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2-06 14:23

사사기 강해 5. 타협된 1%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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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실황이 녹음되지 않아 따로 녹음하였습니다.

 

타협된 1%

 

사사기 1:22-26

22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3.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4.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6.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사사기 강해 5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사기 서론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본문의 보면 요셉가문의 정복이야기가 22-29절까지 기록되어 있고, 30절 나머지 지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2절에 보면 요셉가문이...”하면서 나오죠?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이 누구입니가?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그래서 27절에 므낫세가 나오고 29절에 에브라임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요셉가문의 정복이야기를 보면 벧엘을 정복할 때 그들이 저지른 실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벧엘을 정복할 때 먼저는 정탐정을 보내어 그곳의 상황을 탐지하게 하였습니다.

아마도 두 사람이 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도 두 사람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밀스럽게 정탐하던 중에 그 성으로부터 나오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군사작전시 특히 정탐중에는 누구를 만나든지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살려두게 되면 전쟁계획이 노출되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청하기를 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치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서 성읍의 입구란 비밀통로를 의미합니다. 그곳을 가르쳐 주면 너를 선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선대라는 용어는 헤세드라는 단어입니다. 헤세드라는 단어는 자비라는 의미인데 언약적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단순히 자비를 베풀어 주겠다 또는 선대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이것을 너와 내가 반드시 지키기로 언약하고 그 약속에 신실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왜 중요한 것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나안정복 전쟁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정복 전쟁시 반드시 그들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나안정복 전쟁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간혹 이것을 잘 못 이해하여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전쟁을 명하시고 어린아이로부터 모든 사람을 진멸하라고 하는지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께서 무자비할 수 있는가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우리가 첫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가나안땅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나라를 이루시기로 계획하신 곳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나라가 많지만, 하나님은 가나안을 지목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먼저 하나님의 백성을 구성하십니다. 인류역사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내시죠.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셨죠? 첫 번째가 무엇이었습니까? 씨입니다. 네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12:2). 두 번째가 무엇입니까? 땅입니다(12:7). 그 땅이 어디였습니까? 가나안땅이었습니다(12:6)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민족을 이루시고 약속하신 땅으로 보내사 그 곳을 중심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들 야곱 그리고 야곱의 아들 요셉으로 이어지는 창세기의 역사 흐름속에 결국 70명의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준비된 것입니다(46:3,27). 무엇 때문에 애굽에 준비된 것입니까? 당시 팔레스타인 땅에 불어 닥친 7년 동안의 기근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래서 미리 요셉을 애굽을 총리로 세우시고 그의 보호아래 애굽의 아주 비옥한 고센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안전하게 보호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결코 잊지 않았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이었습니다. 비록 애굽에서 요셉의 보호아래 우리가 안전하게 거하고 있지만 우리는 결국 하나님께서 명하신 약속의 땅으로 가야되는 민족임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47:27-31

27.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결코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가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될 것이지만 이곳에 자신을 묻지 말고 선영에 묻으라고 신신당부 한 것입니다. 이 선영은 선조들의 무덤을 말하는데 그곳이 어디인가 하면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입니다.

 

창세기 23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를 향년으로 죽게 되죠. 그곳이 어디였는가 하면 가나안의 헤브론 땅입니다.

 

<23:1-6>

1.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19절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헤브론!

여러분, 많이 들어본 지명 아닙니까?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며 정복하여 얻은 땅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가 정말 기묘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갈렙이 그 땅을 원한 것은 그 땅이 비옥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선조들의 묘가 있는 그 곳,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진행되었다는 상징적 장소 아닙니까? 그곳을 원했던 것입니다.

 

다시 창세기 49장으로 돌아와서, 야곱은 바로 그 헤브론땅의 막벨라굴에 자신의 선조들과 함께 묻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아들 요셉에게 네가 결고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곳으로 가야하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은 여기서 호화롭게 애굽의 총리로 있고 모든 권세와 명예가 네 것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곳으로 가야하는 자임을 결코 잊지 말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창세기 50:12-13>

12.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그렇다면 요셉은 어떠했을까요? 창세기 50장으로 넘어가면 요셉의 죽음 이야기가 기록됩니다.

22절부터 보겠습니다.

<50:22-26>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도 자신의 아버지 야곱과 마찬가지로 너희가 그곳으로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이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이곳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오래전 내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으로 우리는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죽지만 나를 이곳에 장사하지 말고 내 해골을 반드시 가나안땅에 가지고 가라고 유언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약속, 가나안땅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그 비전과 소망이 창세기에 절절하게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출애굽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땅에서 번성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 땅에 준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이제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워 출애굽을 명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을 나올 때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나옵니다.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가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땅에 거대한 민족들이 있고 성벽이 높다는 정탐꾼의 말을 듣고 가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역사에 그들이 반기를 든 것입니다. 오히려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 좋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돌리시면서 다 죽이신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 뭐가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하지만 창세기의 역사를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이후 모세는 가나안땅이 바라다 보이는 느보산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도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죠.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끕니다. 여호수아 24장은 여호수아가 정복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이스라엘 모든 민족을 모으고 그들에게 하는 마지막 설교입니다.

 

<여호수아 24:1-5>

“1.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4.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여호수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역사에 대하여 처음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땅과 또한 그 씨을 번성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우리가 그 하나님을 섬기자고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도 이에 결단하기를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그리고 나서 마지막 장면이 너무 멋집니다.

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모세가 가지고 나왔던 그 요셉의 뼈를 가나안땅 세겜에 묻는 것입니다. 마치 한편의 영화같지 않습니까? (막 성경이 읽고 싶어지죠? 집에 가서 창세기부터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습니까?)

 

요셉의 뼈를 가나안땅에 묻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그동안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 때에 약속하신 그 약속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표현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역사적인 인식 가운데서 가나안전쟁을 이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철저하게 순종만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가나안 민족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국주의 전쟁이 아닙니다. 영토 확장 전쟁도 아니고 지역 패권을 쥐기 위한 것도 아니며 전쟁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거나 그들을 노예로 삼아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가나안땅에 관영한 죄악을 무너뜨리고 그곳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을 세우는 거룩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한 사람을 살펴준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인식가운데 이미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의 역사가 사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약속과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입니다.

역사를 잊은 백성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잊은 것입니다.

 

만일 의사가 암을 수술하는데 큰 암은 다 제거하고 한쪽에 작은 암은 별것 아니니까 놔두자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그것이 온몸에 퍼져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100%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99%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남겨진 1%가 우리에게 올무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요셉족속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요셉족속입니다. 그 조상이 요셉입니다. 자신의 뼈를 가나안땅에 묻으라고 했던 요셉입니다. 그 족속을 말합니다. 그 살려둔 한 사람이 결국 또 다른 루스를 건축합니다.

 

26절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그는 또 다른 루스를 건축하여 자신이 해왔던 거짓과 탐욕과 우상숭배의 문화를 지속해 나갔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쉽게 타협하는 죄악이 마침내 성을 이루고 이후에 강력하게 존속하게 됩니다.

우리가 타협한 1%의 죄는 마치 암처럼 마침내 조직과 세포를 죽여 치명적인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돌이켜 봅시다. 내 안에 타협된 1%는 무엇입니까?

다 잘했다구요? 지금껏 잘 순종해 왔다고요? 그런데 왜 그것 하나 물고 그러냐구요?

아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전함을 원하십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지요?

그 하나가 이미 열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보여지는 것은 하나의 타협이지만 이미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첫 번째는 역사를 잊어버린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그 역사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동안 나와 함께 하신 그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는 순종보다는 성공을 쫒아간 결과입니다.

여러분!

요셉가문에게 있어 승리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승리는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22절에 요셉족속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실수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마치 우리의 성공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내가 성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간증할 거야!

이것이 한때 한국 젋은이들을 유혹했던 고지론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고지론을 설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을 자랑합시다. 높은 고지에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자랑합시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불법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그들을 강단에 세우고 사람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여러분 이 집사님은 대통령입니다. 이분은 국회위원입니다. 이분은 장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하나님 잘 믿으면 이와같이 됩니다. 선전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최근 서지*검사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성공신화에 함께 춤춘 결과 한국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지독히도 얻고 싶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에 관심이 있으세요.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고 높은 자리 올라가고 명예를 얻고 하는 것에 관심두지 마세요.

그것을 목적삼아 살아가지 마세요.

여러분이 그쪽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여러분의 영혼도 타락하고

자녀들의 영혼도 타락시킵니다.

왜냐하면 그쪽으로 인도할 것이 뻔하거든요.

 

지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세요. 그것은 이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에 분당의 교회 부목사로 사역할때입니다.

한 권사님 댁에 심방 가서 기도제목을 나눌 때입니다.

자신의 아들기도를 부탁하십니다.

중고등학교때 공부도 잘했고 신앙도 너무 예쁘게 자라서 목사님 사랑도 많이 받았고 교회 회장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3이 되어 어머니는 일 년 동안만 주일에 예배를 쉬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후 아들은 명문대학에 들어갔고 이제 어엿한 대기업에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면 말하시길

그 이후로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쉽게 타협한 1%가 우리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보이는 눈앞의 이익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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