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6-12 13:48

사사기 강해 20.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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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20.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

 

사사기 7:1-8

1.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4.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타락은 인류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나타시시고 그를 통하여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의미합니다. 그것이 막힘없이 이루어지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가나안땅에서부터 시작하길 원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의 언약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왜 가나안땅인가? 당시 그곳은 우상숭배로 말미암는 타락이 극심했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는 반드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문화를 만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나 민족 부족들을 보면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성적으로 타락하고 약자들의 인권이 무시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원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간은 쉽게 타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참혹하게 타락한 가나안땅을 그 분의 백성들을 통하여 진멸하고 그곳에 하나님을 예배하며 순종하는 그 분의 백성들을 두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사명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일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맙니다.

여호수아 때는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이후 세대들을 가나안을 진멸하지 않고 그들과 공존하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이미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 한가운데 바알신전과 아세라 목상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급속하게 가나안화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압제를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사기 뒷부분에 가면 이러한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동성애, 집단 성폭행, 시신을 열두 토막으로 자르는 일 등 사시기는 숨기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일어난 참혹한 죄의 모습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과연 좌절되었을까요?

가나안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 그분의 주권과 통치는 실종되고 말았는가? 그의 백성들의 순종의 여부에 따라 그 나라가 서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에 의해 파기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염두해 두면서 오늘 본문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전쟁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어떻게 세워지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메뚜기 떼와 같은 미디안의 군사들 8장에 가면 그들이 135천명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32천명의 이스라엘 군사들. 4배가 넘는 군사력 앞에서 과연 이스라엘은 어떻게 이 전쟁을 끌어갈 수 있을까요? 뿐만 아니라 무기 하나 변변히 없는 오합지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숫자를 줄여 가십니다. 먼저 두려워 떠는 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22천명이 돌아가고 1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도 많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군사의 수를 줄이십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을 물가로 내려가게 하시고 그곳에서 물을 먹게 하십니다.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따로 세우고,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 삼백 명을 따로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삼백명을 통하여 너희를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간혹 삼백 명을 용사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단지 숫자를 줄이신 것에 불과합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2 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자신의 지혜와 힘과 능력으로 승리했다고 자랑할 수 없게끔 하시기 위해 숫자를 줄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용사가 아니라, 하나님만을 자랑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함의 상징적인 숫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함을 통하여 그분의 사역을 진행시키시는 것입니다.

32천명이었던 군사를 300명으로 줄이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1명으로도 그분의 구원의 일들을 진행시키십니다. 나중에 삼손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도 자신의 힘과 능력을 다 잃어버린 상태에서 그것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눈을 뽑은 원수들을 향한 그 분노로 자신을 묵고 있는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릴 때에 살아있을 때 보다 죽을 때 죽인 자가 더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삼손을 보면서 과연 누가 삼손을 영웅이라고 말하며 그를 교훈 삼자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들은 결코 자신의 지혜나 능력을 자랑할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의 방식도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300명이 진짜 용사여서 수적 100배가 넘는 군사들과 싸워 이겼다면 우리는 그들의 탁월함에 주목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의 방식은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300명을 100명씩 세대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한 손에 나팔을 들고 다른 손에는 항아리를 들고 그 안에 횃불을 감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진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자신이 하는 대로 따라하라고 한 것입니다.

 

시간은 이경 초 즉 한밤중이었습니다. 이때 초병들이 교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야간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보초를 서다가 누군가 움직임이 있으면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그리고 그 날의 암구어를 묻지 않습니까?

야간전에서 움직이는 것은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미디안 군대가 전쟁을 앞두고 상당히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기드온이 전진에 몰래 들어가서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런 내용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미디안의 군사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심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한밤중, 이경 초에 보초들이 교대를 하러 움직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300개의 나팔 소리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항아리가 동시에 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그 적막했던 모레산 앞 골짜기에 그 소리가 울려 천둥과 같은 소리였을 것입니다. 잠자던 병사들이 이 소리에 놀라 다 깨었을 것입니다. 그러더니 횃불이 그 골짜기를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 빛에 비추어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이 흐릇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또 다시 나팔소리와 함께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300명의 이스라엘 군사가 했던 것은 이게 다입니다.

그때 미디안 군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21-22절입니다.

“21.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300개의 불빛 아래서 서로가 적군인줄 착각하여 서로 죽이는 전투를 벌인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전쟁에서 그 누가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승리가 바로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가나안땅에 임했던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랑할 수 없도록 연약함과 무능함 속에서 놀라운 승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드러나고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어떠함에 좌우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인간 편의 그 어떤 지혜나 노력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열정과 노력이 소중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을 다 빼신 후에 그분께서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그 분의 역사와 일하심을 다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것 때문에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깨닫게 되는 은혜는 그 당시보다는 이후에 깨닫게 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 당시에는 원망하고 불평했던 일들이 지금 돌아볼 때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손해보고 실패한 그 일들이 오히려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동안의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에 별로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100분의 1로 줄이듯이 하나님은 그마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들조차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십니다. 우리가 가진 경제력, 열정, 지혜, 능력조차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그것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서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그것은 300명을 통해서 135천명을 상대하여 이기시게 할 만큼 쉬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통해 이루실 그 어떤 일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것은 아무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어떤 일에 쓰시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이유가 자녀들로 하여금 노후에 돌봄을 받으려는 이유가 아닌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 때문에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늘 함께 있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언가 하나님 앞에 기특한 일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런 분들을 오히려 하나님은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일을 시키시려고 우리를 부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산에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왜 때립니까? 사람 되라고 때리는 것입니다.

돈 많이 벌어서 부모 호강시키라고 때리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자신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사람답게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타락하였습니다.

우상숭배를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그들 사회는 급속하게 추락하고 맙니다.

사사기 19장에 가면 당시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을 소개함을 사사시대에 타락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레위사람이 베들레헴에서 첨을 얻었습니다. 그 첨이 행음하고 베들레헴 아버지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레위사람이 그를 데리고 돌아오다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유숙할 곳을 찾지 못한 레위인은 기브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한 노인의 도움으로 그곳에 첩과 함께 머물게 됩니다. 그 밤에 동네의 불량배들이 몰려와 노인에게 레위인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그를 성폭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동성애와 집단 성폭행이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노인에 레위인을 보호하자 그들은 첩을 데리고가 밤새 능욕하고 새벽에 놓아줍니다. 아침에 되었을 때 노인과 레위인은 문앞에 죽어 엎드러져 있는 여인을 발견합니다. 이에 레위인은 죽은 첩의 시체를 열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이러한 참혹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과연 가나안땅에서 이루시겠다고 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된 것인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지나 룻기로 가면 사사시대 일어난 또 하나의 사건을 소개합니다.

이 사건도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은 아내 나오미와 함께 모압땅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죽게 됩니다. 남겨진 두 아들은 모압땅에서 아내를 얻고 산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죽게 됩니다. 이방 땅에 남겨진 시어머니 나오미는 자신이 거주했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들을 축복하며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것을 부탁합니다.

그들은 함께 울며 이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며느리가 나오미와 함께 가겠다고 붙잡습니다. 어머니가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섬기는 그 하나님을 나도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이름이 룻입니다.

이제 시어머니 나오미와 룻의 동거가 시작됩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십니다. 나오미는 룻을 위하여 어떻게 해서든 좋은 남편을 만나게끔 노력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룻과 보아스는 혼인하여 아이를 낳습니다.

 

룻기 4

13.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18.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하나님의 백성 나오미와 이방여인 룻의 사랑과 섬김의 아름다운 모습들 속에서 결국 다윗의 혈통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혈통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 타락한 사사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그루터기와 같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남편과 자녀를 잃은 슬픔 가운데서도 자신을 기꺼이 섬기고 따라주는 며느리를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룻 또한 이방여인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적 조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시어머니를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했으며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까지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에 이렇게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조차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그 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대단히 작고 미약한 일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평생 내가 하나님을 위해 도대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만큼 기억조차 하지 못할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까 하는 조바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꽃이 피는 찬란한 순간을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지 사이에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앞에 섰을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은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머리에 쓰인 면류관을 벗어 주님 발 앞에 다시 놓아 드릴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홀로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신 그 분의 나라도 하나님 홀로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안에서 행복했고 감사했고 기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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