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5-23 17:37

사사기 강해 17. 드보라의 노래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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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의 노래

 

사사기 51-31

31.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사사기 5장은 찬양입니다. 4장은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5장은 그 사건을 신앙의 차원에서 바라보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장에서는 여호와에 대한 언급이 4번 등장하지만 5장에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분명한 인식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삶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과 현상들을 하나님의 섭리로서 인식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발견하지요.

그 결과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야빈왕의 철병거 900대를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던 이스라엘 군사 1만명이 진멸했던 것입니다.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전쟁이 시작될 때 비가 온 것입니다.

건기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렸고 이로 말미암아 주변의 물이 한꺼번에 기손강으로 모이면서 이곳에 주둔해 있던 철병거를 휩쓸어 것입니다. 이때 다볼산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군사가 내려와 혼돈가운데 있던 적들을 진멸시킨 것입니다.

21절을 보시면 4장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 나옵니다.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리도다

 

결국 비로 말미암아 기손강의 물이 불어나게 되었고 이에 철병거를 끄는 군마들이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적장 시스라는 도망치기 시작하였고 결국 숨은 곳이 야엘의 장막이었던 것입니다.

시스라는 야엘에게 물을 달라 요청하였고 야엘은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편하게 잠들어있던 시스라, 이때 야엘은 장막 말뚝과 방망이를 들고 와서 시스라의 관자놀이를 쳐서 죽인 것입니다.

5장의 찬송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4-27

24.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25.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26.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27.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시스라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슬로우비디오를 보듯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 융악한 범죄자들이 그냥 총에 맞아 죽지 않죠. 비참하게 죽어갑니다.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통쾌하죠. 마치 이와 같습니다. 그는 야엘이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려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려져 죽었도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고통속에 비참하게 죽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평범한 한 여인 앞에서 비참하게 죽어갈 때, 찬송은 또 다른 여인을 향합니다. 그는 시스라의 어머니입니다. 창문을 통해 시스라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28-30

28.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창살을 통하여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하매

29.그의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30.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바라보면 자신의 아들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오지 않는가? 그의 지혜로운 시녀들에게 묻자, 그들이 대답합니다

노략물을 얻고 그것을 나누느라고 늦을 것입니다. 한두 처녀를 얻었다는 것은 처녀노예를 의미합니다. 여인들을 성노리개로 삼았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시스라는 전쟁을 통해 여인들을 잡아 강제로 폭행하고 노리개로 삼았던 악독한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야엘이라는 여인의 손에 죽은 것입니다. 그래야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가정주부 야엘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또 한명의 여인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는 지혜로운 시녀들....

 

우리는 잔인하게 이 장면을 대하지만 당시 압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는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한 장면이었겠습니까?

드보라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우리가 생각할 때 이것이 무슨 찬송인가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찬송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찬송은 이렇지 않죠. 무언가 거룩하고 절제된 용어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은 드보라와 바락의 찬송을 기록함으로 우리에게 찬송의 고정관념을 깨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찬송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 무언인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찬송은 광장에서 하는 것입니다.

3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드보라와 바락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찬양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가나안의 왕들과 통치자들에게 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 내가 노래할 것인데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것입니다.

마치 공연무대에 선 가수처럼 가나안의 통치자들을 비롯한 모든 자들을 청중석에 앉히고 이제 내가 노래 할테니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찬양은 공개적입니다. 기도는 골방에서 하는 것이지만 찬양은 광장에서 하는 것입니다.

 

이 찬양은 처음에는 드보라와 바락의 입에서 시작되었지만, 자신의 노래를 듣는 모든 자들을 향하고 있고 또한 자신의 찬양에 동참할 것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10-11절을 보시면,

“10.흰 나귀를 탄 자들, 양탄자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전파할지어다

11.활 쏘는 자들의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이스라엘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흰 나귀를 탄 자들, 양탄자에 앉은 자들, 활 쏘는 자들은 권력과 부를 소유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길에 행하는 자,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함께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자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자고 합니다.

 

왜 그들에게 자신의 찬양을 함께 부르자고 하는 것입니까? 그들이 아직까지도 깨닫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승리 가운데 세밀하게 일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자들이 여전히 많았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전쟁에서 비가 내린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시 뉴스가 있었다면 기상이변이라고 소개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이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들도 찬양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기 앞서 자신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고백이 필요합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솔직한 고백입니다.

6-8절입니다.

“6.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7.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8.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이 소로로 다녔다는 것은 당시 압제 가운데 위축되어 숨어 다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7절에 이스라엘 마을 사람들이 그쳤다는 것은 공동체가 분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8절에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신들을 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주변 국가들을 통하여 전쟁을 일으키심으로 그들을 징계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에는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숨어 지냈고 이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일어난 남자 장수가 한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비참했던 상태에 대하여 솔직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태였던가? 우리는 하나님을 버렸던 자들이다. 우리는 새 신을 선택했던 자들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의 압제 속에서 비참하게 살던 자들이다.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송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자인가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용서란 회개한 자에게 베풀어지는 은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깨닫지도 못하는데 용서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찬송이란 자신의 비참했던 모습과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로 여겨집니다.

 

찬송은 그것을 감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죄인을 사랑하시고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신 분이십니다. 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찬송의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로 높여지기 위하여는 우리 자신의 비참함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하는 것입니다(5:20).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 전에 먼저는 자신의 상황과 상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언급되지 않고는 찬송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3. 찬송은 그러한 비참한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찬송을 보면 먼저는

1)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헌신을 이끌어내심을 찬송합니다.

2,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시는데 그들의 헌신을 이끌어낸 것은 그들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의 앞제 아래에서 비참한과 무기력함 가운데 있던 우리를 일으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전쟁에 나갈 마음을 주시고 비록 두렵고 떨리지만 순종하여 다볼산까지 올라가게 하신 분은 결국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헌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일에 우리를 동참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순종의 자리에 서게 하시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손길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의 찬양을 받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찬송할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창조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4.찬송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경험한 자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제된 감정과 정제된 단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언어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래서 이 찬양을 보면, 축복도 있지만 저주도 있습니다. 고마움도 있지만 서운함도 있습니다.

24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축복을 기원합니다.

반면, 23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고마움입니다.

14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

전쟁에 동참해준 지파들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합니다.

특히 18절에 죽음을 무릎쓰고 전쟁에 참여한 스불로 지파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합니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반면 서운함입니다.

16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그루벤 지파는 처음에 동저임을 드러내보이고 결심까지 했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가한 목축의 일상 생활에 방해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한편 길르앗과 단과 아셀은 아예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17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이것은 찬양이 이래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성도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움은 억지로 감정을 자제하고 고상한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서운하고 화가 아는데 억지로 참아가며 조작된 경건의 언어와 모습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셨던 자들은 이방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찬송뿐만 아니라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있는 마음 그대로 솔직하게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컵 때는 제가 뉴질랜드에 있어서 한국에서의 그 뜨거웠던 분위기를 알지 못합니다. 정말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2006년 월드컵 토고전으로 기억합니다.

뉴질랜드에서도 교민들이 교회나 성당을 빌려 함께 모여 나름 응원전을 펼쳤습니다. 그때가 새벽 4시였습니다. 집사님 한분을 공항에 모셔드리고 한인성당에 갔습니다. 붉은 티를 입은 청년들 사이에 아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원래 스포츠에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하품을 참아가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11로 비긴 상태에서 안정환의 중거리슛이 골대로 빨려들어갔습니다. 모든 교민들이 환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도 일어나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아내를 보니까 펄쩍벌쩍 뛰면서 좋아하는데 제가 그런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원래 고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이란 마치 이와 같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며 기쁨을 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또는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그때 우리의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이 찬양입니다. 안정환의 골인을 바라보며 흥분하여 일어나 펄쩍펄쩍 뛰며 눈물을 흘리듯, 찬양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에 우리의 마음이 행여 무감각해져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도 우리 삶에 세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만큼은 우리가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기쁨, 슬픔, 서운함, 분노, 이러한 우리의 감정들이 찬양의 언어를 통해 어우러지고 드려질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십니다. 저주가 어떻게 찬양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기를 원하시고 또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 그 세밀한 손길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을 나의 언어로 솔직하게 찬송할 때 하나님은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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