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3-13 13:00

사사기 강해 10. 사사를 세워 구원하시는 하나님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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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10. 사사를 세워 구원하시는 하나님

 

사사기 2:16-23

16.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사사기 강해 10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그의 백성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여줍니다.

 

가나안땅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진노의 대상이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 자녀입니다.

불신자가 아니라 성도입니다.

 

그래서 이 진노는 불법을 행한 것에 대한 공적인 진노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진노입니다. 이 진노는 마치 간음을 행한 아내를 향한 남편의 진노와 같습니다.

최근 미투운동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한 아내의 남편이고 자녀의 아버지들입니다. 사람들은 권력과 지위를 사용하여 성추행과 성폭행을 한 것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은 과연 어떠할까? 그들도 진노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진노는 세간 사람들의 진노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그들의 추악한 행동에 대하여 지탄하는 정도지만, 그들의 가족들이 느끼는 진노는 가슴이 찢어지는 진노입니다. 평생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간직한 진노입니다.

 

이러한 진노는 사랑과 신뢰 그리고 삶의 아름다운 추억이 기반이 된 진노입니다.

그저 욕하고 끝날 수 있는 진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향한 진노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신 그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자녀라고 했고, 아내라고 불렀습니다. 그 만큼 사랑하신 것입니다.

스바냐 3:17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삶에 그러한 존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바라보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한 존재, 잠잠히 사랑하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할 만한 존재.

아마도 자녀들일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와 같이 추악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비난하고 지탄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가슴으로 울며 아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고 그들을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품을 떠나려고 하는 자녀를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래 한번 살아보라고 붙잡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상속받아 집을 나가려는 탕자를 놓아주듯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놓아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이 잘 살았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놓아주셨을 때 잘 살게 되면 그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자녀들을 결코 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날 때 재앙이 임했습니다. 주변 국가로부터 침략를 받고 압제를 당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군사력이 약하고 전략이 부족하고 무기가 없어서 패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5절에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재앙을 내리는 주체가 가나안이 아니라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호와의 손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은 그의 자녀들에게 축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재앙을 내리기도 하십니다.

이 재앙도 사실은 은혜입니다. 그의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려서라도 돌이키게 하려는 부모의 징계인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괴로움이 심했습니다.

그들은 괴로운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18절에 보면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그러나 이 부르짖음은 통회와 회개의 부르짖음이 아닙니다.

단지 현실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부르짖음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원어로 메타노이아입니다. 방향을 바꾸다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세상을 추구하던 인생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인생을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타락의 길로 나갑니다. 그리고 고통스런 현실이 닥쳐오면 그 괴로움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깊이 통회하며 자복하며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번 살려달라고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부르짖음에도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건져주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은 사사를 세워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16절에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먼저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연단하고 훈련시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하실 때 사사들을 세워 구원하십니다.

사사라는 것은 영어로는 심판자라는 의미 이지만 성경에서 보여진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나안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 우리 눈에 보기에 자격미달이었습니다.

에훗이라는 사사는 왼손잡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드보라는 여성입니다. 당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소외된 자를 의미합니다. 입다는 창녀와 길르앗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기에 전혀 흠모할 것이 전혀 없는 자들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명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은 성경전체에서 일관성있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세 번씩이나 거짓말 한 자였습니다.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동족을 핍박하는 자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믿음의 영웅 다윗은 간음죄를 범한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12명의 제자들도 당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교육을 잘 받은 탁월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고문하고 옥에 가두는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였고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한 자로 쓰임받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자격미달인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주변 사람의 도움 없이 이 자리에 온 분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누군가 우리가 넘어져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내 자신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로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길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연약한 자를 사용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전 1:26-31>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들의 기도와 헌신과 열정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연약한 사사들을 세워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지만 그들은 또 다시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17-19

17.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들은 무엇 때문에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버리는 것일까요?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사사들을 보내어 구원하시지만, 그들에게 괴로움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 보다 더욱 타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한번에 타락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타락합니다.

우리 주변에 신앙 좋은 어떤 분이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재정적인 비리가 드러나게 되면 사실 이미 그 오래전부터 이미 타락이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타락할 때는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한번 두 번 하게 되면 죄에 대한 내성이 생겨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몸에 암의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치료의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죠.

대부분 치료하신 분들은 우연히 건강검진 때 발견했거나 빨리 발견한 경우입니다.

 

우리의 죄는 마치 암과 같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정신을 타락시킵니다.

 

그나마 사사들이 있을 때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고 나며 더욱 타락하고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창세기 3장의 타락 사건이후에 우리는 죄를 다스려야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4:7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우리가 비난하는 모든 죄가 사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그것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또는 들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의 영향력은 어떤 힘과 권위 아래서만 다스려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과 권위가 사라지면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성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사사라는 하나님의 세우신 권위와 힘 앞에 그 나마 제어되던 죄의 영향력이 사사가 사라졌을 때 더욱 급속하게 확장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시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우리를 다스리는 권위와 힘이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타락합니다.

우리가 그나마 이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그 권위와 힘이 우리를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눈에 흠모할 것이 전혀 없는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랜 후에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구원자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1-3>

1.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예수 믿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구원자를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성령의 힘과 권능으로 우리의 죄를 다스리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우리의 사사가 되시어 우리를 지도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죄의 본성이 올라올 때 성령님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함께 아파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아십니다.

그 결과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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