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10-23 15:19

사사기 강해 37. 성도의 힘의 근원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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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37. 성도의 힘의 근원

 

사사기 16:15-20 

15.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강해 37번째 시간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로는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삼손의 힘의 근원이 사라지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그가 사랑한 블레셋 여인 들릴라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결국 힘의 근원을 알려주게 되고 결국 힘을 잃어버리게 된 사건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삼손은 이스라엘을 대표합니다.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축소판입니다. 삼손의 삶 안에 이스라엘이 들어있습니다. 그가 나실인으로 구별되어 태어난 것과, 사사로서의 사명을 부여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만민중에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명을 주신 것과 일치합니다.

 

삼손이 나실인의 사명을 소홀히 여기고 결국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간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서 이방민족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를 추구하였던 삶과 일치합니다. 삼손의 모습 속에는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보게 될 내용은 삼손의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힘을 쓰는 장면을 살펴보면,

첫 번째 장면은, 삼손이 딤나에서 블레셋 여인을 보고 반하여 그를 만나러 가게 될 때 젊은 사자를 찢어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삼손의 결혼잔치에서 그가 낸 수수께끼를 블레셋 친구들이 그의 아내를 위협하여 알아낸 후 풀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삼손이 그들에게 약속한 베옷과 겉옷을 주기 위해 아스글론으로 내려가 삼십명을 죽이게 됩니다.   

세 번째 장면은, 삼손이 유다지파의 손에 의해 블레셋에 넘겨지게 됩니다.
레히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삼손이 자신을 묵고 있던 밧줄을 툭 끊습니다. 이 밧줄은 힘을 주어 끊을 수 있는 밧줄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새 밧줄”(13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옆에 보니까 죽은지 얼마 안된 나귀가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턱뼈를 꺼내서 무기로 삼아 천 명을 죽이게 됩니다. 여기서 천명은 숫자적으로 천명일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이라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수많은 블레셋의 적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사건에서 삼손이 보여준 힘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근원된 것일까요?
이 모든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1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사사기 14: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사사기 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삼손에게서 놀라운 힘과 능력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영이 갑자기 임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원래 삼손에게는 그러한 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할 때만 힘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요?


성도에게도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발휘되어지는 바른 판단력과 과정과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통찰력, 어떤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하게 감당하는 지구력, 어려움에 휘청하고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복원력등...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각자 태어날 때 강점으로 타고난 부분들이 있기도 하고, 또 살아오면서 노력을 통해 개발된 능력들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이와 같은 것을 ‘은사’라로 말합니다.
그리고 은사의 근원을 성령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에 임하실 때 각자에게 선물로 은사들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원어로는 ‘카리스마’입니다. 은혜가 ‘카리스’인데 ‘카리스마’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그 증거가 은사, 카리스마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8-11>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성도들에게 있어서 카리스마의 근원은 성령님입니다.

그러면 삼손이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 있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리고 머리카락이 잘렸을 때 힘의 근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삼손이 머리카락을 밀지 않는 이유는 나실인으로서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힘의 근원을 머리카락이라고 말한 것은 머리카락 자체가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실인으로서 구별된 존재로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했을 때 힘의 근원이 사라진 것은, 그가 더 이상 나실인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함으로 성령님께서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지 않으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세상속에 있지만 세상과는 구별된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성령님이 임재아래 다스림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성령님이 임재하면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죄인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했다는 것을 믿게 되어집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강권적으로 우리안에 역사하실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면, 성령님이 임재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재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것입니다. 
<고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삶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 삶의 주인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래서 전에는 죄를 탐하고 즐겼는데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어 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이 한번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이 임했다고 나쁜 사람이 갑자기 착한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그러한 일이 있기는 하나 특별한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살아오면서 형성된 인격과 삶의 습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의 영역들을 하나하나 싸워나가게 하시고 우리를 고쳐나가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은 자들로 변화시켜 나가십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말합니다.

 

이 성화의 과정 속에서 성도는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죄악된 세상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바로 카리스마 즉 은사입니다. 그래서 이 은사가 어느 때에 가장 잘 발휘되는가 하면 바로 세상 속에서 맡겨진 일을 감당할 때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할 때 은사가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삼손에게 있어서 성령님이 임재함으로 능력이 나타난 순간들은 대부분 블레셋과 연관되었을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과 연관되어 그 속에서 내게 맡겨진 일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로 감당하고 성실함과 탁월함으로 감당하게 되어질 때 성령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카리스마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직장에서 또는 캠퍼스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일하고 공부하고 생활하는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사들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2011년 저는 천안에 있는 단국대 캠퍼스 학생회장 2층 크라운베이커리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빵과 함께 커피와 와플을 만들어 파는 일이었습니다. 여자 사장님이셨는데 제가 목사인걸 알고 고용한 것입니다. 비록 아르바이트였지만 커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와플을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지도 공부했습니다. 전에 제과제빵을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빵과 케익의 가격은 하루만에 암기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머리가 좋지 않습니다. 특히 암기력은 꽝입니다. 그런데 하루만에 빵의 이름과 가격이 외어졌습니다.

일한지 4주정도 되었을 때 와플을 먹으러 줄을 서기 시작했고 사장님은 번호표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2개월 후 월급날 사장님은 저와 아내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식사후 월급을 주시는데 정해진 액수보다 많았습니다. 사장님 하시는 말씀이 8년동안 이곳에서 일했는데 이번달에 최고매출액을 올렸다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간혹 제가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들어 화를 내려고 했던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장님은 점심에 학생이 몰리기 때문에 아침에 미리 커리를 내려 담아놓고 점심에 섞어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학생들이 커피맛을 모르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지 않고 항상 바로 내려서 주었습니다. 그것이 맘에 안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한창 몰려 기다리고 있는데 커피를 내리고 있는 제가 미련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화를 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쌓아놓은 케익케이스가 떨어지면서 거기 붙어있던 폭죽이 터지더랍니다. 그때 마음속에 목사님한테 함부로 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하나님께서 목사 자존심 상하지 않게 보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을 하게 되면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암기력도 주시고 집중력도 주십니다. 때로는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게도 하십니다.  

뉴질랜드에서 목회와 일을 병행할 때도 이러한 경험은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나에게 없었던 능력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돈을 추구합니다. 그것도 편하고 쉬운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다릅니다. 우리에게 돈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을 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나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불편함과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순간마다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손해본 것들을 갚아주십니다. 포기했던 권리들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억울했던 일들도 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 당시에는 손해인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성도로서 살아갈

때 능력을 주십니다.

여리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통해 일어난 모든 선한 일들이 내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능력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사람을 주목하기 쉽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고치게 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니 그가 일어나게 되었고 뛰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놀라 베드로와 요한을 솔로몬의 행각에 붙잡아 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됩니다.


그대 베드로가 한 말이 이것입니다.
<사도행전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사람을 주목해서는 안됩니다. 그가 아무리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고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고 하더라고 사람을 주목해서는 안됩니다. 전에 그런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목사님, 전도사님한테 복음을 듣고 변화되었는데 어떻게 그러한 분들이 잘못된 일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분의 기도로 병고침을 받았는데 어떻게 그런 분이 부끄러운 죄를 행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그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의 연약함 중에 하나가 자꾸만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선한 일들을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가 아무리 대형교회를 이루고 수만명의 성도들에게 선한영향력을 끼쳤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 그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을 합니다. 내 지혜와 능력으로 그 자리에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연약한 성도들도 그를 대단한 능력자로 믿고 우상처럼 따릅니다.

삼손에게 나타난 능력은 삼손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분의 일을 위하여 잠시 그에게 주었던 능력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선한일이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신 일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능력들은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 사라집니까?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부터입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순간 그 능력을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고 동일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때 성령님의 능력은 소멸됩니다. 머리를 밀려 힘의 근원을 잃어버린 삼손처럼, 우리가 성도로서의 삶을 포기할 때 그 능력도 동시에 소멸됩니다.

그때부터는 나의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지식, 나의 지혜, 나의 경험, 나의 판단력, 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피곤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삶을 끌어가는 것처럼 피곤한 인생이 없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에게 가장 무서운 욕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성령님 없이 목회하라 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탐욕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도로서 살아가지 않으면 탐욕의 사람이 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성도로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선한 일들이 일어날지라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셨음을 인정하시어 겸손한 자리에게 서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의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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