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강해 18.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사사기 6:1-16
1.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2.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3.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4.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5.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7.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8.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9.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10.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11.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성경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특히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보여주십니다. 성경의 기자들은 역사가운데 개입하신 하나님을 내러티브라는 이야기 형식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이것이 역사서입니다. 때로는 시라는 형식을 통해 논리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은유적이고 직관적인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시편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려주시고 그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고 그것을 기록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가를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선지서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다향한 문학장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개입하시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의미가 있는 것은 사사시대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당시에 역사적 상황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떤한 방식으로 일하셨는가를 아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 것인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결국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이고, 그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오늘날 나의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순종하였을 때 결국 말씀을 통해 알았던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음식을 하는 방법을 아는 것과 실제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요리책을 읽고 육개장 만드는 방법을 아는 것이 실제로 육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얻었다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지적으로 아는 것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아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성경을 통해 깨닫게 된 진리를 삶의 순종함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우리의 믿음이 강화되고 성숙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기드온의 이야기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11,12세기 즉 제1철기 시대에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하나님께서 역사가운데 어떻게 일하셨는지, 또한 이 사건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된 말씀이 이제 여러분 각자의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순종되어질 때, 성경의 글을 통해 알았던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체험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 그리고 확신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압제로 말미암아 심히 고통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미디안 군대를 두려워하여 도피처를 찾게 되었고 그들이 선택한 도피처는 산이었습니다.
6:2절에 보면,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들이 두려워 벌벌 떨면서 산으로 도피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수치스런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1장에서 "너희가 발바닥으로 밞는 모든 땅을 다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강하고 담대하라고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을 때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사건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의 미디안족속이 두려워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산으로 도망하였고 굴을 파고 산성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이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지 아니면, 이와 같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기독교라는 말 대신 개독교라는 말로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다 당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불미스런 사건사고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을 뿐만 아니라, 복음전도에도 큰 장애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선단체의 90%이상이 개신교이고 한국사회에 선한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간혹 터지는 불미스런 일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개입되어 있어 전체 기독교가 마치 타락한 것처럼 비추어지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인 것입니다. 때문에 현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위축되어 있고 방어적입니다. 어떤 성도님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갑니다.
프랑스의 탁월한 역사학자인 자크엘룰은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이란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잘못된 삶의 방식 중에 하나가 세상과 교회를 분리하여, 세상에서의 삶은 속된 것이고, 교회의 삶은 거룩한 것이기에,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교회에서는 교인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이원론적인 이중적인 삶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고, 세상의 소금이라 하셨는데, 그것이 아니라, 교회의 빛이며, 교회의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이 두려워 산으로 도망하여 굴을 파고 산성을 쌓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교회라는 울타리 속에 숨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따라 거짓이 아닌 정직함으로, 불의가 아닌 의로움으로, 편법이 아닌 노력과 실력으로 살아야 할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거짓과 불의와 편법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능력은 말씀대로 살고 손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당장에는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십니다. 고3들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며 시간을 드리는 것, 세상적 눈으로 볼 때 손해입니다. 장사하는 우리 성도님들 주일성수를 위해 문을 닫는 것 손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으로 문서를 꾸며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만일 정직하게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면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에서도 철저하게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어떤 큰 성공을 거둔다고 할지라도,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미디안을 두려워하여 산으로 도망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안주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그들의 결과는 결국 궁핍함이며 탄식입니다.
6:6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지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궁핍함으로 부르짖고 있는 가련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이러한 탄식은 회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고통이 너무 크기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켜 가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기드온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기드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대단히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신앙의 훈련을 잘 받고, 전략과 전술에 뛰어난 사람이었을까요? 사실 그 반대입니다.
6:15절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이것은 그의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그를 표현하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모습입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들에서 타작하더니"
기드온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밀을 타작해야 하는데 미디안사람들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타작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므로 네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이 말에 대하여 표증을 요구합니다.
17절에 보면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이렇게 표징을 요구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기드온이 소심함과 유약함을 보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사자는 표징으로 그가 예물로 드린 고기와 무교병을 지팡이 끝에 대었을 때 불이 바위에서 나와 태워버림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양털뭉치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야기입니다. 간혹 이 본문을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법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사실 잘못된 해석이며 적용입니다. 성경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사용한 양털뭉치 시험을 바른 신앙의 자세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하나님을 시험하기까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36-40절의 내용입니다.
기드온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고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면
양털에만 이슬이 있고 주변 땅은 마르게 하소서 라고 요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양털은 마르고 주변 땅은 이슬에 젖게 하옵소서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 또 그렇게 하십니다.
기드온이 이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6장에 보면 계속해서 나오는 단어가 "두려움"입니다.
23절에 보면..."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27절에 보면...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함으로
7: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 하거든"
우리는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 기드온이 얼마나 두려움가운데 있던 자인지를 보게 됩니다.
즉, 기드온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며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지목하시고 그를 불러 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합니다.
6:12절입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르십니다.
어떻게 그가 큰 용사일까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큰 용사이기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까요? 아니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큰 용사일까요?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큰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 보여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큰 용사가 됩니다. 그러니까 제일 두려운 존재가 누구입니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모든 판단기준으로 볼 때 다윗은 골리앗에 비하여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연약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였고 그가 순종하여 전쟁에 나갔을 때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가문도 중요하고 학력도 중요하고 실력도 중요하고 능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경기장에서 처음에는 가문도 좋고, 학위도 좋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 앞서 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 앞서 갑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갰습니까? 내가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 아내가, 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함께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큰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 여러분!
미래를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각종 스펙을 쌓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기 위해 말씀을 읽고 기도 생활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기에 취업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 있는 줄 압니다. 너무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기드온을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여러분!
내가 가문이 좋지 않습니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좋은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나 또한 자녀들을 넉넉하게 입히고 먹이지 못함으로 혹시 위축되어 있지 않습니까? 남들처럼 건강이 좋지 않아 우울해 질 때가 많습니까? 좋은 직장이 아니라,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떳떳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이미 큰 용사인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다음시간에 살펴보겠지만, 기드온은 300명의 군사를 통해 미디안의 대군을 진멸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힘이 아닙니다. 연약함의 상징적인 숫자인 300명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못하실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하는 방법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세우시고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훈련시키시고 연단하사 사용하십니다.
그리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신뢰하시고
세상을 향해 담대함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거짓과 불의, 불법과 편법이 난무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