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10-04 10:08

사사기 강해 35.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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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35.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사사기 14:10-20
10.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11.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12.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13.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매
14.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15.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빼앗고자 하여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니
16.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도다 하는지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알게 하리요 하였으나
17.칠 일 동안 그들이 잔치할 때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18.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19.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20.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사사기 강해 35번째 시간입니다. 삼손 이야기로서는 5번째 시간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삼손에게 주어진 나실인의 세가지 금기 사항을 중심으로 본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피게 될 내용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 삼손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분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가 불순종할 경우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의 일을 진행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세워나가실 때 먼저는 사람을 세우십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그들은 출신성분이 좋거나 능력이 출중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한 자들을 세우사 그분의 강함을 드러내시는 방식을 취하십니다. 능력과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오직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이 만일 충성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일들을 진행시키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입니다. 그동안의 사사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미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나기 전부터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가진 힘은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젊은 사자를 찢어 죽일 만큼 용맹함과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귀턱뼈로 1천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일 만큼 싸움에 능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은 그 어떤 사사와도 비교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나실인의 금기사항을 하나하나 깨버립니다. 이방 여인인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여 결혼을 합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날 때부터 선택되고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불순종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좌절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 본문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삼손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블레셋 여인과 혼인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베풀어진 잔치였습니다. 그곳에서 블레셋 청년 삼십명이 삼손과 친구를 맺고 함께 즐기기 시작합니다. 삼손은 블레셋 청년들과 친구를 맺음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잔치이니 당연히 포도주와 독주가 있었을 것이고 삼손은 마셨습니다. 이 또한 거리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된 구원자로서의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어느 정도 흥이 오르자, 수수께끼 하나를 냅니다. 아마도 당시 풍습에 수수께끼를 내고 풀면서 즐기는 문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수수께끼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수수께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4절을 보시면,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그리고 수수께끼에 상금을 거는데,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입니다. 당시에 옷은 재산목록 두 번째에 해당될 만큼 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면 승용차 정도 될 것입니다. 만일 풀게 되면 이것을 받지만 풀지 못하면 블레셋 친구들이 삼손에게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도박과 같은 수수께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수께끼는 그 누구도 풀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문제로 내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얼마 전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떠서 먹은 경험을 토대로 문제를 내었습니다. 그러니 그 누구도 맞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의 부모조차도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사사의 시체에서 꿀을 떠먹은 사건은 굉장히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나실인의 세 번째 규례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나실인으로서의 자격이 박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의 부모에게 이 사실을 고하고 민수기 6장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지 제사의 절차를 통해 자신의 부정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수수께끼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는 것에 상당한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기에 술에 취하고 흥이 오르자 이 사실을 은근히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는 수수께끼의 답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삼손이 시체를 만진 것은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삼손이 나실인의 사명을 소홀히 여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실인의 규례를 잔치의 재미꺼리로 올려놓고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이 그는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삼손에게서 과연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블레셋 친구들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합니다. 아니 풀 수 없었습니다. 이 게임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친구들은 삼손의 아내를 은밀히 불러내어 협박하기 시작합니다. 삼손을 꾀어 해답을 받아오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아버지와 집을 불사를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이에 삼손의 아내는 눈물 작전을 피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자신에게만 해답을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간곡한 아내의 강요와 눈물에 못 이겨 마침내 해답을 알려 줍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모인 잔치의 마지막 날 밤이었습니다.


삼손의 수수께끼는 이것이었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먹는 것을 알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제가 만일 답을 한다면, “사자에게서 꿀이 나왔다”입니다.
그런데 블레셋 친구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18절을 보시면,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물론, 이 해답은 히브리 원어로 보아야만 그 의미가 명확해 집니다.
삼손은 히브리어의 라임을 이용하여 문제를 내었고, 블레셋 친구들은 그 라임을 그대로 받아 답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답하는 형식이 아니라 의문문 형식으로 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손을 조롱하고 비웃음꺼리로 만드는 행동이었습니다. 순간 삼손은 아내가 이 사실을 알린 것을 알아차렸고 블레셋 사람 뿐만 아니라 믿었던 아내에게도 조롱당하고 비웃음당했다는 사실에 극도로 흥분하고 맙니다.

그래서 블레렛 땅인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삼십 명을 쳐죽이고 그들의 옷을 노략하여 돌아와 수수께끼를 푼 자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러던 중에 삼손의 아내는 잔치에 있었던 친구중에 한 사람과 살림을 차려나갑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5장에 들어가면, 삼손이 자신의 아내를 보러가자 그의 장인이 네 아내는 친구에게 주었고 아내의 동생이 더 젊고 아름다우니 그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합니다. 삼손은 그러한 상황에 더욱 자극받게 되고 여우 삼백 마리-최근 학자들은 여우라 아니라 자칼이라고 함- 를 잡습니다. 그리고 꼬리를 묶고 그 사이에 횃불을 달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밭에 풀어놓게 됩니다. 그때가 곡식을 수확하기 바로 전이었기 때문에 블레셋 땅에 상당한 피해를 주게 되죠.

 

피해를 본 블레셋 사람들이 흥분하고 열받아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그 발단이 블레셋 여인과 그의 아버지에게 있음을 알고 그들을 불에 태워 죽입니다.

한편 삼손의 분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5장 7-8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8.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

재미로 시작된 삼손의 수수께끼가 불이 번지듯 분노와 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볼 것은 이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4:4절을 보아야 합니다.
이 구절이 삼손의 이야기를 이해함에 있어서 핵심구절입니다.
삿14: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이 부분에서 개역성경에 오역이 있는데,
먼저, 공동번역으로 보면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모두 야훼께서 하시는 일인 줄 몰랐다. 그 때는 불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때였기에 야훼께서 불레셋 사람들을 칠 구실을 마련하시려는 것이었다”

새번역 “그의 부모는, 주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치실 계기를 삼으려고 이 일을 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지금 이 일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인가,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한 것, 사자를 죽인 것, 꿀을 먹은 것, 잔치에서 수수께끼를 낸 것 등 삼손이 지금 불순종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손의 불순종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삼손의 불순종까지도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불순종을 통해서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관망하고 계신 듯 보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손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까지도 그분의 선함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새하얀 도화지를 주고 그림을 그리라고 합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 낙서를 해 버렸습니다. 그러면 탁월한 화가는 그 낙서를 토대로 아름다음 그림을 그립니다.

 

삼손은 분명 하나님 앞에서 불충성 하였고 불순종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지장을 받거나 차질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하여 그분의 일들이 진행되게 하십니다. 블레셋을 진멸 하기로한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기의 욕망대로 살았고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해 행동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그의 막무가내의 삶 까지도 활용하여 그분의 일을 이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8:26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실수나 실패까지도 그분의 선하심을 이루는 도구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크고 작은 일들 속에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불충성하고 불순종 한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그분의 선하심을 이루십니다. 그것이 마지막 결과입니다. 이 선하심의 결과를 맺기 위한 과정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것은 우리의 삶의 현실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을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평가는 최후에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성공했던 적도 있었고 실패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기쁨에 환희도 있었지만 슬픔의 눈물도 있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삶의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업이 잘 안되기도 하고 취업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건강에 어려움이 생겨 낙심하기도 합니다. 만남에 갈등과 상처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내 맘과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고민되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선함을 이루는 과정은 언제나 힘듭니다. 편하게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넒은 길로 가서 선함을 이루를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함은 언제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어려움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그동안 살았던 세월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그 사건들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여러분의 그 실패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 고민과 눈물과 아픔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의 삶을 보다 넒고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을 하나님의 선함을 이루는 과정으로 여기고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는 이 땅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 드리고 싶었던 일들을 이루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믿어야 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선하심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 머리위에 면류관이 씌여져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우리에게 면류관을 씌우십니다. 왜 무엇 때문에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인물중에 삼손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까? 
<히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삼손은 분명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는 부끄러웠으나 그의 머리에는 면류관을 씌워집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너는 실수하고 실패하고 네 감정대로 마음대로 행동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실패한 인생위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좌 앞에서 그 면류관을 벗어서 주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날 우리가 그 자리에 설 것입니다. 연약하고 허물 많은 우리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 시기에 우리는 그 날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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