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1-30 15:11

사사기 강해 4. 하나님의 백성의 실패와 그 원인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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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4. 하나님의 백성의 실패와 그 원인

 

사사기 1:17-21

17.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우리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전쟁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이방인이었던 겐족속이 어떻게 가나안땅의 여리고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여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겐족속의 거주 이야기는 이곳에 잠깐 삽입된 듯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이 결국 45장의 드보라 때의 승리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게 되는 내용과도 연결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피게 될 내용은 유다지파와 더불어 다른 이스라엘 지파의 가나안정복전쟁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실패했으며 그 실패의 이유가 무엇이지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먼저 17-20절 까지가 유다지파의 정복이야기가 계속됩니다.

17절은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족속을 쳐서 진멸시켰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성읍의 이름을 스밧이라고 하지 않고 호르마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호르마라는 뜻은 진멸이라는 의미입니다.

17절은 유다지파의 승리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신명기 7: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이 말씀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18-20절에 반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글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이곳은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의 세 곳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서 블레셋의 도시를 기록할 때는 가드와 아스돗을 포함한 5개의 도시전체를 언급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개의 도시가 빠졌다는 것은 부분적인 승리였으며 불안한 성공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엇 때문에 블레셋을 진멸, 즉 호르마 시키지 못하였는가?

이에 대해 19절에서 대답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산지주민들은 쫒아낼 수 있었지만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어 쫒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단강 유역의 평지지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에게헤를 항해해 올라온 민족들입니다. 그들이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파괴하고 마침내 가나안의 남동쪽 연안가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들은 해양민족답게 주변나라들의 문화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철기문화입니다. 철병거는 산악지형에서야 무용지물이지만 평지에서는 무시무시한 무기로 사용됩니다.

성경은 유다지파가 블레셋의 철병거로 인해 결국 정복전쟁에 실패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19절을 잘 보시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다는 표현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지 주민을 쫒아낼 때는 함께 하시고 평지의 철병거 부대와 싸울 때는 함께 하지 않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산지든 평지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철병거 때문이었을까요?

19절은 마치 철병거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쫒아내지 못했다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아무리 철병거 900승으로 무장한 가나안왕 야빈이라 할지라도 드보라는 통해 진멸시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철병거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는데 왜 실패한 것일까요?

우리가 본문을 살펴보면, 쫒아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계속됩니다.

17절에도 므낫세가 ...쫒아내지 못하매...”

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쫒아내지 못하였으며...”

29에브라임이...가나안 족속을 쫒아내지 못하매...”

30스불론은 쫒아내지 못하였으므로...”

31아셀이...쫒아내지 못하고...”

32쫒아내지 못함이었더라

 

그래서 우리는 마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지만 그들의 군사력이나 지혜가 부족하여 쫒아내지 못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런데 28절을 보시면

28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여기는 쫒아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쫒아내지 못한 것과 안한 것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쫒아내지 못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의미가 되지만 쫒아내지 않은 것은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사사기에 나오는 쫒아내지 못했다는 표현은 쫒아내지 않았다는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쫒아내지 않은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고 당연히 쫒아낼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거짓과 불법의 유혹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그것을 쫒아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쫒아내지 않는 것입니까?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로 합리화 시켜 보지만 사실 그렇게 안한 것입니다.

몰라서도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현실을 몰라서 그래.

 

저희 가정이 외국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삶의 비결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이것은 경험과 체험으로 터득한 것이어서 사실 비싼 정보중에 하나인데 가르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진행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분이 일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럴만한 배경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정직하고 솔직하게 어떤 일을 진행해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다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무언가를 해서 목적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거든요.

 

저는 그러한 상황을 자주 경험해서 삶의 원칙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LH에서 전세임대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에 살고 있던 집이 비좁아 지금의 집으로 이사올 때 잘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등기를 마치지 않은 집으로 이사한 것입니다. 저희는 등기가 곧 된다고 해서 이사한 것인데 계속해서 미뤄지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건축주가 건물을 팔고나서 등기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재계약날은 다가오고 만일 그때까지 등기가 안되면 저희는 다른 집으로 이사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사비용이며 또 집을 구하는 것 또한 만만치가 않은 것이죠.

그런중에 건축주가 등기를 마친 자기 건물이 있는데 그곳으로 이사한 것으로 서류를 조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사비용도 들지 않고 그리고 지금 집이 등기가 마치면 다시 지금의 집으로 계약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

사람이 조급해 지니까 그렇게 하고 싶더라고요. 더군다가 당시 무더위로 인해 희수를 데라고 이사하려니 막막하더라구요. 이것 때문에 2개월은 끙끙알았던 것 같아요. 이런 저런 방법을 고안해 내느라 머리도 아펐구요.

 

아내와 이야기 하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야.”

그리고 재계약일을 하루 앞두고 LH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등기가 안된 집에 이사를 했고 지금 살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했더니 잠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상의를 한 후에 말하길, “이전의 LH전세 임대는 파기가 되었습니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신청하세요. 그러면 저희가 해 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도 이러한 경험은 자주 있었습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면 돌파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너무나 자주 경험합니다. 그런데 꾀를 내고 머리를 써서 하는 일들은 대부분 실패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무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 몫입니다. 그것까지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아요. 우리에게 맡기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달아보십니다.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도 정직할 수 있는지,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지 않는지 보십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세상의 방식과 쉽게 타협합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 시킵니다.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오히려 나무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 갈렙이 다시 언급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갈렙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그의 나이가 84세의 노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며 순종하였던 갈렙.

그는 거대한 아낙의 세 아들, 누굽니까? 10절과 연결되지요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사사기 1장에서 갈렙 가문의 이야가기 중간에 삽입되어, 모든 실패의 역사와 함께 비교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갈렙처럼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 안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안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철병거를 가진 블레셋의 강인함 앞에서 드보라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세상 앞에서 다윗처럼 물맺돌 몇 개 들고 하나님 의지하여 전쟁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지 못하고 세상의 삶의 방식에 쉽게 동화되고 타협되는 것일까요?

28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30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3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5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그들을 쫒아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을 살려두고 노역을 시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을 노예로 삼아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이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들을 진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충분히 승리는 보장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살려둠으로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경제적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들을 노예로 삼아 부리면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 때문에 세상의 삶의 방식과 타협하며 살아갑니까?

경제적 이유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돈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무엇 때문에 성도들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가?

돈 때문입니다.

 

성경은 돈을 죄악시 하지 않습니다. 돈은 선한것도 악한것도 아닙니다. 중립적입니다. 그것을 정직하게 벌어 가치있게 사용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이 악하다고 하지 않고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말세의 징조를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성도의 마땅한 삶의 자세를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목사의 자격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3: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비인격적인 돈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 재물이라는 단어가 맘몬이라는 것인데 돈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김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신적존재가 되어 섬김의 대상이 되고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분의 말씀을 생명의 도리로 붙잡고 살며 거룩함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는 아니 살지 않는 대부분의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었고 사랑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선택의 순간에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중대한 선택인 결혼 상대자를 결정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많은 사람이 능력을 꼽습니다. 좋은 말로 능력이지 돈 잘 버는 사람 아닙니까?

직장을 선택할 때도 연봉이 얼마인지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마음의 중심에는 늘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감에 있어 도움이 되는가? 이러한 기준들이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실패합니다.

 

세상이 많이 정직해지고 깨끗해졌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평사원들이야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힘이 생기고 권력이 생기면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하죠.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돈처럼 보이고 돈이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 삶을 흔드는 송두리째 흔드는 가장 큰 이유가 돈 아닙니까?돈만 뭔가 할 것 같지 않습니까?

돈이 없어 내 삶이 힘겹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미 돈이 섬김의 대상이 되고 사랑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것을 기준으로 선택하며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의 삶의 목적이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지금,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까를 묻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현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홀로 있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드러내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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