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7-10 13:45

사사기 강해 24. 너희의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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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24. 너희의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사사기 9:7-21 

7.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8.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9.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0.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1.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2.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3.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4.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5.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16.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17.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냈거늘
18.너희가 오늘 일어나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들 위에 왕으로 삼았도다
19.만일 너희가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20.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21.요담이 그의 형제 아비멜렉 앞에서 도망하여 피해서 브엘로 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오늘 본문은 요담의 우화입니다. 기드온의 70명의 아들이 아비멜렉에 의해 한 반석에서 죽임을 당할 때 요담이 도망하여 살아남습니다. 그가 축복이 산으로 상징된 그리심산에서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것과 그의 통치를 비판합니다. 이 우화가 9장 전체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말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담의 우화는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왕을 세우고 또 아비멜렉이 왕이 된 것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소망이요 기도제목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기도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왕으로 이 땅을 통치하기 전까지는 세상의 악과 고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데 바빠서 그렇지 조금만 눈을 돌려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살펴보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쟁, 테러, 학살, 자연재앙, 사고 등,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가장 시급한 기도제목이 무엇이어야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우리의 왕이 되시고 그 분의 뜻이 막힘없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하셨습니다.
또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이기에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인 것과 동시에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의 찬양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시며 그의 자녀들이 기뻐하며 자유케 될 날을 고대하십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여러 가지 소망들이 많고 기도제목도 있을 것입니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직장이나 사업에 큰 어려움이 없고, 청년들은 좋은 곳에 취업하고, 자녀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학업도 진보하고, 가정에 특별한 어려움들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 문제가 속히 해결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하나님 나라가 속히 임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이 땅의 악과 고난의 현실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는 곳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막힘없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 결과 자유와 기쁨이 충만합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 에덴이 바로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온전한 사귐과 교제가 있었습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자유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모든 것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그 곳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으며 그분으로 인하여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자유와 기쁨, 이것이 그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자유와 기쁨!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잔치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잔치에서 슬픔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잔치에는 춤과 노래가 있고 풍성한 음식이 있으며 호탕한 웃음이 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함께 손을 맞잡고 춤을 출 수 있는 곳이 잔치입니다. 이곳에는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나라를 가나안땅에서부터 시작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이 왕이 될 것입니다. 물론 모세와 같은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역할은 단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7-8>
7.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등극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그것을 주야 묵상하며 지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의 통치원리로 삼아야 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단지 하나님의 뜻의 대행자였을 뿐입니다. 

 

<열왕기상 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면서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그가 왕이던 사사이던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수종자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은 그 말씀 앞에 평등한 것입니다. 각 사람들이 그 나라에게서 어떠한 일들을 하게 될 때 그것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평등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은사에 따라 섬겼던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의 백성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을 왕으로 세우려고 할 때 기드온이 거부한 것입니다.  

 

기드온은 후에 타락하긴 했지만 왕이 세워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았던 것입니다.  

<삿8:22-23>
“22.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23.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그렇다면 과연 가나안땅에서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율법을 삶의 원리로 삼으며 그 속에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로 세워졌을까요?

사사기는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약속한 샬롬, 안식의 땅에서 그들은 자유와 평등의 공동체로 살아갈 것인가?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 사사기는 두 개의 연관된 그림을 통해서 하나의 답을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졌을 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더 이상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동시에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가나안의 신들은 풍요와 안정을 보장하는 신들입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문화는 매혹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인들처럼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삶의 양식을 하나하나 배워가지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신까지도 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섬기도 우상도 섬긴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제가 전에 인도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경청하여 듣더니 자신도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자신이 믿는 여러 신 중에 하나로 예수님을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전도하다가 힌두교 사원에 들어갔더니 그곳에 자신들이 믿는 신의 초상화들이 1층부터 해서 2층 전체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 중에 예수님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은 자신을 섬기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신을 위해 제물을 바치고 각종 종교적인 제반 활동들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신을 통하여 자신이 섬김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열정이 있습니다. 봉사도 있고 구제도 있고 섬김도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의 열정은 우리가 못 따라 갑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종교적 행위들은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거나 그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을까?   
그런 마음이 언제부터 생겼는가 하면, 어느 정도 가나안정복이 끝나고 모든 것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때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땅에서 평등과 자유를 누리면 되는데, 그때 인간의 마음은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먹고 살기 바쁠 때는 죄지을 시간이 없죠. 삶이 안정되면 딴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돈이 없을 때는 욕심도 없습니다. 사는 것에 어느 정도 만족합니다.
그런데 돈이 생기기 시작하면 욕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더 많이 가질수록 그 욕심은 커집니다. 성경은 이것을 탐심이라고 말합니다. 탐심은 어떠한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갈망을 넘어서서 수단과 방법으로 가지지 않고서라도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탐심이 왜 생기는가? 그것은 내가 가지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탐심은 삶에 필요 즉 needs를 채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 desire를 채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탐심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생깁니다.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것을 얻고자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탐심이 생기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린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확장시킴으로 삶에 풍요와 안정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이웃을 착취합니다. 갑질을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을 확장시키기 위해 이웃을 것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풍요와 안정을 능력이라고 포장합니다.

 

이것이 가나안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웃을 착취하여 자신의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확장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 속에서는 평강이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자유도 없습니다.
각박함과 치열함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확장시켜 나가야 하기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또 내가 책임져야 하기에 삶이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기반을 내 자신에게 두고 있기 때문인데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입니까? 그것을 아니까 불안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탐심은 곧 우상숭배(골3:5)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의 그림은 왕을 세우는 것입니다.

왜 왕을 세우려는 것인가? 이것도 마찬가지로 가나안인들처럼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의 공동체가 아니라 귄위적인 지배구조를 원한 것입니다. 이것 또한 가나안의 문화이며 삶의 양식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자신을 왕이 되고자 여론몰이를 할 때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삿9:2)

아비멜렉은 먼저 인간 왕이 우리를 다스려야 한다고 전제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호소할 때 그가 사용한 언어를 보면 효율성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효율성은 가나안의 삶의 양식입니다. 어떠한 것이 더 효율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가나안의 문화입니다. 효율성이 지배하는 문화에서는 약자들이 보호받지를 못합니다. 그들을 도태시켜 버립니다. 효율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대량학살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우생학이라는, 우수한 유전자를 증가시키고 열등한 형질은 단종시키려는 이론입니다. 효율성에 기반을 둔 이론입니다.

기업의 대량해고도 효율성 때문입니다.
노인 경시풍조도 효율성 때문입니다.
장애인 차별도 효율성 때문입니다. 
효율성이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인간 삶의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고 결정의 근거가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왕을 세운다고 한다는 것은 단지 지도자 한 사람을 세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삶의 원리를 버리고 세상적인 삶을 살겠다는 결정인 것입니다.

인간은 평등의 공동체를 원하지 않습니다. 만일 인간 스스로 평등의 공동체를 만든다고 하여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그 이론은 맞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악함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평등사회를 원하지도 않고 또 만들 수도 없습니다.

요담의 우화는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서 이루고자 하는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나무들이 자신들 위에 다스릴 왕을 세우고자합니다.
먼저 감람나무에게 갑니다. 우리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대답합니다.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 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데 무엇 때문에 왕이 필요하며 또 왕이 되어 우쭐대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무화과나무에게 요청합니다. “왕이 되어주십시오.” 대답합니다. “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포도나무에게 요청합니다. 우리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대답합니다. “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하나님 나라에게서는 그 나무가 감람나무던 무화과던 포도나무던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통해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하기에 다른 것에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즉 탐심이 없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자 모든 나무가 모여 가시나무에게로 갑니다. 우리에게 왕이 되어 주십시오. 대답합니다.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가시나무에게 그늘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그늘에 피하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누구의 그늘에 피하는 것은 그의 보호와 주권아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그늘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시나무는 자기의 그늘에 와서 피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가시나무는 아비멜렉을 말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나무입니다. 고고한 자태와 위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름답고 귀한 가치를 의미한 것입니다.
결국 사사기 9장에서는 요담의 이 우화가 그대로 성취되는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시간에 살펴볼 것입니다.

요담이 또 말합니다.


16절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여기서 진실하고 의로움이란 말은 지난 시간 여호수아 24장에서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그 동안의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의 역사들을 언급하면서 했던 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수24:14)

온전함과 진실함과 같은 단어입니다.
우리가 세겜에서 하나님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긴다고 했는데,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것이 과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약속했던 그것이냐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또 등장합니다.
19-20절 “만일 너희가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20.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이 요담의 저주는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담을 살리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왕을 세워 가나안의 삶을 살아가려는 자들에게 어떻게 보응하시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록 미약하긴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부터 맛보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통치원리와 삶의 방식을 연습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평등한 공동체를 세워나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에 따라 역할들을 감당하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사람을 기쁘게 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효율성이 아닌 자유와 평등의 원리가 내가 속한 직장과 가정 그리고 여러 관계들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비교와 경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삶을 성실하고 살아갈 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진실함과 온전함이 될 것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가치판단과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우리는 요담이 그리심산에서 외쳤던 그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의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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