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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32. 나실인의 금기
사사기 13:4
4.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삼손이야기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 삼손의 이야기는 영웅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에 대하여 삼손의 스토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한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의 역사에 개입하시죠. 그러면서 그분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삼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눈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상태는 어떠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소망이 완전히 사라진 세대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절망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절망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것을 마노아 가족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구원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가? 에 대한 부분을 보여줍니다.
아이가 없던 마노아의 가족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절망가운데 있던 마노아 가족에게 소망이 빛이 밝혀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되는 첫 번째 내용은 구원은 하나님의 찾아오심으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소망이 없는 마노아가족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옵니다. 이것은 절망가운데 있던 인류 가운데 하나님의 찾아오심과 개입하심이 없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는 죄’(삿13:1)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심으로 구원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있던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조차도 없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심은 어떻게 알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빛이시죠. 그 빛이 우리 심령을 비춥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어두움이 드러난 것입니다. 내 자신의 더러움과 추악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전혀 가망성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뼛속깊이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두 번째 내용은 나실인의 금기에 대한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내용이 포도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이렇게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삶의 자세가 포도주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는 이후에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가 마노아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서 두 번째 반복됩니다.
7절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마노아가 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반복됩니다.
14절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이렇게 세 번씩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의도적으로 이것을 세 번 기록한 것이거든요.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마노아 가족에게 이러한 삶의 자세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삶의 자세인가? 나실인으로서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실인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민수기 6장에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6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민수기 6:2-4>
2.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3.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2절에 보면 나실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특별히 구별된 자를 말합니다. 보통 이것은 서원을 통해 행하게 되는데 “내가 몇 년 동안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나실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세 가지의 금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고, 포도나무의 소산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포도주는 부정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성경적인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포도주가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아직 포도주를 먹을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구약에서 포도주를 먹는 다는 것은 어떠한 사명이 끝나고 안식할 때 먹는 음료였습니다. 포도주를 먹을 수 있을 때가 언제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이 끝나고 안식할 때 비로소 먹을 수 있는 것이 포도주였습니다. 그러니까 포도주를 먹는 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을 끝내고 안식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5: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창세기 5장의 계보에서 라멕은 노아에 대하여 예언하면서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그가 안식을 주고 위로할 것이라고 합니다. 홍수 후, 안식할 때 노아는 포도를 심었고,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가 포도주를 마신 것은 이제 그의 사명이 끝나고 편히 쉴 시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9:20-25>
“20.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노아는 자신의 장막의 개인적인 침소에서 고난한 일과 무거운 의무의 겉옷을 벗어놓고 누워서 편히 쉬었던 것입니다. 이는 안식의 편안함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아들 함은 노아의 개인적인 장소에 침범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저주를 받게 됩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멜기세댁에게 포도주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14:17-18>
17.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아브람은 사로잡혀간 조카 롯을 구출하고 나서 돌아오면서 멜기세덱 왕으로부터 포도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4:23-26>
23.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여기서도 포도주가 장려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포도주는 일을 마치고 쉼을 위해 주어진 안식과 축복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실인에게 이것을 금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삼손만 나실인이 아닙니다. 지금 삼손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입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열방가운데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특별히 주어진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죄악으로 가득찬 가나안 땅을 진멸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 사명이 마쳐질 때에만 그들에게 안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모든 우상숭배자들을 진멸하고 그곳에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 비로서 너희가 안식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죄악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의 자녀로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구약 백성처럼 서원하여 나실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한 이후에 영원토록 나실인입니다.
그래서 마노아의 아내가 마노아에게 이렇게 말하죠.
<삿13:7>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우리는 창세전에 이미 선택된 자들입니다. 이미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구별된 자들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영원토록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안식이 있습니까?
여기서부터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포도주를 먹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실인으로서 해야 될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 간구할 것이 많고 많지만, 너희가 가장 중요하게 간구할 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가고 기도해야 하죠.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이 마치는 날까지는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여전히 죄와 사망의 권세가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의 의와 평강의 왕으로 통치하실 때 까지는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와 사망의 역사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안식 할 수 없는 것이죠. 악과 고난이 연속되는 현실 앞에서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언제 마십니까?
성찬식에 마십니다.
마태복음 26:26-29
26.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그의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마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사명의 길로 들어서셨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나실인 예수로서의 사명에 돌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입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심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한 이 마지막 만찬을 통하여 자신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그의 백성들은 이 성만찬을 통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포도주를 마 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게 하나님의 모든 일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수천년 동안 시속하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님이 부활한 날, 즉 주일에 모여 포도주를 마셨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안식하여 포도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잔치는 흥이 깨어져버렸습니다. 춤도 노래도 웃음도 멈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사 흥이 깨어진 잔치를 살려내셨습니다.
흥이 깨어진 잔치, 우리 인생 아닙니까?
기쁨도 춤도 노래도 웃음도 사라진 우리의 인생.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을 춤과 노래와 웃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진짜 잔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포도주를 맛보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포도주를 먹습니다.
우리에게 안식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날에 완전히 이루실 안식을 바라보면 포도주를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먹는 날까지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사역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포도주를 먹지 않습니다.
그분의 구원의 일을 완성되고 모든 열방과 족속과 백성이 함께 모였을 때, 그때서야 예수님께서는 잔을 드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 모두 의와 평강의 왕 앞에서 포도주를 마실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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