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장. 기드온의 타락
삿8:22-25
22.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23.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24.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25.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26.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27.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게 될 말씀은 이제 기드온이 승리한 후에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기드온의 이야기는 그가 이제 승리하여서 미디안을 정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렇게 미화시키지 않습니다. 너무나 솔직하게 하나님의 시각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승리케 하셨지만 그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젠 이스라엘 민족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드온 조차도 하나님을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8장에는 기드온을 중심으로 5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에 앞에 4가지는 사람들을 대하는 기드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1절-3절은 같은 민족인 에브라임 족속을 대하는 기드온의 모습입니다.
2)4절-17절 도 역시 같은 민족인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대하는 기드온의 모습입니다.
3)18절-21절 은 적군인 미디안의 두왕을 대하는 기드온의 모습입니다.
4)22절-27절은 이스라엘 전체를 대하는 기드온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28절-35절은 기드온 이야기의 결론부분입니다.
성경의 이렇게 사람들을 대하는 기드온의 모습을 통해 그의 타락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읽어나가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에브라임 족속을 대하는 기드온의 모습입니다.
8장 1절-3절입니다.
“1.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2.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에브라임지파는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대표적인 지파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왜 이들과 논쟁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와 함께 미디안을 진격하게 될 때 그들이 혼비백산 하여 도망치게 됩니다. 이때 기드온이 에브라임 족속에게 가서, 도망치는 군사들을 치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에브라임 지파는 요단 나루턱을 점령하고 그곳으로 도망 오는 미디안을 치게 됩니다. 그리고 미디안의 두 장수인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를 가지고 기드온에게 나아옵니다.
그리고는 바로 기드온을 향하여 자신들의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불만은 왜 전쟁의 처음부터 우리를 부르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군사를 모집한 지파에 에브라임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기드온이 지혜롭게 대답합니다.
“내가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내가 한 일이란 전쟁을 시작한 일입니다. 너희가 한 일은 도망가는 미디안 군사들을 요단 나루턱에서 진멸하고 두 장수를 죽이고 그 머리를 가지고 나온 일입니다.
이 말에 그들의 노가 풀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기드온의 변화입니다.
6,7장에서의 모습과 여기서의 모습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동안 기드온의 캐릭터는 미디안인들이 두려워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타작하던 두려움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실 때 표징을 요구하던 모습이나, 또한 두 번의 양털뭉치 시험으로 여호와의 구원을 시험하던 모습은 그가 얼마만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 그리고 주저함이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느껴지는 기드온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는 미디안과의 승리 후에 대담해 졌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그는 이제 담대해 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불만을 품고 따지는 에브라임 족속에게 능숙한 말솜씨로 처신하는 여유까지 보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잘 읽어보면 그의 태도 가운데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에브라임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 능숙합니다.
어찌 보면 기드온의 탁월한 외교술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의 겸손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뒤에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드온은 이미 여기서부터 타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대화를 잘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2절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기드온은 전쟁의 승리를 자신이 행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것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연약한 이스라엘을 위해 연약한 지도자 기드온을 택하시고 연약함의 상징인 300명의 숫자를 통해 승리케 하신 분은 과연 여호와 하나님 이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것을 잊어버린 듯 합니다.
3절에도 보면,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7장 2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이스라엘이 행여 자긍할까봐 여호와는 연약한 300명의 군사를 사용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능하신 구원을 증거할 수밖에 없는, 결코 자신이 행한 일이라고 자랑할 수 없게끔 여호와는 처음부터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승리를 맛본 기드온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점차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물론 기드온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의 기드온의 모습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과 자기의 유익을 쫓는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미 7장에서 예견되었습니다.
7장 18절을 보겠습니다.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에게 전쟁이 시작되면 이렇게 외치라고 명령하는 장면입니다.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또 20절을 보게 되면., 300명의 군사가 외치는 소리가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 가지고 그가 하나님을 떠났다고 확신하기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를 대면하였던 자입니다. 7장에서 만도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신 것이 5번이나 됩니다.(2절, 4절, 5절, 7절, 9절) 6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고,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구원을 양털뭉치로 시험할 만큼 여호와를 체험적으로 알고 있던 자였습니다. 아직 우리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 단락으로 4절-17절은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대하는 기드온의 태도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300명의 군사와 함께 미디안의 두 적인 세바와 살문나를 쫒게 됩니다. 그들은 쫓으면서 두 개의 조그만 마을을 지나게 됩니다. 숙곳과 브누엘입니다. 기드온은 이곳에서 지친 병사들의 위해 먹을 것을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거절당합니다.
그들이 거절한 이유는 살펴보면, 숙곳과 브누엘은 이스라엘의 도시들입니다. 도시라기보다는 조그만 촌락에 가깝습니다. 아마도 이 두 곳은 미디안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적군인 미디안에게 곡물을 바치고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가 나타나 음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의심한 것 같습니다. 만약 이들을 괜히 도와주게 되면 나중에 미디안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것을 두려워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에게, 그러면 승리의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전쟁관습에 승리를 하면 적장의 손이나 머리를 증거로 삼았습니다.
6절에 보면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말합니다.
그때 기드온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7절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세바와 살문나는 미디안의 왕들입니다. 그들을 죽인 후에 돌아와서 너희를 찢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숙곳과 브누엘은 기드온과 같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합니다.
지금 기드온이 얼마만큼 분노하고 있는지를 잘 표현해 줍니다.
그의 이러한 분노가 어디서부터 나온 것입니까?
자신이 무시당한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자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자신이 거절당한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기드온은 이미 자기 중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대했습니다. 계속 의심하고 증거를 요구하는 그에게 친절하게 대하시며 믿음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드온의 자신을 승리를 의심하는 자들에게 분노를 품습니다.
드디어는 기드온이 미디안의 두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적하여 사로잡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금 숙곳과 브누엘을 들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전에 당했던 수치와 모욕을 갚습니다.
그 장면을 보겠습니다.
13절-17절
“13.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14.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15.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16.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17.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숙곳의 한 소년을 인질로 잡는데 그를 통하여 장로 77명의 명단을 받고 그들을 죽입니다. 또한 자신을 무시한 브누엘의 망대를 헐러버립니다.
이곳에서 보인 기드온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여호와의 전쟁에 임하는 기드온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자기를 무시한 자들에게 보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 잡아 처형하려고 합니다.
18-21절
“18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19.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0.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21.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그것도 자신의 맏아들에게 이일을 시킵니다. 성경은 그가 칼을 빼지도 못할 만큼 어렸다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의 폭력성과 잔혹성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모습을 이스라엘이 보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가 하나님을 떠났다고 생각했을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기드온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간 왕을 세워 가나안의 이방민족처럼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먼저 22-23절을 보면,
“22.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23.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드온을 높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리라 고 말함으로 여호와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드온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이어지는 모습은 그의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24-27절입니다.
“24.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25.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26.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27.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기드온은 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왕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탈취한 전리품을 요구했고 그것으로 결국 에봇을 만들게 됩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입는 옷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금으로 만들어 입었다는 것은 신적권위를 스스로 확보하려고 하는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타락은 계속됩니다.
28-32절입니다.
“28.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29.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30.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31.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32.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
아들이 70명이나 됩니다. 그러니 아내는 몇 명이었겠습니까? 세겜에 있는 첩이 낳은 아들의 이름이 아비멜렉입니다. 이름의 뜻은 ‘나의 아버지가 왕이다’라는 것입니다.
결국 기드온은 죽게 되고 다시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을 또 다시 성경은 반복하여 들려줍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과연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이 글을 읽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또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은 기드온과 같은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은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되면 모든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연약한 군사를 통해 승리를 이끈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만약 그를 믿고 따른다면 참 평화가 올 것입니다. 실제로 기드온이 사는 날 동안 그들은 태평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태평한 세월은 단지 외부적인 침입이 없는 상태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를 누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또다시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은 그러한 그들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단지 미디안의 압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바로 인간의 죄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러한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도대체 인류역사 가운에 우리를 구원할 자가 과연 나올 것인가? 단지 외부의 압제로 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구원자가 탄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후에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대항하여 승리한 이날을 배경으로 한 선지자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이사야 9장입니다.
1절,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이제 고통하는 자에게 더 이상 어두움이 없을 것이란 것입니다.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어둠으로 가득한 땅에 빛이 비추었다는 것입니다.
3절, 이 나라,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곧 그의 백성입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를 창성케 하시고, 즐거움을 더하게 하실 것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얻었다는 것은 전쟁의 승리를 말합니다.
4절,그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억누르고 괴롭혔던 모든 것들을 꺽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미디안의 날과 같이.....
5절, 군인의 값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살라진 다는 것은 완전한 전쟁의 승리를 말하고,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완전 평화의 상태를 말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가? 도대체 어두움 가운데 비취는 이 빛은 무엇이고, 악의 세력을 완전히 꺾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창성케 하시고 즐겁게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6절 7절입니다.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우리의 구원자는 누구입니까? 한 아기입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어떻게 한 아기가 온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기의 어깨위에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권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wonderful counselor,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
그분은 누구입니까?
누가복음 2:11-12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인류의 역사에 태어난 한 아기, 강보에 싸여있는 그 아기, 그는 그리스도 주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다스릴 때 만이 참 평화가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 어떤 탁월한 자라 할지라도 다 타락한 죄인들입니다.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이를 이룰 것입니다. 우리의 왕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그 날 모든 것은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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