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09-18 12:37

사사기 강해 33. 나실인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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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33. 나실인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

 

사사기 13: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사사기 강해 33번째 시간으로 나실인과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전하겠습니다. 삼손이야기의 세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나실인의 첫 번째 금기 사항인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포도주가 세속적이거나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에서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마치고 안식과 쉼을 의미하는 것이죠.
안식에 대한 주제는 사사기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거든요.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면서 동시에 안식의 땅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안식의 땅에서 안식하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의 상징인 포도주를 먹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하면서 마노아가 등장하는데 마노라라는 뜻이 “안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안식이 없습니다. “아이가 없으므로 임신하지 못하더니”, 이 구절을 3번씩이나 반복하면서 그들의 절망적인 상태를 보여줍니다.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 절망가운데 소망을 주고 안식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삼손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비운의 삶을 산 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그의 백성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를 자르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은 나실인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금기사항인 머리를 자르지 말라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읽은 5절 말씀에 보면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머리를 자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나실인은 왜 머리를 자르면 안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힌트는 신약에서 발견됩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머리에 무엇을 쓰게 했습니다. 만일 쓰지 않고 기도나 예언을 하게 되면 머리를 민것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
고전11:10절을 읽어보면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면서 15절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내가 누구의 권세 아래 있음을 의식하기 위해서 여성들은 긴머리를 하던가 또는 머리에 무엇을 쓰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기른다는 것은 무엇을 계속해서 의식하는 하나의 방식인데, 그것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나실인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의도적으로 의식하기 위해서 머리를 자르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머리카락이 길면 관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손이 갑니다. 그때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무엇을 생각하는 것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나실인들은 특별히 자신들이 서원을 한 기간 동안 이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리카락을 길렀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머리카락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머리카락을 길으므로 내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또한 의식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쳐진 존재이고 내 생명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실인의 규례와 우리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입니까?
지난 시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또한 나실인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입니다.
7절을 보시면,  “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죽는 날까지라는 말은 여호와의 사자가 한 말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 글을 읽은 그의 자녀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는 태어나면서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실인의 이 규례가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당시 나실인들처럼 머리를 기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담고 있는 영적인 의미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권세와 생명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다는 것과 우리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권세아래에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다는 것은 내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맘과 뜻대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모든 판단과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이것을 항상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이것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능력을 잃게 되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하게 됩니다. 마치 머리를 밀리고 힘이 빠져 다손 신전에서 재주를 부리는 삼손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판단기준입니다.
선과 악의 판단기준이 어디 있습니까?
옳고 그름, 성공과 실패, 복과 저주 등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근거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도리로 붙잡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머리위에 있는 권세를 무시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잔혹하고 비참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세를 무시했다는 것을 밝힙니다.
그리고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삼손의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표현되는가?
사사기 14:1-2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3절에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라는 말 히브리 원문을 보면, “그 여자가 내 눈에 좋사오니”입니다.

이방여인을 사모하는 삼손의 모습은 그 당시 하나님을 무시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누구의 권위 아래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나타납니다. 평소에는 잘 몰라요. 결혼만큼 중요한 선택이 없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자시 소견에 좋은 대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도 그러한 삼손에게 끌려 다닙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결국 블레셋 여인과 결혼을 시킵니다.   

<신명기 7:2-4>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3.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삼손은 이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요? 블레셋 여인과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아니요. 나중에 그의 아내가 친구의 아내가 됩니다. 이런 막장 드라마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의 백성에게 가장 영광스럽고 축복된 삶입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도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할 때입니다. 반면 가장 추악할 때는 언제 입니까? 그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위의 있는 권세를 의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소한 삶의 결정의 순간에 하나님의 권세를 의식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크고 중요한 결정의 순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너무 선명해도 그 길로 가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큰일도 감당하는 것처럼, 소소하고 작은 삶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때만이 크고 중요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머리를 자르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머리카락이 자란다는 것은 생명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의미로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다는 의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마태복음 10:29-30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다는 것은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 빠지는 것 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머리를 자르지 않는 다는 것은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 바쳐져 구별된 삶을 사는 동안 ‘내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할 때 그것을 가장 함축적으로 요약한 것이 1-2절의 내용입니다.

<롬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삶을 예배로 인식합니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중심으로 주중에 우리의 삶 전부를 예배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예배가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라는 인식입니다.

학생이라면 학업이 직장인 이라면 직장에서의 일이 주부라면 살림하는 일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세상속에서 우리가 감당하는 일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께 특별히 바쳐진 사람들, 그들은 교황이며 주교이며 사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모두가 제사장으로서 직분을 감당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교회에서 주관하는 선교나 전도 구제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소명이 하나님께 부름받은 목사들의 전유물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내가 먹고 살기 위해 하고 있는 이 일이 소명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이 놀랍게 개혁되기 시작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저울을 속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좋은 재료로 최고의 품질을 생산해 내었습니다. 주부들은 살림을 하며 아이를 돌보고 음식을 만들고 청소며 빨래를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과 우리의 일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비록 이른 새벽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한귀퉁이를 청결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실인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인식해야 합니다. 나에게 맡겨진 가족,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인식의 중요성입니다.
이 두가지 의식이 굉장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삼손의 이야기에서 삼손의 힘의 원천을 바로 이것과 연관시키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굉장히 힘이 세죠. 나귀 턱뼈로 천명을 죽이지 않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가 언제부터 힘을 쓰지 못하는가? 바로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 머리를 밀리고 나서부터입니다.
  
머리카락에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겠습니까? 머리카락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삼손에게 주어진 나실인으로서의 삶과 사명을 그가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삼손의 이야기에서 나실인의 두 번째 규례는 힘과 능력의 원천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삶, 즉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면 또한 나의 삶 전부를 영적예배로서 인식하며 살아갈 때 그것이 우리의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힘과 능력과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은 능력이 있는 여성이라면 가정이 아니라 사회로 나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해야 멋진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남성지배 문화의 구조에서 해방되어 여성의 권리와 인권을 마음껏 발휘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마치 집에서 살림하는 여성은 무능한 것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한 가정의 아내요 어머니로서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먹일까 고민하고 자녀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할까를 고민하며 이를 위해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여성들이 있다면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이름을 내지 못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빛과 같이 빛나는 자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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