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3-27 11:28

사사기 강해 12. 반복과 항복의 역사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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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항복의 역사

 

사사기 3:7-11

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인간의 인격성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인간의 인격성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의 형상이라는 것은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며 또 행동하는 지, , 의가 겸비된 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존재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말씀 한 것에 대하여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동물이나 식물은 자연질서와 본능에 의하여 움직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빛이 있으라(1:3) 했을 때 빛이 생겨났고 빛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연의 질서에 의해 움직여 집니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됩니다(1:11). 그것들은 창조주가 부여하신 존재방식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달랐습니다. 그들에게는 금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창세기 2:16-17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2:16-17)

 

그들에게 이것을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자연질서와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또는 창조주가 프로그래밍한데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창조주의 뜻에 순종할 수도 거역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반역과 타락을 각오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는 존재였다면 그 존재는 로봇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는 굳이 창조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로봇이 아무리 인간과 똑 같다고 하여도 그를 보며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구나(스바냐3:17)”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2:23)”

그저 참 잘 만들었다고 할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창조주의 뜻에 반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생각과 판단과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그런 존재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분과 인격적인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인격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탁월하게 나타내고 그분께 한없는 기쁨을 올려드리기도 하지만, 반면 그들이 타락했을 때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추하며 악해집니다.

 

성경에 흐르는 두 개의 큰 물줄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반역한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보여줍니다. 또 한편에서는 그러한 반역한 인류역사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시고 구원해 나가시는가를 보여줍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반역한 인류의 구원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그분의 성품과 일하심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이해를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설명으로 듣지 않고 성경의 사건을 통해 체험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이 사랑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 사건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서술이 아니고 설명이 아니고 사건들을 보여주심으로 그것의 실제성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고 말할 때는 그 속에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는 십자가 사건을 바탕에 깔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그분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성품과 일하심이 사사기에 기록된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설교나 묵상을 통해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보고 또한 내 자신의 죄악과 연약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반역한 인류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선택된 백성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 과정 가운데 사사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갈 때에 우리의 삶에 개입하심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섭리 가운데는 하나님의 시험이 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이 하나님의 시험이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사기가 어떻게 보여주는 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약적 신실성

두 번째로 언약에 대한 이해입니다.

먼저, 어떻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 또는 자녀가 되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7-8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 삼으신 것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백성,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결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시면 자동적으로 그의 백성이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격적인 존재는 힘이나 권력이 재력이나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사랑을 끌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 존재가 하나님일지라도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끌어내십니다. 강압하거나 일방적이지 않으십니다. 창조주이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찾아오시고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반역한 그의 백성일지라도 말입니다.

 

먼저 그들을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법적으로 묶어버리십니다.

그것이 언약입니다. 언약이라는 것은 인격적인 두 대상을 법적인 양식으로 묶어버리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묶었다는 것은 그 관계의 견고성과 책임성을 의미합니다.

언약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결혼식에 그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전혀 남남이었던 두 남녀가 언약을 통해 부부가 됩니다. 무엇을 언약하였습니까? 내가 당신의 남편이 되고 당신의 나의 아내가 되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요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부부의 신의를 다하고 사랑할 것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약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국가에 신고함으로 부부로서의 법적인 권리와 책임을 부여받게 된 것입니다.

 

2개월 전에 둘째 입양 때문에 조사관 면접이 있었습니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가정법원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만일 아이에게 장애가 발견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첫째를 입양했을 때는 자신 있게 그럴지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양육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첫애를 키우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막상 아이가 아파 평원에 입원해보니 아픈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 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만일 장애가 있게 되면 입양을 고민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입양이 법적으로 판결된 이후에는 그가 장애가 있던 이후에 사고를 치던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의성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입니다. 언약을 맺게 되면 그 관계는 견고해질 뿐만 아니라 책임이 뒤따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압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을 불러내시고 시내산에게 그들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출애굽기 19:5-6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부가 되고 그분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날 때마다 선지자를 통해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희 하나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불러내서 언약을 통해 백성, 신부, 자녀를 삼으시고 그들의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신명기 6:4-5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랑이라는 것, 마음이라는 것이 강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을 얻는 것, 마음을 얻는 것은 누가 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인격적인 항복과 굴복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무엇에 대한 항복과 굴복인가 하면 상대방의 인격과 사랑에 대한 항복과 굴복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심으로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시고 사랑을 깨닫게 하심으로 그의 백성을 항복시킵니다.

시험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품과 사랑을 드러내시는 통로인 것입니다.

 

사사기 1:1-2

1.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어떤 시험의 상황을 만드시는? 바로 전쟁입니다.

전쟁만큼 인간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도 없습니다.

전쟁의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이스라엘의 실상을 들추어내십니다. 그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그 감추어진 죄악의 실상을 들추어내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전쟁터 아닙니까? 학생들은 입시전쟁, 청년들은 취업전쟁, 직장인들은 성과를 내기 위한 전쟁, 사업이나 장사도 전쟁입니다. 결혼하면 육아전쟁, 신혼부부는 주도권 싸움. 우리 인생이 전부 전쟁입니다. 거기서 여러분들이 보여준 모습은 무엇입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셨습니까? 사랑하고 용서하고 인내하셨습니까?

아니죠. 우리는 고함을 질렀고 폭력적이었으며 지극히 이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봐라, 너희 꼴이 이게 뭐냐?

너희 내 품을 떠나서 결국 이게 뭐냐?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을 향할 때는 공의롭지만 자녀들을 향할 때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백성들은 어떻게 합니까? 돌아갑니다. 두 손 들고 항복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해 그분의 진짜 자녀를 감별해 내시는 것입니다.

시험을 받으면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로 나오는 자들은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깨닫게 됩니다.

그 결과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발적이고 기쁨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우리를 그 자리로 끌고 오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삶을 시험을 통해 흔드시고 그 속에서 내 자신의 죄악과 연약함을 드러내시며 그것을 품어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신실함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기쁨을 통해 속삭이시고,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며, 고통을 통해 소리치신다.”

 

이것이 우리 삶에 반복되는 것입니다.

7절에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행을 행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깁니다. 8절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왕 구산 리스다임의 손에 파십니다. 구산리사다임이란 두배로 악한 구산이란 뜻입니다. 이름이라기보다 그의 별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악독한 지배자의 압제를 8년 동안 받게 하십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들이 부르짖자 하나님은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가 바로 옷니엘입니다. 그 결과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러한 싸이클은 사사기가 진행되면서 계속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의 백성들의 삶 속에 이러한 불순종과 그로 말미암은 고통 그리고 고통으로 말미암은 부르짖음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끝날 때까지 반복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죄는 강하고 끈질깁니다. 그것을 계속해서 덮고 품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성경전체를 통해 흐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복의 역사 속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무엇인가?

자발적 순종과 경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이것을 이끌어내고자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과 일하심이 인류역사에 어디까지 뚫고 내려오는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사사를 세우고 왕을 세우고 선지자를 세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셨지만 그들이 죽고 나면 또 다시 타락했던 것입니다.

사사기 3:11-12

11.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12.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결국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품과 그분의 일하심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구약에서 보이셨던 그 하나님의 성품 그대로였습니다. 인간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죄인을 정죄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향해 사람들이 돌을 들어 치려할 때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며 우리 안에 있는 숨겨놓은 죄악을 들추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향해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간음한 그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향해 우리는 돌을 들었고 채찍을 들었으며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죽인 것이 누구입니까? 2천 년 전의 유대인입니까? 아니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 속에 죽어가던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역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자들을 향해 용서를 선포하셨던 주님이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에 우리가 항복한 것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소망이심을 마침내 설득해 내셨습니다. 십자가로 말입니다.

 

이번 한주동안 그 십자가를 묵상하시면서 그 사랑과 그 은혜의 깊이를 더욱 깊이 체험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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