이 시작됩니다.


<삿12:5-6>
“5.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입다는 길르앗 군대를 동원하여 요단 강 나루텃을 장악합니다. 에브라임지파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서편지역에 위치하고 길르앗은 동쪽지역이었기 때문에 퇴각한 에브라임이 요단강을 건너야 했던 것입니다. 요단강은 좁고 깊어서 물살이 셌습니다. 그곳을 건너는 나루턱이 몇 개가 있었는데 그곳을 장악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에브라임 지파를 학살하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이 참으로 비열합니다.
쉽볼렛을 발음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십볼렛이라고 발음하면 그 자리에서 쳐 죽인 것입니다. 우리도 경상도 분들이 쌀을 살이라고 하는 것처럼 아무리 쌀이라고 발음하려고 해도 왠지 다릅니다. 당시 에브라임지파는 쉽볼렛을 발음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한번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끔찍하고 잔혹한 장면입니다.
얼마나 그들이 비웃으며 에브라임 사람들을 죽였을까요?
그렇게 해서 죽인자가 4만2천명입니다. 이것은 거의 대부분의 에브라임 지파를 진멸했음을 의미합니다.
민수기 1장에서 전쟁에 나갈 20세 이상의 남자를 계수할 때 에브라임 지파의 경우 4만5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4만2천명이 학살당했다는 것은 입다 시대 아무리 군대의 숫자가 늘었다고 해도 거의 대부분의 군사가 전멸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입다는 왜 이렇게 잔인하게 되었을까요?
결국 우상숭배의 문화속에 길들어진 결과입니다.


우상숭배는 반드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게 되어있습니다.
부모가 죽고 자녀들이 재산싸움을 합니다. 그곳에 서로를 향한 존엄성이 있습니까?
그 돈이 무엇이라고 그동안 쌓았던 형제애까지도 원수로 만드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18장에 예수님께서 한 불의한 재판장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사람을 무시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함께 갑니다.
 
창세기 20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여정중에 그랄이라는 곳게 거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죠. 그때 그랄왕이 사라는 보니까 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밤에 아비멜렉왕에게 나타나셔서 사라를 데려가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다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러면서 왜 네가 아내를 누이라고 것짓말을 했냐고 묻죠. 그때 아브라함의 대답이 이것입니다.
<창세기 20: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곳에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일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입다는 입술로는 여호와를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승리가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토록 잔인하게 자신의 동족을 학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봅시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계시하신 하나님 입니까? 아니면 입술로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지만 내가 섬기고 싶은 것을 섬기는 것입니까?

우리가 성경의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면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의 인격 앞에 서게 되면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은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의 경외감입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

마지막으로 호세아 6장을 보겠습니다.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사사기

목록
번호 제 목 이 름 성경구절 날짜
35 사사기 강해 35.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사기 14:10-20 2018.09.30
34 사사기 강해 34. 꿀처럼 달콤한 죄의 유혹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사기 14:1-9 2018.09.23
33 사사기 강해 33. 나실인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사기 13:5 2018.09.16
32 사사기 강해 32. 나실인의 금기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사기 13:4 2018.09.09
31 사사기 강해 31. 소망이 사라진 세대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삿13:1-4 2018.09.02
30 사사기 강해 30. 지도자의 타락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삿12:8-15 2018.08.26
» 사사기 강해 29. 거짓신앙의 결과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사기 12:1-7 2018.08.19
28 사사기 강해 28. 입다이야기의 교훈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사기 10:17-11:28 2018.08.12
27 사사기 강해 27. 입다의 비극적 인생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사기 11:29-40 2018.08.05
게시물 검색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