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2-21 15:33

사사기 강해 7. 길갈의 승리와 보김의 통곡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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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갈의 승리와 보김의 통곡

 

사사기 2:1-4

1.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4.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5.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오늘 본문은 사사기의 역사적 서론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이스라엘의 죄에 대하여 고발하는 장면입니다.

 

먼저 1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누구인가?

원문을 보면 말라크 야훼”, 여호와의 천사라는 의미입니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종으로 구약성경에 총58번 등장합니다. 사사기만 19차례 등장하니까 이 시기에 여호와의 사자가가 매우 분주하게 활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천사는 빛나는 흰옷을 입고 광채가 나며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는 존재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와 동일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다가 대화가 진행되는 중에 또는 그가 떠난 후에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사기에 나타난 그의 역할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데 주로 권면, 명령, 책망, 구원, 저주 등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식으로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그가 하나님의 천사였음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을 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토대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길갈에서 도대체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호수아 4장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 여리고 성을 함락하기 전에 유숙했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 전투를 시작으로 하여 가나안 정복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여호수아 3:15절에 보면 곡식 거두는 시기로 요단 물이 언덕까지 넘치는 때였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건너는 방법을 알려주시는데, 먼저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첨벙첨벙 요단강으로 들어갈 때 흐르던 물이 일시적으로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멈추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을 건너기 시작합니다. 제사장들은 여전히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멈추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각 지파에 한 사람씩 택하여 총 열두 사람을 택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물이 끊어진 요단강으로 들어가 언약궤를 들고 서 있는 제사장들 주변에서 돌을 하나씩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유숙할 곳에 두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12명의 사람이 들어가 돌을 들고 나와 그곳에 쌓은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인가? 길갈이었습니다.

 

<여호수아 420-24>

20.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길갈에 12돌을 세우시고 그것을 기념하게 하셨습니다.

길갈에 12돌을 세운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자녀들에게 교육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4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2세대들입니다. 이미 1세대들은 40년 광야생활동안 다 죽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얼마만큼 생생하게 체험했는가에 있습니다.

 

출애굽 1세대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그 끔찍했던 10가지 재앙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이 홍해를 가르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물이 없어 원망할 때 반석을 쳐 물이 나오게 하셨고 고기가 없어 원망할 때 하늘로부터 메추리를 내리셔서 고기를 먹이셨던 일들 또한 매일 아침 마나 만나를 내려 주셔서 일용할 양식을 통해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하게 체험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출애굽2세대들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대부분 광야생활 가운데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전의 애굽의 노예생활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매일 내려주시는 만나가 기적이 아니라 일상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매일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놀라운 기적이 매일 반복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일상이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기적의 만나가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홍해 사건을 체험하지 못했던 자들, 기적을 일상으로 여기며 살았던 자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매일 아침 먹는 만나는 일상이었기에 그들은 감격하거나 놀라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4:23-24>을 다시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2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고 강한 분인가를 체험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항상 하나님만을 경외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열두 돌을 세워 그것을 기념하게 하심으로 자신들이 체험한 그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을 계속해서 교육하여 그들도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인가 하면 바로 길갈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 도하 사건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39-10>

“9.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이것으로 알리라는 것은 가나안땅의 강하고 두려운 족속들 앞에 섰을 때 요단강을 건넌 체험을 간직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쫒아낼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전투 가운데 높고 단단하고 거대한 성벽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거구가 장대한 아낙자손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요단강을 건넜던 과거의 체험을 기억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전쟁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신 후에 그것을 기억하여 하나님의 전쟁을 싸우게 하시고 또한 계속해서 후대에게 교육하시는 방식으로 그분의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계속해서 기적을 일으키시지 않습니다.

아주 긴급하고 특별한 경우에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우리 삶에 허락하신 몇몇 체험들은 반드시 기억되길 원하시고 그 기억을 통해 우리 삶에 중요한 순간에 적용되어지길 원하십니다. 또한 그러한 체험들이 우리 후손들에게도 전달되어지길 원하십니다.

 

예화) 뉴질랜드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할 때입니다. 당시 저는 학교청소, 기타과외 등을 하며 돈을 벌었고 아내는 일식집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교인선물로 액자를 사러 마트에 갔는데 주머니에 10불짜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 주의 생활비 전부였습니다(참고로 뉴질랜드는 주급을 받기 때문에 몇 일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싸구려 액자는 5불 좋은 것은 10불이었습니다. 5불짜리 고르려다 잠시 망설인 후 10불짜리를 샀습니다. 계산을 하고 마트 밖을 나오는데 늦가을 쓸쓸한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아내와 터덜터덜 주차장을 걸어오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째 이런 날 월남국수가 먹고 싶냐?”

차에 타려는 순간 저쪽에서부터 한 더미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슬로우비디오처럼 제가 있는 곳으로 원을 그리고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파란색 종이가 한 장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제 발 앞에 떨어진 것입니다. 주어보니 20불짜리 지폐였습니다.

돈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물론 아무도 없길 바랬습니다만?)

20불을 손에 들고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아내는 자기야 또 있나 찾아봐

그리고 고개를 숙였는데 차 밑에 또 한 장의 지폐가 있는 것입니다.

혹시 누군가 흘린 것일지 몰라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돈을 들고 우리가 어디로 갔겠습니까?

월남국수 먹으러 갔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을 여러 번 겪으면서 저희 가정 안에 형성된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돈을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면서도 돈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건강하니까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목사가 성경 연구해야 되니 자기가 일하겠다고 하여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몇 개월 안 되어 재정을 채워주셨고 지금까지도 돈 때문에 힘든 일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모델이 되어서 어떤 계획을 하고 결정을 할 때마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해 주시겠다 하신 말씀을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길갈의 돌들을 너희가 기억하느냐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멈추게 하사 마른땅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 그것은 너희의 선조가 홍해를 건널 때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며, 출애굽의 40년 역사 동안 일상이 되어버린 기억의 사건들을 기억하고 기념해야하는 그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1-2

“1.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어찌하여 가나안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제단을 헐리 않았느냐?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몇 주 동안 살펴보았습니다.

가나안의 문화에 매료되어 결국 동화되어 버린 하나님의 백성들

그들은 삶의 목적이 자신들의 행복이었고 그들을 이루고자 풍요와 안정을 추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장받기 위해 가나안의 풍요와 안정의 신들의 제단을 헐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목소리에 끌려 결국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소리에 너무 열려 있으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책망이지만 이 책망 안에는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여호수아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쫒아내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을 남겨 놓아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쫒아내지 않은 신들이 올무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좋다고 끌어안은 것이 결국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되어 계속해서 너희를 찌르고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좋다고 끌어안은 세상의 죄들이 결국 우리를 계속해서 찌르는 옆구리의 가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타협하고 합리화 해 버린 죄들이 결국 우리를 찌르는 가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끌어안은 우상들이 우리 삶에 발목을 잡고 계속해서 성가시게 할 것입니다.

안식의 땅에 들어왔으나 결코 안식할 수 없는 삶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쫒아내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징계하시고 깨닫게 하시려고 허용하시는 옆구리의 가시이며 올무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징계를 받는 다는 것은 그나마 은혜를 받고 있다는 증거임을 아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배역한 이스라엘을 찾아오시고 그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의 의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징계를 받을 때 돌아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저희 희수가 엄마한테 제일 많이 혼나는게 주방에 들어와서 물건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행여나 가스렌지에 손을 데거나 끊는 물에 데일까 걱정해서 예방차원에서 많이 혼이 납니다.

어제는 엄마가 건들지 말라는 밥그릇을 자신이 옮기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입니다. 전자랜지에서 꺼낸 것이라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계속 고집을 피우자 엄마가 그래 한번 잡아봐라 하고 놔주었습니다. 밥그릇을 두손을 감싸자 마자 고함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또 할래? 아니!

 

부모는 자녀의 안전을 위해 최대한 신경을 써서 훈육을 합니다. 그래도 계속 말을 안들으면 마지막에 뭐라고 합니까? 그래 한 번해봐라!

그것은 자녀를 포기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라고 깨닫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삶에 이러한 징계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돌이켜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징계의 선언 앞에서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의 이름을 보김통곡 또는 통곡하는 사람들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소리 높여 울었으면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까요?

 

그러나 그들의 통곡은 회개의 통곡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신세한탄의 통곡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지냅니다. 이러한 제사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고통스런 현실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제사였습니다.

그들은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배를 수단 삼아 고통을 벗어나고 한 것입니다.

마음의 회개 없이,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자복 없이 드려지는 예배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십니다.

 

이제 우리의 삶을 돌이켜 봅시다.

내 삶의 길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흔적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십니까?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그러한 은혜들이 전수되고 있습니까?

행여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 속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돌이키셨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그 길 가운데 서 계십니까?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 표현입니까? 아니면 우리 삶의 형통을 보장받기 위하 수단으로 드리십니까?

 

이 말씀 속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고, 행여 내 삶에 여전히 버리지 세상의 삶의 방의 방식은 없는지, 또한 우상은 없는지 살펴보시고 그것을 버릴 수 있는 단호한 결단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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