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11-13 12:47

사사기 강해 40. 분배의 정의가 사라진 시대의 소망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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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40. 분배의 정의가 사라진 시대의 소망

 

사사기 17:6-13
6.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7.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3.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 미가의 가정의 우상숭배의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아 살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될 때 결국 하나님조차도 수단화 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미가의 가정가운데 일어난 두 번째 사건입니다.
한 레위인 청년을 소개하면서 오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7절에 보면, 그는 유다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이었다고 말하면서 그가 레위인이라고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지만 레위인들은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었습니다. 레위지파는 특별히 성막제사를 위해 구별되었고 각 지파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먹거리와 생계는 소속된 지파 사람들이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12:19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땅을 분배받아 살게 되었을 때 너희 지역에 거주하는 레위인의 생계를 책임질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레위인들은 제사장의 직분과 성막제사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레위인 청년은 유다의 베들레헴 지역에 거주하는 레위인이었습니다. 유다지파는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영적인 장자일 뿐만 아니라 대표입니다. 그런데 유다지파의 땅 베들레헴이 거주하던 레위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8절에 보니까,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그가 거주할 곳을 찾고자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지파는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위치합니다. 그가 거주할 곳을 찾으러 북쪽으로 이동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첫 번째 만나는 지파가 단이나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거주할 곳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다 에브라임 땅까지 온 것입니다.

지금 이 청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유다사람들 가운데 이 레위인의 생계를 책임질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이나 베냐민 지파를 통과하여 올라오는 중에도 그의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막제사의 직무만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땅에서도 그리고 단이나 베냐민 땅에서도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에브라임 땅까지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의 공동체성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사회는 하나님께서 명하셨던 공동체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명하셨던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12:1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우상을 헐라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두 번째는 너희에게 수고하고 일한 것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쁨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7절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그러면서 두 번째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 9절부터 나오는 내용입니다.
10-12절
“10.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여기보시면, 그들이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은 성막입니다. 그곳에 십일조를 포함한 각종 제물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와서 드리며 예배하고 또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예배 후에 즐기는 잔치를 의미합니다. 이때 누구를 포함시키는가 하면, 12절에 노비와 레위인을 포함시킵니다.

13절 부터는 이 부분을 반복하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3.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15.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16.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17.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자신이 수고하여 수확한 곡식과 짐승의 고기와 포도주를 먹으면서 즐기는 잔치가운데 노비와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너희가 수고하여 수확한 모든 것은 네가 속한 공동체의 노비. 즉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리고 제사의 직무를 전담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가나안땅에서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수익의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사회적 약자와 레위인을 함께 돌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사시대에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레위인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떠도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성이 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수입을 더 이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분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항상 공동체가 깨어지는 이유를 보면 분배의 문제와 연관됩니다.
분배를 정의롭게 하게 되면 공동체의 유대감이 강화되고 삶의 질이 올라갑니다.
그러나 분배가 정의롭지 못하면 공동체는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만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가까웠던 가족들에게 서운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갈라서는 이유가 분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로 형제들이 갈라섭니다. 아픈 부모님을 형제들이 어떻게 모실까에 대한 부분도 분배의 문제입니다. 뉴스를 보니까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분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사회가운데 분배의 정의가 졌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삶에 법과 질서로 삼고 살아갈 때 이 땅에서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버리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6절에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여기서 “옳은대로”라는 단어는 원어로 “야샤르”인데 ‘곧은’ ‘바른’ ‘의로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각자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정의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의 수입을 더 이상 분배하지 않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의 것이기에 공동체를 위해 분배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분배의 정의가 사라지자 빈부의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잘되는 사람은 계속 잘되고 안되는 사람은 계속 안됩니다. 그것은 타고난 능력의 차이일 뿐만 아니라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또한 공정하지 못한 기회의 불균형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분배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되지 않게 되면 양극화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미가의 가정이 상당한 재력가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어떤 자는 상당히 부요하고 어떤 사람은 극도로 가난하여 떠도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미가의 가정이 자신의 재력으로 레위인을 자신의 집에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목사가 어느 재력가 집에 들어가 먹고 살면서 그들의 삶의 풍요와 안정을 위해 제사를 지내게 되는일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을 보시면 미가가 뭐라고 말합니까?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받은 제사장이 아니라 자신이 부리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사람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내게 복을 주실 줄을 아노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한 정의였습니다.
자신의 삶의 풍요와 안정을 위해서 모든 것이 수단화 됩니다.
레위인도 제사도 그리고 하나님도 자신에게 복을 주시는 수단으로 전락된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성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서로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초대교회는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사도행전 2:44-47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4:32-35
32.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초대교회가 이룬 분배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필요에 따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부한 자는 좀 더 많이 드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없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역사상 그 어떤 정부나 기관도 이루지 못한 분배의 정의를 이룬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32절에 보면,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없도다. 즉 자기의 모든 소유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청지기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 생명, 건강, 지식이나 지혜, 재능, 노력, 재능 까지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확신했기 때문에 언제오지든지 훌훌 털고 떠날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이상의 재물을 모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여유분을 필요한 자들을 위해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역을 교회가 감당했던 것이고요.

 

자신의 몸집불리기와 확장을 위해 애쓰는 교회가 있고,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며 이웃을 풍요롭게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죠. 자신의 삶의 확장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노력하여 얻은 이익을 어렵고 힘든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움켜쥐고 사는 사람들은 나의 소유를 나의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가고 노력하여 좋은 직장도 얻고 또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얻은 대가로 이렇게 잘살고 있기에 그것은 나의 성실함과 노력 때문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력할 수 있는 건강과 사고력은 누가 준 것입니다. 타고난 재능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뛰어난 머리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자신의 우월한 유전자는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모든 것이 노력의 결과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가 노력의 결과일지라도 그 노력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고 믿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소유 가운데 필요이상의 것을 마땅히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많이 가진 자라고 해서 교만할 수 없고 또 적게 가진 자라고 해서 부끄러울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나눈다고 해서 자긍심을 가질 이유가 없죠.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약자들이 교회나 성도들을 통해 물질을 받으면서 수치심을 느끼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그들을 통하여 나의 어려움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가나안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분배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사회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초대교회 때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러한 모습이 계속해서 재현될 수 있을까요?


저희 교회가 덕명동의 작은 집에서 네명이 시작하여 6개월 만에 스물네평의 공간을 얻어 이전하고 또 3년 만에 이렇게 넓고 좋은 예배당으로 이전하게 되었던 배경에는 성도들의 헌신들이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주셨고 그래서 두아이를 입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큰액수를 헌금해 주신 성도님들이 계셨기에 예배당이 이곳에 아름답게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저희 교회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에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교회이름으로 건물을 소유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재정적으로 축복해 주시면 이일에 좀 더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 일을 초대교회 때 집사들이 했던 것이죠. 집사는 이일에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 나오면 다 집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일에 은사가 있는 사람들을 선발해 그들을 통해 이러한 긍휼의 사역들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분배의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소망이 될 수 있는 것은 교회공동체입니다.
이일에 우리가 빛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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